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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약기업의 법무·컴플라이언스(Legal & Compliance, L&C) 조직이 단순히 법률과 규정 준수 여부를 검토하는 역할을 넘어 신약 개발과 사업 혁신을 지원하는 전략적 파트너로 변화하고 있다. 의약품 개발과 사업화 과정이 복잡해지고 인공지능(AI)을 비롯한 새로운 기술의 활용이 확대되면서, 혁신을 추진하는 동시에 잠재적인 위험을 관리하는 L&C의 역할도 중요해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저스터스 추아(Justus Chua) 베링거인겔하임 아시아태평양 지역 허브(ASKAN) 법무 및 컴플라이언스 총괄은 최근 약업닷컴과의 인터뷰에서 L&C가 법률적인 판단을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비즈니스를 이해하며 관련 부서와 함께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조직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제약산업에서 혁신과 규제 준수가 서로 대립하는 개념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기업이 새로운 기술과 사업 방식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되, 그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충분히 이해하고 책임 있는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L&C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추아 총괄은 “L&C는 비즈니스를 이해하고 함께 고민하는 전략적 비즈니스 파트너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며 “법률과 컴플라이언스에 대한 전문성뿐 아니라 제품과 치료 영역, 커머셜 및 메디컬 전략 등 비즈니스 전반을 이해하는 역량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국베링거인겔하임이 올해 창립 50주년을 맞은 가운데 진행된 이번 인터뷰에서는 제약산업의 혁신과 규제 환경 변화에 대응하는 L&C의 역할을 비롯해 AI 활용에 따른 윤리적 고려사항, 한국법인의 부서 간 협업 사례, 글로벌 원칙과 현지 규제의 조화 등이 다뤄졌다.
규제 검토 넘어 사업 초기부터 협업…L&C 역할 확대
추아 총괄은 약 14년 전 베링거인겔하임에 합류했다. 당시 담당 지역에는 별도의 L&C 조직이 없었으며, 그는 첫 번째 구성원으로서 조직과 업무 프로세스, 표준작업절차서(SOP), 가이던스 등을 구축하는 업무를 맡았다.
현재 베링거인겔하임의 ASKAN 지역 L&C 조직은 총 18명으로 구성돼 있다. 싱가포르에 지역 사무소를 두고 동남아시아와 한국, 호주 및 뉴질랜드 등의 법무·컴플라이언스 업무를 담당하며, 한국에는 3명의 L&C 인력이 근무하고 있다.
추아 총괄은 조직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법률 지식만큼 중요한 것이 사업에 대한 이해였다고 설명했다. 조직의 문화와 구성원은 물론 제품, 치료 영역, 고객, 제품을 시장에 선보이는 방식까지 파악해야 실제 업무에 필요한 절차와 기준을 마련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조직을 만드는 과정을 집을 짓는 일에 비유했다. 업무 프로세스와 문서, 사람이 조직의 기반이라면 이들을 하나로 연결하고 지탱하는 지붕은 조직문화라는 설명이다.
특히 과거 법무 조직이 사업부와 일정 부분 분리된 상태에서 법률적 판단을 제공했다면, 현재는 사업 과정에 보다 밀접하게 참여하는 형태로 변화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추아 총괄은 “마케팅과 IT, 메디컬, 커머셜 등 대부분의 비즈니스 활동에는 법률과 컴플라이언스 측면이 존재한다”며 “해당 영역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법적인 영향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L&C는 사업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초기부터 관련 부서와 협력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베링거인겔하임의 L&C 조직은 연구개발과 의학부, 시장접근 및 헬스케어 관련 부서인 MAHA(Market Access & Healthcare Affairs), 마케팅 등 다양한 조직과 협업하고 있다. 프로젝트가 상당 부분 진행된 이후 검토 의견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계획 단계부터 논의에 참여하는 방식이다.
이처럼 초기부터 참여하면 사업의 목적과 배경을 이해하는 동시에 잠재적인 법률·규제 위험을 사전에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 추아 총괄의 설명이다.
그는 메디컬 조직의 회의에 참여할 때도 단순한 검토자가 아니라 해당 팀의 일원으로서 함께 논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추아 총괄은 “베링거인겔하임에서는 이를 ‘목적에 기반한 협업(Collaboration with Purpose)’이라고 표현한다”며 “환자를 위해 빠르게 움직이면서도 강력하고 책임 있는 의사결정을 내려야 하며, L&C는 비즈니스 목표가 법률과 컴플라이언스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실현될 수 있도록 지원한다”고 말했다.
