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작 한국영화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에서 종군기자 역할을 맡은 배우 메간 폭스(Megan Fox)가 연기한 가상의 인물 매기(Maggie)는 지금도 종군 여기자의 대명사처럼 인식되고 있는 전설적인 인물 마거리트 히긴스(Marguerite Higgins)를 모티프로 창조된 인물로 알려져 있다.
‘뉴욕 헤럴드 트리뷴’(New York Herald Tribune)의 도쿄 특파원으로 한국전쟁에 종군한 마거리트 히긴스 기자는 인천상륙작전을 전 세계에 알려 1951년 여성 최초의 ‘퓰리처상’ 수상자로 이름을 올렸을 뿐 아니라 제 2차 세계대전과 베트남전쟁까지 전장을 누빈 여걸이었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마거리트 히긴스가 유일한 종군 여기자는 결코 아니었다는 사실이라고 하겠다. 비단 마거리트 히긴스 뿐 아니라 전쟁터에서 맹렬하고 당찬 여기자들의 활약상은 과거에도 대단했고, 지금도 그렇다는 사실은 이제 상식에 속한다. 그만큼 구미(歐美) 각국에서 여기자들은 일찍부터 언론사에 굵직한 획을 그었다.
우리나라로 시선을 돌려보면 많은 사람들은 무엇보다 먼저 우리나라 최초의 여기자로 활약한 추계(秋溪) 최은희 여사(1908~1984년)를 기리기 위한 취지에서 지난 1983년에 제정된 ‘최은희 여기자상’(崔恩喜 女記者賞)을 떠올릴 것으로 보인다.
3‧1 운동이 일어나기 하루 전날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현재의 경기여자고등학교)의 비밀모임을 이끌고 파고다공원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친 독립운동가이기도 했던 최은희 여사는 1924년 ‘조선일보’에 입사해 8년여 동안 근무한 뒤 활발한 집필활동으로 주목받았다. 작고하기 1년 전에 후배 여기자들을 위해 써달라면서 ‘조선일보’에 기탁한 사재이자 당시로선 거금이었던 5,000만원을 기금으로 제정되어 1984년 제 1회 수상식이 열린 이래 우리나라에 여성 저널리즘이 뿌리내리는 데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가부장적인 인식이 팽배했던 우리 사회에서 무려 일제강점기에 여기자로 활동한 여성이 존재했다는 사실은 분명 많은 사람들의 귀를 의심케 하는 부분이다.
이 때문일까? 20세기 후반까지도 대한민국 사회에서 여기자란 흔하거나 예사롭게 접해볼 수 없는 희귀한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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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본지는 이처럼 아직까지 가부장적이고 유교적인 사고방식과 남녀칠세부동석을 운운하는 남성우월주의적 가치관이 팽배했던 시절인 지난 1958년 7월 20일자 7면 하단에 여기자 모집 공고를 게재해 얼핏 눈을 의심케 했다.
“大學 卒業 程度의 學力을 가진 女性으로서 雜誌編집에 趣味를 가진 者를 募集함.(經歷不問)”
다만 공고가 게재된 후 실제로 채용이 이루어졌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거듭 언급되는 부분이지만, 70년史를 처음으로 편찬하려다 보니 오래 전 자료를 찾거나 당시의 일들을 회고해 줄 수 있는 원로선배분들의 증언을 청취하는 일 등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데다 그 때는 국내 언론계에 아직 기명기사(記名記事) 제도가 도입되지도 않았던 시절이었다. 게다가 후속 인사발령 사고(社告) 또한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 심지어 대학을 나온 남성들을 찾아보는 일조차 가물에 콩나듯 쉽지 않았을 만큼 문자 그대로 호랑이 담배 피우던 예전이라 할 수 있는 그 시절 그 때, 그것도 대학을 졸업한 여학사 출신자들을 대상으로 기자를 채용하고자 했다는 것은 대단히 이례적이고 당시 언론계 전체적으로 보더라도 꽤 파격적인 일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이야 언론사 내부적으로 “여기자”라는 표현조차 성차별적인 언어라면서 그냥 “기자”라고 불러야 한다는 지적에 무게가 실릴 만큼 사내 분위기에 코페르니쿠스적인 전환이 이루어졌지만, 그리 멀지 않았던 예전만 하더라도 우리의 직장 내 자화상은 이렇듯 지금은 상상조차 할 수 없어 보일 만큼 경직되고 폐쇄적이며 성차별적이었다.
실제로 채용이 이루어졌는지 여부가 불분명함에도 불구하고 1958년에 게재되었던 여기자 채용공고를 통해 한가지 분명하게 미루어 볼 수 있는 것은 당시 본지의 편집국에 상당히 진취적이고, 깨어있고, 개방적이면서 시대를 앞서가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었을 것임을 추정해 보는 데는 전혀 무리가 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요즘 시쳇말로 하는 이른바 ‘꼰대문화’가 만연해 있는 편집국이었다면 1950년대 말에 여기자를 채용한다는 파격적인 발상은 그 누구도 절대로 하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로 본지는 일찍부터 열린 사내문화를 배경으로 다수의 여기자들이 특유의 섬세함과 함께 예리한 필치를 휘두르면서 활약했다. 단적인 예로 최초의 여기자 채용공고가 나간 후 이듬해였던 1959년 9월 20일자 1면에 게재된 본사사령을 보면 최은하(崔恩夏) 기자가 발령되어 편집부 기자로 재직했다. 다만 첫 번째 여기자 채용공고가 나간 시점과의 시간적인 간극이 1년 이상이나 차이가 나타나는 것을 감안하면 당시 본사사령과 첫 번째 채용공고의 직접적인 상관관계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1962년 12월 24일자 1면에 게재된 본사사령을 보면 박희정(朴熙政) 기자가 취재기자로 발령받았다고 나타나 있다. 뒤이어 1964년 4월 16일자 1면의 본사사령을 보면 이광숙(李光淑) 기자가 편집부 기자로 채용되었음이 눈에 띈다. 1966년 2월 14일자 1면에도 최해자(崔海子) 기자와 채명자(蔡明子) 기자가 견습기자로 발령됐다는 내용이 게재되어 있고, 1969년 3월 6일자 1면 하단에도 조병녀(趙炳女) 기자가 발령되었음을 알리는 본사사령이 지면의 한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이처럼 본지는 일찍이 여성의 사회진출이 대단히 미약했던 1950년대 말부터 여기자들의 활약이 끊임없이 이어졌고, 그 같은 추세는 ‘화장품신문’이 창간된 이후로 더욱 활기를 띄고 빛을 발하면서 본지가 여성 저널리스트들이 활약하는 무대의 역할을 하는 데 밑거름이 됐다. 참고로 본지에서 활동했던 역대 여기자들 가운데는 의과대학 정교수로 재직 중인 약사, 약사회 분회에서 부회장까지 역임한 개국약사 등 다수가 퇴사 후에도 사회 각계각층에서 활발하게 활약하고 있다는 사실을 덧붙여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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