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의료인한테 1조원 정도 더 쓰는 게 그렇게 배가 아픈가요? 다들 고생했잖아요.”
오는 31일 2023년도 요양급여비용 계약을 앞둔 보건의료 협단체들의 2차 수가협상이 지난 27일 마무리됐다. 하지만 시간만 속절없이 흘렀을 뿐 진척은 없었다. 코로나19 손실보상액을 수가협상에 반영해 밴드(추가소요예산)를 결정해야 한다는 가입자 단체와,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누구보다 혼신의 노력을 다했다는 공급자 단체의 입장이 팽팽히 맞섰기 때문이다. 결국 2차 협상은 1차 밴드에 대한 ‘밀당’조차 시도하지 못하고 끝이 났다.
“코로나19 극복 위해 노력” 한목소리…타결까지 난항 예고
지난 23일 재정운영위원회 소위원회 2차 회의 직후 윤석준 위원장은 이번 수가협상이 녹록치 않을 것이라고 예고했다. 일반적으로 재정소위 2차 회의에서 1차 밴드에 대한 윤곽이 드러나고, 이를 바탕으로 각 유형별로 2상 협상을 진행하는 반면, 이번 2차 회의는 밴드도 결정되지 않은 채 끝났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이틀 후인 지난 25일 대한치과의사협회 2차 협상과 거의 동시간대에 비공식으로 열린 재정운영위 소소위원회에서 가입자들이 밴드를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지만 여기서도 결론은 나지 않았다. 결국 연이어 열린 대한의사협회(26일), 대한한의사협회‧대한병원협회‧대한약사회(27일) 모두 ‘1차 밴드’ 수치 없이 2차 협상 테이블에 앉았다.
단체별 수가협상단장들은 본격적인 협상은 시작도 해보지 못했다며 불만을 쏟아냈다. 2차 협상 첫 테이프를 끊었던 치협의 김수진 보험이사는 “1차밴드가 제대로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구체적인 논의를 하기엔 어려웠다”며 “매번 수가협상 때마다 새로운 이슈가 덧붙는데, 이번에는 코로나19 손실보상과 예방접종이 추가 이슈로 떠오르면서 협상 과정이 파행을 겪게 됐다”고 털어놨다.
김 이사는 “2차 협상은 보통 각자가 원하는 수치를 얘기하면서 시작되지만 이번에는 불행히도 기본적인 협상 배경조차 마련되지 않았다”면서도 “저희와 거의 동시에 열렸다는 소소위원회에서 밴드가 결정되면 최총 협상일 전 실무진 선에서라도 추가 협상을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날 열린 소소위원회에서도 1차 밴드를 결정짓지 못했다. 이에 따라 이틀 후인 25일 의협 2차 협상에서도 “코로나19로 의사 감염‧사망이 늘었는데, 손실보상과 수가협상 연계가 말이 되느냐”며 볼멘 소리가 터져나왔다. 의협 수가협상단장을 맡은 김동석 대한개원의협의회장은 “코로나19로 인한 의료계 피해가 입증된 만큼, 이번 밴드 규모는 적어도 2~3조원이 돼야 한다”며 “계속 의료계에 희생만을 강요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강하게 말했다.
그러면서 “중앙방역대책본부에 오미크론 사태 이후 의료진의 감염‧사망 규모에 대한 통계를 요구했지만 아직까지 받지 못했다”며 “의사들은 코로나 방역과 치료를 위해 목숨을 건 만큼 그에 대한 보상은 합당하다. 그게 아니라면 말뿐인 ‘덕분에 챌린지’”라고 비꼬았다.
이같은 분위기는 27일 열린 3번의 협상까지 이어졌다. 이진호 한의협 부회장은 “한의협은 지난 몇 년간 원만한 타결을 위해 노력했는데 올해는 타결 가능성에 가장 큰 암울함을 느낀다”며 “국민보건 향상을 위해 헌신한 결과가 이것인가”라고 허탈해했다.
이 부회장은 “손실보상은 말그대로 손실에 대한 보상이며, 이는 저희뿐만 아니라 전국민에 대한 보상차원으로 지급된 것”이라며 “그마저 한의계는 거의 제로에 가까운 손실보상이었다”고 꼬집었다.
그는 “한의계는 간호사 숫자가 24% 증가했다. 인건비가 그만큼 늘어난 것이며 한의원‧한방병원의 의료 질을 높이는데 많이 투자했다”고 강조했다. 또 “수가도 수가지만 비급여의 급여화나 상병수당, 간호간병통합서비스, 장애인주치의제도, 만성질환관리, 재활의료기관시범사업 등 보건의료정책에서 한의계는 철저히 외면받았다”며 “국민건강에 기여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줘야지, 손발 묶어놓고 수가협상만 몇 프로 올리는 것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도 일갈했다.
