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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바이오텍이 기존 우울증 치료제 벤라팍신(Venlafaxine)을 항암제 유발 탈모(Chemotherapy-Induced Alopecia, CIA) 예방 치료제로 재창출하는 전략을 공개했다. 이미 빠진 모발의 재성장을 촉진하는 방식이 아니라 항암제로 인한 모낭 손상 자체를 줄이는 접근이다. 마우스와 사람 모낭 모델에서 보호 효과를 확인하고 두피 국소제형 개발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에피바이오텍 정매 이사는 20일 인천 송도 연세대학교 국제캠퍼스에서 열린 ‘제3회 연세종약 심포지엄’에서 ‘Venlafaxine을 이용한 항암제 유발 탈모 연구’를 주제로 발표했다.
CIA는 파클리탁셀·도세탁셀 등 탁산 계열과 독소루비신, 사이클로포스파마이드 등 세포독성 항암제가 성장기 모낭의 매트릭스 세포를 손상시키면서 발생한다. 대부분 치료 종료 후 회복되지만 일부 환자에서는 지속성 탈모로 이어질 수 있다.
현재 대표적인 예방법은 두피 냉각요법이다. 항암제 투여 전후 두피를 냉각해 혈류를 줄이는 방식이지만 항암제별 효과 차이, 장시간 착용, 비용 부담 등의 한계가 있다. 미녹시딜은 이미 발생한 탈모의 회복을 돕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정 이사는 “항암제는 빠르게 분열하는 세포를 공격하기 때문에 암세포뿐 아니라 성장기 모낭의 매트릭스 세포도 함께 손상시킨다”며 “단순히 빠진 모발의 재성장을 촉진하는 것이 아니라, 항암제로부터 모낭 자체를 보호해 탈모 발생을 줄이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두피 냉각요법은 혈관을 수축시켜 모낭으로 전달되는 항암제 양을 줄이는 방식”이라며 “여기에 세포 안으로 들어온 약물을 밖으로 내보내는 P-당단백질(P-glycoprotein) 기능까지 고려해, 항암제 유입은 줄이고 세포 내 약물 배출은 높이는 방향으로 후보물질을 발굴했다”고 설명했다.
AI로 기존 약 다시 찾았다…벤라팍신·데스벤라팍신 선정
에피바이오텍은 자체 탈모 신약 발굴 플랫폼 ‘Hair.I’를 활용해 후보물질을 좁혔다. 바이오·임상 빅데이터 분석 ‘EPIGene’, 탈모 연관도 분석 인공지능 ‘AlopeciAI’, 동물·체외 효능평가 ‘EPICacy’를 연계해 약 10개 후보를 도출한 뒤 벤라팍신과 활성대사체 데스벤라팍신(Desvenlafaxine)을 선정했다.
두 물질은 세로토닌·노르에피네프린 재흡수 억제제(SNRI) 계열 항우울제로 사용돼 온 성분이다. 정 이사는 “임상 사용 경험과 안전성 데이터가 축적된 약물을 활용하는 약물재창출 전략”이라며 “CIA에서는 경구제가 아닌 두피에 직접 적용하는 국소제형으로 개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연구진은 사이클로포스파마이드 150mg/kg을 단회 복강투여하는 CIA 마우스 모델을 구축했다. 사이클로포스파마이드 처리군에서는 뚜렷한 탈모와 모낭 구조 손상이 나타났지만 벤라팍신과 데스벤라팍신 국소 도포군에서는 모발 커버리지와 모낭 구조가 상대적으로 유지됐다.
조직 분석에서도 사이클로포스파마이드 처리군은 세포 증식 지표 Ki-67이 감소하고 TUNEL 양성 세포와 cleaved caspase-3 발현이 증가했다. 후보물질 처리군에서는 Ki-67이 증가하고 세포사멸은 감소하는 방향을 보였다.
정 이사는 “후보물질 처리 후 모낭세포 증식은 회복되고 세포사멸은 감소했다”며 “단순한 재성장이 아니라 항암제로 인한 모낭 손상 자체를 줄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사람 모낭 체외 장기배양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사이클로포스파마이드 활성대사체인 4-hydroperoxycyclophosphamide(4-HC)를 처리하면 성장기 모낭의 퇴행기 전환과 세포사멸이 증가했지만, 벤라팍신과 데스벤라팍신 처리 시 이러한 변화가 억제됐다.
연구진은 단일세포 RNA 시퀀싱(scRNA-seq)을 통해 총 4만3230개 세포를 12개 세포집단으로 나눠 분석했다. CIA에서는 표피세포의 상대적 비율이 감소하고 섬유아세포·진피유두세포·진피초 등 간엽계 세포의 상대적 비율은 증가했다. 상피-간엽 전환(Epithelial-Mesenchymal Transition) 관련 신호도 활성화됐지만 벤라팍신 처리 후에는 정상화 방향의 변화가 나타났다.
정 이사는 “사람 모낭에서도 4-HC로 유도된 퇴행기 전환과 세포사멸이 줄었고, 단일세포 분석에서도 CIA로 변화한 세포 구성과 EMT 신호가 벤라팍신 처리 후 정상화되는 방향을 보였다”며 “향후 두피 국소제형으로 개발해 모낭을 보호하면서 전신 노출은 최소화하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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