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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시장에서 화장품 원료로 재조명되고 있는 칸나비디올(CBD)에 대한 사용 논의가 국내에선 제자리걸음이다.
CBD는 피지 조절이나 항산화 등의 효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화장품과 의약품 원료로 주목받아왔으나 대마초 추출 물질이어서 안전성 여부로 규제를 받아왔다. 최근 유럽과 일본 등지에선 안전 농도를 마련하는 등 화장품 원료 활용의 길을 열어 주고 있으나 우리나라에선 여전히 규제 대상으로 남아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현재 CBD의 화장품 사용과 관련해 특별히 절차가 진행되고 있지 않다"고 10일 밝혔다.
유럽연합 소비자안전과학위원회(SCCS)는 최근 화장품에 사용하는 CBD의 안전 농도를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SCCS는 "순수 CBD는 피부용 및 구강용 화장품에서 최대 0.19% 농도까지 안전하다"며 "CBD 원료에 불순물로 존재할 수 있는 델타9-THC는 피부용 및 구강용 화장품에서 0.00025%까지 안전하다"고 밝혔다. 스프레이 형태와 같이 호흡기를 통해 폐로 흡입될 수 있는 화장품은 안전성을 입증할 독성 데이터가 부족해 이번 안전 농도 평가 대상에서 제외됐다.
CBD는 추출과정에서 향정신성 물질인 THC(테트라하이드로칸나비놀)가 잔류할 가능성이 있고 원물인 대마초 자체가 마약류로 통제되는 만큼, CBD의 상업적 사용 허가와 안전성 기준은 화장품 업계의 주요 쟁점이었다.
유럽에서 CBD는 오랫동안 규제 해석의 경계에 놓여 있었다. EU 화장품 규정에 CBD 자체를 금지 성분으로 명시한 조항은 없었지만, 부속서 2의 306번 항목은 1961년 마약 단일협약 표 I·II에 오른 물질의 화장품 사용을 금지하고 있었다. 이에 따라 대마에서 추출되는 CBD 역시 화장품 원료로는 규제돼 왔다.
2020년 EU 사법재판소가 '순수 CBD를 유엔 마약 단일협약상 마약으로 보지 않는다'고 판단하면서 규제 흐름에 변화가 생겼다. 순수 CBD와 대마 추출물을 구분해 볼 여지가 생겼고, 이후 CBD 자체의 안전성과 원료에 비의도적으로 남을 수 있는 THC의 잔류 가능성을 별도 평가해야 한다는 논의가 이어졌다.
이번 SCCS 최종 의견은 CBD 사용에 대한 구체적 기준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SCCS 의견이 현재 법적 의무를 새로 만들거나 EU 화장품 규정을 변경한 것은 아니지만, 유럽위원회의 향후 규제 결정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EU 화장품 규제 컨설팅사 CE.way는 최근 자사 블로그를 통해 이번 SCCS 의견이 "CBD의 화장품 사용에 대해 처음으로 명확하고 조화된 안전 한도를 마련한 것"이라며 "CBD 농도와 델타9-THC 불순물 기준이 함께 제시되면서 공급업체의 원료 검증 부담도 커졌다"고 분석했다.
다만, 유럽 내 CBD 안전성 논의가 완전히 마무리된 것은 아니다. 프랑스는 지난해 CBD를 생식독성 우려 물질로 분류하자는 조화분류·표시(CLH) 제안을 유럽화학물질청(ECHA)에 제출했다. 현재 유럽화학물질청 위험평가위원회(RAC)의 평가가 진행 중이며, 평가 기한은 오는 8월까지다.
이에 앞서 일본은 2024년 12월 개정 대마초취체법 및 마약·향정신약취체법 개정안 일부를 시행하면서 대마 추출 물질에 대한 관리 방식을 THC 잔류량 기준으로 전환했다. 기존엔 대마의 성숙한 줄기나 종자 등 유래 부위를 중심으로 규제 여부를 판단해 왔지만, 개정법 시행 이후에는 최종 제품에 남아 있는 델타9-THC 함량이 직접적인 판단 기준이 됐다.
