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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물이 사람에게 처음 투여되는 단계부터 신약개발은 ‘가능성’을 ‘근거’로 바꾸는 과정에 들어간다. 시작 용량을 정하고 체내 약물 움직임과 약물 노출, 유효성·안전성의 관계를 확인해야 다음 개발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이후 실제 의료 현장에서는 환자별 약물반응과 약물상호작용을 분석해 적정 용량을 찾고 개인맞춤형 약물 치료로 연결해야 한다. 신약개발부터 실제 환자 치료까지 이 과정을 잇는 분야가 임상약리학이다.
서울성모병원 임상약리과가 개설 20주년을 맞았다. 지난 20년간 초기 임상시험과 계량약리학을 중심으로 신약개발 기반을 구축했다. 최근에는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모델 기반 의약품 개발까지 영역을 넓히고 있다.
서울성모병원 임상약리과와 가톨릭대학교 약학대학은 30일 서울 강남 엘리에나호텔에서 ‘AI 신약개발 규제과학 학술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지난 20년의 성과를 돌아보고 AI 융합 신약개발과 규제과학의 향후 방향을 논의하기 위해 마련했다.
한승훈 서울성모병원 임상약리과장은 “2006년 첫발을 내디딘 임상약리과는 우수한 국내외 임상시험 수행과 정밀의학을 위한 최적화 등을 통해 국내외 신약개발 역량을 뒷받침하는 핵심 기관으로 성장해 왔다”며 “지난 20년 동안 축적한 임상연구 성과와 글로벌 수준의 임상시험 역량은 연구진과 협력 파트너들이 함께 만들어낸 결과”라고 말했다.
임상약리학의 가치는 초기 임상개발에서 특히 크다. 비임상 자료를 바탕으로 사람에게 처음 투여할 안전한 시작 용량을 정한다. 이후 약동학·약력학(PK·PD)과 안전성, 노출-반응 관계를 평가한다. 이 데이터는 후속 임상의 용량과 환자군, 임상시험 설계를 결정하는 근거가 된다.
한 과장은 “지금 우리는 인공지능과 디지털 전환이라는 거대한 패러다임 변화 속에 있다”며 “임상약리학 역시 모델 기반 신약개발, 빅데이터 분석, 인공지능 융합을 통해 과거에는 불가능했던 혁신 치료제 개발의 최전선에 서 있다”고 강조했다.
서울성모병원 임상약리과는 지난 20년간 초기 임상시험과 임상연구를 수행하고 전문인력을 양성해 왔다.
민창기 가톨릭중앙의료원 의무부총장 겸 의료원장은 “2006년 문을 연 임상약리과는 의료원에서 임상시험의 과학적 기반을 다지고 신약개발 연구 역량을 글로벌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해왔다”며 “임상시험 초기부터 후기까지 빈틈없는 설계와 정확한 데이터 분석을 통해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최근에는 첨단바이오의약품과 분산형 임상시험 등 새로운 영역에서도 혁신을 주도하고 있다”며 “임상약리과가 융합 인재 양성의 요람이자 글로벌 수준의 임상시험 허브로 자리매김하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임상약리과의 성과는 임상시험 건수에만 머물지 않는다. 신약개발 데이터를 생산하고 해석할 전문인력을 배출하며 국내 임상약리학과 신약개발 생태계의 인적 기반도 넓혔다.
김명신 가톨릭중앙의료원 의생명산업연구원 연구부원장은 “2006년 당시 의료원에서 임상시험 분야는 아직 시작 단계에 불과했지만, 길이 없는 곳에 길을 내고 시험을 설계하고 환자와 만나며 데이터라는 언어로 역경을 넘어왔다”며 “지난 20년 동안 임상약리과는 130건이 넘는 임상시험을 수행하며 신약개발 현장을 지켰고 동시에 많은 전문인력을 배출했다”고 말했다.
김 연구부원장은 “사람을 길러낸 것이야말로 임상약리과가 남긴 가장 큰 자산”이라며 “앞으로 AI와 데이터 기술이 임상시험 설계와 해석, 개인맞춤형 약물치료에 활용되는 시대에 임상약리과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임상 현장에서도 임상약리학은 개인맞춤형 약물치료와 맞닿아 있다. 환자의 연령과 장기기능, 병용약물, 유전적 특성에 따라 같은 약물에서도 노출량과 반응이 달라질 수 있다. 정밀한 용량 설정과 약물반응 해석이 필요한 이유다.
이동건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장은 감염내과 진료 경험을 언급하며 “조혈모세포 이식을 받았거나 면역기능이 떨어진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항균제와 항진균제의 정밀한 용량 조절이 절대적인데, 이 과정에서 임상약리과는 든든한 동반자였다”고 말했다.
이어 “현대 의학은 질병을 치료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AI 트랜스포메이션의 한가운데 서 있다”며 “임상약리과가 미래 의료 패러다임의 혁신을 이끄는 핵심 허브가 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밝혔다.
산업적 역할도 커지고 있다. 최근 신약개발에서는 전임상·임상 데이터를 모델링·시뮬레이션해 용량을 선정하고 임상시험을 설계한다. 규제 의사결정에도 활용한다. 이를 아우르는 모델 기반 의약품 개발(Model-Informed Drug Development, MIDD)의 중요성이 커지는 배경이다.
문한림 대한임상약리학회 회장(메디라마 대표이사)는 “서울성모병원 임상약리과는 지난 20년 동안 초기 임상시험과 연구 성과를 통해 국내 신약개발 생태계 발전에 기여해 왔다”며 “특히 계량약리학과 모델 기반 신약개발 분야를 비롯한 다양한 연구를 통해 우리나라 임상시험 역량을 글로벌 수준으로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문 회장은 향후 20년 핵심 변화로 AI를 꼽았다. 그는 “AI는 보조 도구가 아니라 신약 후보물질 탐색, PK·PD 모델링, 시뮬레이션, 임상 설계 최적화를 이루는 핵심 기술로 자리 잡고 있다”며 “앞으로 임상약리학과 AI의 융합을 통해 보다 정밀하고 예측 가능한 의사결정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심포지엄에서는 임상시험 산업 생태계와 디지털 전환, 초기임상 개발전략과 규제 협력, AI와 임상약리학의 미래를 주요 의제로 다뤘다.
서울성모병원 임상약리과 초대 과장인 임동석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약리학교실 교수는 향후 과제로 사람을 강조했다. 임 교수는 “처음 가톨릭의대에 왔을 당시에는 아무런 인프라도 없이 시작해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며 “지금 제게 남은 가장 큰 과제이자 목표는 후배 양성”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남은 시간 동안 훌륭한 인재를 더 많이 키워 우리 임상약리과와 우리나라 제약바이산업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지난 20년간 서울성모병원 임상약리과의 역할은 PK·PD 분석에서 초기 임상시험, 계량약리학, 개인맞춤형 약물치료, 신약개발, 규제과학으로 넓어졌다. AI가 후보물질 탐색과 데이터 분석을 고도화하더라도 어떤 환자에게 어떤 약물을 어느 용량으로 투여할지 판단하고, 임상에서 얻은 데이터를 다음 개발 단계와 실제 치료로 연결하는 과정은 반드시 필요하다. 환자 치료가 정교해질수록 임상약리학이 더 주목받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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