AI 활용 확대…“기술은 사람이 통제하고 검증해야”
AI를 비롯한 새로운 기술의 활용은 추아 총괄이 강조한 또 다른 과제다. 제약기업들이 의약품 개발과 임상시험, 규제 등록 및 허가 등 다양한 영역에서 새로운 기술의 활용을 모색하면서, 이를 책임 있게 관리하기 위한 기준도 중요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추아 총괄은 새로운 기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것과 적절한 관리 체계를 마련하는 것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L&C는 새로운 기술과 시스템, 도구를 적극적으로 탐색하면서 AI가 기존 업무 방식과 의사결정을 어떻게 강화하거나 보완할 수 있을지 살펴봐야 한다”며 “중요한 것은 AI가 사람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AI를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특히 제약산업에서 AI를 활용할 때는 개인정보 보호와 데이터의 적절한 활용, 데이터 자체의 신뢰성, AI가 도출한 결과의 정확성 등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AI가 업무 효율성과 의사결정을 지원할 수 있지만, 기술이 제시한 결과를 검증하지 않은 채 그대로 활용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추아 총괄은 일부 제약기업들이 의약품 개발과 규제 등록을 가속화하기 위해 AI 활용을 모색하고 있다고 언급하면서도, 이러한 기술에 과도하게 의존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결국 환자가 사용하는 의약품을 다루는 만큼 AI가 도출한 결과를 사람이 확인하고 검토하는 과정은 여전히 필요하다”며 “이것이 책임 있는 혁신(Responsible Innovation)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L&C는 기술의 활용 범위를 검토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적절한 가이던스와 가드레일(Guardrail), 거버넌스 체계를 제공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다만 관리 체계가 혁신 자체를 제한하는 방향으로 작동해서도 안 된다고 강조했다.
추아 총괄은 “거버넌스나 규칙이 지나치게 무거우면 혁신을 저해할 수 있고, 반대로 연구와 혁신에만 집중해 적절한 규칙과 가이던스를 마련하지 않는다면 조직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혁신과 거버넌스 사이의 균형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베링거인겔하임은 AI의 책임 있는 사용을 위한 교육과 가이던스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L&C 조직도 IT팀과 마케팅팀 등 관련 부서와 협력하고 있다.
추아 총괄은 새로운 기술을 활용하는 과정에서 L&C가 민첩성과 유연성을 갖추면서도 기업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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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제품 출시부터 환자단체 협력까지…한국 L&C의 실질적 역할
L&C가 실제 사업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지는 한국베링거인겔하임의 협업 사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추아 총괄은 한국 L&C 조직이 마련한 ‘출시 전 플레이북(Pre-launch Playbook)’을 대표적인 사례로 소개했다.
출시 전 플레이북은 신제품 출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커머셜팀과 마케팅팀 등이 참고할 수 있도록 법적으로 허용되는 활동과 관련 기준 등을 정리한 가이드다.
이를 통해 관련 부서들이 신제품 출시를 준비하면서 환자단체와 소통하거나 다양한 활동을 추진할 때 법률 및 컴플라이언스 측면에서 고려해야 할 사항을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는 설명이다.
추아 총괄은 “L&C는 새로운 아이디어나 프로젝트를 최종 단계에서만 검토하는 것이 아니라 계획 초기부터 관련 부서와 함께 논의한다”며 “단순히 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판단하는 데 그치지 않고, 어떻게 하면 법률과 컴플라이언스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실행할 수 있을지를 함께 고민한다”고 말했다.
출시 전 플레이북 역시 한국 L&C 조직이 관련 부서와 초기 단계부터 협력했기 때문에 마련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환자단체와의 소통 역시 L&C가 관여하는 중요한 영역이다.
추아 총괄은 최근 제약산업에서 의료진뿐 아니라 실제 치료를 받는 환자와 환자가족의 경험을 이해하는 일이 중요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환자가 치료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과 필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환자와 가족의 목소리를 듣는 과정이 필요하지만, 제약기업이 환자단체와 협력할 때는 적절한 법률·윤리적 기준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베링거인겔하임의 L&C 조직은 관련 부서가 환자단체와 소통하는 과정에서 개별 제품에 관한 언급을 피하고 과학적 정보, 임상적 진단 및 치료 등에 관한 내용을 중심으로 논의할 수 있도록 가이던스를 제공하고 있다.
대화의 목적과 내용, 맥락을 검토하고 적절한 소통 범위를 제시하는 것도 L&C의 역할에 포함된다.
