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화는 누구에게나 찾아오지만 오랫동안 의학의 영역에선 ‘막을 수 없는 현상’으로 여겨졌다. 피부과 전문의 박진남 닥터스킨 대표는 많은 사람이 당연하게 받아들이던 그 질문에 다른 방식으로 접근했다. 왜 늙는지, 피부는 왜 변하는지, 그 과정을 설명하는 생물학적 원리가 무엇인지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그의 연구 결과물은 화장품으로 꽃피었다. 박 대표는 피부과 전문의로 활동하며 쌓은 경험과 오랜 연구를 바탕으로 여드름성 피부 완화 제품부터 탄력 관리, 모발 관련 제품 등을 개발헸다. 최근 본지와 진행한 서면 인터뷰에서 그는 의사에서 연구자, 그리고 화장품 개발자로 이어진 여정을 담담하게 풀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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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화, 왜 공부해?"
출발점은 진료 현장이었다. 피부과 전문의로 환자를 진료하던 그는 의료보험 체계 안에서 이뤄지는 진료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영역이 있다고 느꼈다. 보다 자유로운 방식으로 피부 문제에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을 찾다 보니 자연스럽게 화장품 연구에 관심을 갖게 됐다.
결정적인 계기는 비타민C 연구였다. 1997년, 경북대 이광호 교수의 고용량 비타민C의 효능연구를 접하면서 기존 의학 지식만으론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후 2000년엔 비타민C를 이온화해 피부에 전달하는 기구와 시약을 개발하고 특허 출원을 했다.
당시 그의 관심사는 병원에 방문해야만 받을 수 있는 시술 효과를 일상 속 제품으로 구현하는 것이었다.
"피부 각질층 침투를 높이고 유효 성분이 피부에 오래 머물 게 할 수 있다면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답을 찾기 위해선 예상보다 훨씬 깊은 공부가 필요했다. 결국 그는 세포 신호전달(cell signaling)과 노화 기전 연구에 몰두했다. 논문을 읽고 연구 모임에 참석하며 관련 분야를 파고들었지만 공부를 하면 할수록 새로운 과제가 보였다.
박 대표는 "7년 정도 매달렸는데도 결국 알게 된 건 뭘 더 공부해야 하는가였다"고 회상했다. 심지어 주변 사람들도 그의 행보를 의아하게 여겼다.
"제가 노화 공부를 시작할 때는 주변 피부과 의사들이 비아냥거리더군요. '노화는 해결 방법도 없는데 왜 하노'라고요."
그래도 그는 꿋꿋하게 노화 연구에 매진했다. 지금은 역노화와 장수 산업이 글로벌 투자 시장의 핵심 분야로 떠올랐지만 당시만 해도 노화 자체를 연구 주제로 삼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박 대표는 부산대학교 약학대학 노화센터 등을 오가며 관련 연구를 이어갔고, 자신보다 앞서 연구해 온 학자들을 통해 방향을 잡아갔다.
그는 "유병팔 교수님, 정해영 교수님 등 저보다 10년, 20년 먼저 공부한 교수님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큰 행운이었다"고 말했다.
전문의 경험 제품에 담아
오랜 연구 끝에 얻은 첫 결실은 여드름성 피부를 위한 제품이었다. 박 대표는 7년간의 노화 연구 과정에서 축적한 염증 조절 기전과 경피흡수 관련 지식을 바탕으로 천연물 원료를 활용한 여드름성 피부 완화 제품 ‘닥터스킨 B1솔루션’ 을 개발했다. 이후 고용량 비타민을 활용한 탄력 관리 제품 ‘셀온 T1 세럼’ 등을 시장에 내놨다. 최근엔 모발 밀도 개선을 목표로 한 세럼도 임상시험을 진행 중이다. 닥터스킨의 모든 제품은 의료 채널 중심 사업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현재는 600여곳의 피부과에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
그는 닥터스킨의 성장 배경으로 마케팅보다 제품력을 꼽는다.
"2009년부터 광고 없이 피부과 전문의들에게만 공급하면서도 매출이 꾸준히 늘었습니다. 차별화된 제품 효능이 큰 힘이 됐습니다."
실제로 제품력에 대한 자신감은 소비자 반응을 통해서도 확인했다. 2023년에는 한 대형 인플루언서가 B1솔루션을 소개한 뒤 연간 약 15만병이 판매됐다. 당시 현장 관계자들은 매우 이례적인 사례로 받아들였다.
박 대표는 "소비자가 돈을 내고 제품을 사는 이유는 결국 얻어가는 것이 있기 때문"이라며 "앞으로는 기능과 효능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제품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피부과 전문의로서의 경험과 노화 연구 과정에서 얻은 지식을 제품으로 구현하는 데 집중해 온 그는 '효능 중심 접근'을 거듭 강조했다. 닥터스킨이 광고보다 연구개발에 집중해 온 이유이기도 하다.
생물학에서 해답 찾아
박 대표는 제품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준으로 '생물학적 관점'을 꼽았다. 피부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단순 증상이 아닌 세포와 조직 수준의 변화로 이해해야 한다는 의미다.
브랜드 이름에도 이러한 철학이 담겨 있다. 셀온(CELL:ON)은 세포 내 효소와 유전자 조절 과정에 대한 관심을 의미하며, 닥터 타임필(Dr.TIMEPEEL)은 노화된 시간을 벗겨낸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현재 셀온은 중장년층을 중심으로 여드름성 피부 완화 제품을 전개하고 있으며, 타임필은 보다 고연령층을 대상으로 탄력 관리와 안티에이징 제품군을 선보이고 있다.
기술력이 글로벌 경쟁력
닥터스킨은 현재 중국과 인도네시아를 포함한 10여 개 해외 시장에도 진출해 있다. 해외 시장에선 여드름성 피부 완화 제품이 특히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박 대표는 한때 해외 시장 개척에 많은 시간을 쏟았다. 코로나19 이전에는 연간 290일 가까이 해외를 오가며 바이어를 만났을 정도다. 그러나 다양한 시장을 경험하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해외 기업과 협력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가장 먼저 요구받는 것이 국내 판매 실적과 시장 검증이었기 때문이다.
“확실한 기술력으로 국내 시장에서의 기반을 탄탄히 다지는 것이 해외 진출의 출발점이라는 것을 깨달았죠.”
제품 경쟁력이 그 어떤 마케팅보다 중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한 박 대표는 연구개발과 제품 고도화에 더욱 집중하고 있다. 그는 "좋은 제품을 만들고 이를 제대로 알릴 수 있는 회사와 함께 성장하고 싶다"고 말했다.
20여 년 전 ‘왜 늙음을 연구하느냐’는 질문을 받았던 피부과 의사는 지금도 같은 주제를 탐구하고 있다. 진료실에서 시작된 고민은 연구실을 거쳐 제품 개발로 이어졌고, 그 과정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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