일본 후생노동성은 제품 형태에 따라 델타9-THC 잔류 한도를 설정했다. 오일과 분말은 10㏙, 수용액은 0.10㏙, 그 외 제품은 1㏙이다. 후생노동성은 이 기준을 초과하는 양의 델타9-THC를 함유한 제품은 마약에 해당한다고 명시했다.
화장품도 최종 제품의 형태에 따라 이 기준을 적용받는다. 화장수처럼 수용액 형태에 해당하는 제품은 0.10㏙, 오일 제형은 10㏙, 그 외 제형은 1㏙을 기준으로 델타9-THC 잔류량을 관리해야 한다. 기준 이하 제품은 대마 유래 여부와 관계없이 마약 규제 대상에서 제외된다. 일본 당국은 2026년 5월 1일 자로 델타9-THC 검사가 가능한 기관 목록도 게시했다.
일본의 변화가 CBD 제품의 전면 허용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일본 후생노동성 및 마약취체부 안내에 따르면 "대마 사용죄를 신설해 오남용 규제는 강화하면서도, 델타9-THC 잔류량이 기준 이하인 제품은 마약 규제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식"으로 관리 체계를 바꾼 것이다.
SCCS가 제시한 기준이 화장품 원료로 쓰이는 순수 CBD의 최대 농도와 원료 내 THC 불순물 허용치를 제한하는 것에 관한 것이라면, 일본은 제조 과정이나 대마 추출 부위를 따지지 않고 최종 완성품에 남은 THC 잔류량을 측정해 합법과 불법의 경계를 나누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는 데 차이점이 있다.
한편 한국은 화장품 원료로서의 CBD 활용이 여전히 제한돼 있다. 지난해 5월 대법원 판결과 이후 식품의약품안전처 입장을 통해, CBD가 추출 부위나 제조 방법과 관계없이 마약류관리법상 '대마'에 해당한다는 해석이 재확인됐다.
지난해 5월 대법원은 화장품 원료 수입업자가 제기한 표준통관예정보고 거부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낸 원심을 파기환송했다. 핵심 쟁점은 대마초의 규제 제외 부위에서 분리 정제한 CBD 아이솔레이트(Isolate)의 수입 가능 여부였다.
대법원은 "마약류관리법은 대마 주요 성분으로 CBN, THC, CBD를 보고 있다"며 "대마초의 종자나 뿌리, 성숙한 줄기 등과 그 제품을 대마에서 제외한다고 해서, 그 부위에서 추출 및 제조된 CBD 성분 자체까지 대마에서 제외된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또한 "CBD의 의학적, 상업적 효용 때문에 마약류에서 제외할 필요성이 있더라도 이는 입법으로 다뤄야 할 문제"라고 덧붙였다.
식약처는 이후 "CBD는 추출 부위나 제조 방법과 관계없이 마약류관리법상 대마에 해당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어 "섬유 가공, 종자 채취, 식품 원료 등 산업적 용도의 제한적 허용은 변함없으나, CBD 함유 제품의 국내 반입이나 사용 시 마약류관리법에 따라 처벌될 수 있다"고 명시했다.
현재 국내에서 CBD 성분 실증이 진행되는 곳은 경북 산업용 헴프 규제자유특구에 국한된다. 특구에선 2024년 12월 1일부터 2027년 11월 30일까지 실증 사업 연장이 승인됐다. 다만 임시허가의 주요 내용은 헴프 잎 또는 미수정 암꽃 등에서 원료의약품급 CBD를 제조해 수출하거나, 의료 목적 제품 개발 시험을 진행하는 것에 맞춰져 있어 일반 화장품 원료로의 상용화는 요원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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