데이터 활용에서도 부서 간 협업이 이뤄지고 있다. 추아 총괄은 데이터가 중요한 지식과 정보를 제공하는 자산이지만, 부적절하게 활용되거나 오용될 경우 기업에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한국으로 유입되거나 한국에서 해외로 이전되는 데이터에 대해서도 개인정보 보호와 데이터 관리에 관한 기준을 제공하며, 구성원들이 데이터를 책임 있게 관리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한국 L&C 조직의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다양한 사업부의 초기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고 있다며, L&C를 전략적 비즈니스 파트너로 활용하는 것이 책임 있고 투명한 의사결정에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신뢰와 윤리 원칙이 지속가능한 성장의 기반
추아 총괄은 L&C가 혁신과 사업을 지원하는 조직으로 변화하더라도 신뢰와 윤리 원칙(Integrity)은 변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제약기업이 혁신적인 의약품을 개발해 환자의 삶을 변화시키는 것뿐 아니라, 그 과정 자체가 높은 수준의 윤리적 기준과 신뢰를 바탕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단순히 법률과 SOP, 내부 규정을 준수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각각의 규정이 왜 만들어졌으며, 어떤 위험을 예방하기 위한 것인지 임직원 스스로 이해해야 실제 업무에서도 책임 있는 판단을 내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추아 총괄은 “환자가 자신이 복용하는 의약품을 만든 회사를 신뢰하지 못하거나 높은 수준의 윤리 원칙을 갖추고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제품의 안전성과 유효성에 대해서도 우려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환자뿐 아니라 의료진, 동물약품 고객, 축산 농가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와의 관계에서도 신뢰가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신뢰를 구축하기 위한 조직문화로는 ‘자유로운 의견 제시(Speak Up)’를 강조했다.
임직원들이 문제점이나 우려를 자유롭게 제기하고 서로 다른 의견을 논의할 수 있어야 조직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잠재적인 위험을 사전에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추아 총괄은 “구성원들이 자유롭게 목소리를 내면 조직의 규칙이나 프로세스에 존재하는 문제점을 발견하고 잠재적 리스크에 대응할 수 있다”며 “의견을 제시했다는 이유로 불이익이나 보복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서로 다른 관점을 검토하는 과정이 의사결정의 질을 높일 수 있다는 점도 언급했다. 모든 판단이 항상 옳을 수는 없지만 다양한 의견을 충분히 고려하는 것이 보다 책임 있는 의사결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특히 아시아 지역에서는 문화적 특성에 따라 의견 표현 방식이 서구권과 다를 수 있는 만큼, 서로를 존중하면서도 솔직하게 대화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로벌 윤리 원칙은 동일…실행 방식은 현지 환경에 맞춰야”
ASKAN 지역의 L&C를 총괄하는 추아 총괄에게 국가별 규제와 문화의 차이에 대응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ASKAN 지역에는 동남아시아와 한국, 호주 및 뉴질랜드 등 13개 국가가 포함돼 있다. 각국은 보건의료 시스템과 정부 체계, 언어, 문화, 경제적 환경 등이 서로 다르다.
추아 총괄은 이러한 차이를 고려할 때 모든 국가에 일률적인 방식(One Size Fits All)을 적용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다만 실행 방식의 유연성과 글로벌 윤리 원칙의 일관성은 구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베링거인겔하임이 글로벌 차원에서 공유하는 핵심 윤리 원칙과 기준은 어느 국가에서나 일관되게 적용돼야 한다”며 “각 국가의 환경에 맞춰 실행 방식을 조정할 수는 있지만 신뢰와 윤리 원칙 자체는 타협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국과 태국만 비교해도 문화와 인식에 차이가 있는 만큼, 현지 상황을 충분히 이해하는 L&C 조직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각국의 현지 L&C 담당자들이 시장별 규제 환경과 위험을 파악하고, 사업부와 직접 협업하면서 글로벌 원칙을 실제 업무에 적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추아 총괄은 향후 제약산업에서 혁신적인 의약품의 개발과 신속한 공급에 대한 기대가 더욱 높아지는 만큼 L&C 역시 변화하는 산업 환경에 맞춰 발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L&C는 피해야 할 리스크를 정의하는 것을 넘어 비즈니스 전략이 책임 있는 방식으로 실행되도록 지원하고 조직의 성장을 뒷받침해야 한다”며 “이러한 성장은 궁극적으로 환자와 고객의 삶을 변화시키는 데 기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베링거인겔하임 창립 50주년의 의미에 대해서도 신뢰와 윤리 원칙을 강조했다. 지난 50년간 유지해 온 가치가 앞으로의 성장 과정에서도 중요한 기준이 돼야 한다는 설명이다.
추아 총괄은 “베링거인겔하임은 단기적인 이익보다 장기적인 안정성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며 “의약품과 치료제 개발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한 만큼 다음 해의 성과뿐 아니라 5년, 10년 이후까지 바라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신뢰와 윤리 원칙은 향후 50년, 100년에도 베링거인겔하임을 지탱하는 기반이 될 것”이라며 “앞으로도 혁신적인 의약품을 통해 미충족 의료 수요를 해결하고, 환자와 고객이 더 건강하고 오래,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기여하는 것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방향”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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