특히 “밴드 수치를 안 준 건 처음이다. 마지막날 밴드를 줄 것 같은데 그 조차도 황당한 상황”이라며 “그래서 타결 가능성에 가장 암울함을 느낀다. 두려운 마음이다”라고 털어놨다.
병협 수가협상단장인 송재찬 상근부회장도 어두운 표정으로 2차 협상을 마무리했다. 송 부회장은 “밴드 숫자는 별도로 제시되지 않은데다 과거에 비해 호의적이지 않다. 공단도 부정적으로 말했다. 병원은 코로나19 관련해 특별한 희생을 했고, 그에 따른 손실보상분을 수가협상에 포함시킨다는 것은 합리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다”며 “진료 외 수입을 수가에 거론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있다. 액수를 떠나 이를 급여비 협상에서 언급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가입자 측에 이같은 입장을 전달해달라고 공단에 말했다”고 밝혔다.
그는 “병원은 코로나전담병원, 코로나치료병원 등의 인건비 상승률이 상당하다. 공단은 인건비 상승률이 과거에 비해 높지 않다고 하지만 이는 유형별 차이가 있다. 이를 감안하지 않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수가역전현상도 심각해 병원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환산지수와 관련해서 확대하는 방향으로 가선 안 된다”고 일갈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팬데믹 상황이 코로나19만으로 끝나진 않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적은 밴드나 인상률로 어떻게 병원에 협조를 이끌어내겠느냐. 협회도 회원사인 병원을 설득해야 하는데, 이런 상황에서 동기부여가 되겠느냐”며 “우리나라처럼 적은 보험료로 높은 의료서비스와 접근성을 가진 나라는 없다. 이는 공급자들의 노력으로 이룬 만큼, 이를 무시하고 근시안적인 태도로 의료계를 대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약사회, 쏟아낸 작심발언…“공단이 설득 못했거나 가입자가 오만한 것”
2차 협상 마지막 순서였던 대한약사회 또한 불편한 속내를 감추지 않았다. 수가협상단장인 박영달 경기도약사회장은 “저는 약사회를 대표해 충분히 준비하고 나왔다. 하지만 가입자 측은 공단이 충분히 설득을 못했거나, 가입자들이 오만한 것 같다. 협상하는 이들에게 밴드를 제시하지 않고 회의에 참석한 것 자체가 굉장히 서운한 상황”이라고 작심한 듯 말문을 열었다.
그는 “코로나를 극복하기 위해 많은 보건의료인의 수고가 담보됐다. 이는 형평성 차원에서 일정한 보상이 있어야 한다. 소상공인들은 2020년~2022년 2월까지 받은 재난지원금이 35조7,000억원에 달한다. 이를 업체당 환산해보니 1,235만원이 나온다. 여기에 윤석열 정부는 최소 600만원 손실보상을 해주겠다고 추가경정예산을 마련했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하지만 10만개 정도인 보건의료기관의 경우는 작년 밴드가 1조666억원이었다. 여기에 기관별로 1,000만원씩만 줘도 1조원이다. 자영업자들은 정부로부터 받은 보상금 총액이 60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확인되는데, 가입자들은 코로나19를 극복하기 위해 헌신한 보건의료인한테 1조원 더 쓰는 것이 그렇게 배가 아픈가. 다들 고생하지 않았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그는 “약국의 가장 큰 손실비용은 카드수수료다. 법과 제도에 의해 손실을 피할 수 없는데다 약품비는 점점 늘고 있다. 약국은 전체 매출의 95% 정도가 카드 계산이다. 카드수수료 1.6%로 계산해보니 작년 조제수가 인상액 1,167억원 중 41%가 카드수수료였다. 여기에 상품명 처방이라는 특수한 제도 아래 불용재고약과 약가손실 등으로 1,678억원 정도가 빠져나간다. 약국 2만3,000여개를 대상으로 이 모든 손실을 합치면 2,000억원 수준이다. 올해는 대폭적인 밴드 상승으로 코로나19에 수고한 보건의료인들이 적절한 보상을 받고 새출발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1차 밴드 수치가 제시되지 않은 채 2차 협상이 끝나면서 공급자 단체들의 긴장감은 더욱 커지는 분위기다. 수가협상의 법정 시한은 오는 31일이지만, 통상 자정을 넘어 다음달 새벽이나 오전까지 이어지는 관례를 감안했을 때 6월 1일 마무리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이번에는 6월 1일이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로 인한 법정공휴일인데다, 밴드 규모도 결정되지 않은 만큼 지난해보다 더 큰 진통을 겪을 것이란 전망이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