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국이나 24시간 편의점이 없는 공항이나 항만시설에서도 상비약을 판매할 수 있도록 하는 약사법 일부개정법률안이 입법예고 기간동안 반대 의견에 몸살을 앓으면서 법률 개정에 난항을 겪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정일영 의원이 지난달 28일 대표발의한 약사법 개정안은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정하는 공항과 항만 여객시설에서 안전상비약을 판매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현행법상 비상약을 판매할 수 없는 청주, 대구, 무안, 양양, 광주, 울산, 여수, 포항, 사천, 군산, 원주 공항에서도 이용객이 비상약을 구매할 수 있도록 허용하자는 것이다. 국내 공항 중 인천국제공항과 김포‧김해‧제주공항을 제외한 공항에는 비상약을 구매할 수 있는 판매처가 현재까지 전무한 상황이다.
정일영 의원이 한국공항공사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청주공항 등에는 수년 전부터 공항에서 비상약을 구매할 수 없어 불편하다는 민원이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현행법상 비상약 판매는 24시간 편의점 등 연중무휴 점포와 약국에서만 가능하며, 예외적으로 이용객이 상주하는 콘도와 리조트에 허용돼 있다.
이런 가운데 해당 법률개정안에는 입법예고 마지막 날인 지난 8일까지 600개가 넘는 반대 의견이 쏟아졌다.
정일영 의원실 관계자는 “청주공항의 경우 이용객이 많지 않아 수익성 때문에 편의점마저 24시간 운영하지 않고 있어, 월 임대료 100만원인 약국을 개업하기도 어려운 환경”이라며 “공항에서 가장 가까운 약국도 1km가 넘게 떨어져 있어 이용객이 비상상황에서 약을 구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청주국제공항 약국은 지난해 1월 두 차례 유찰을 거친 끝에도 운영자를 찾지 못했다. 월 100만원 수준의 임대료가 원인이었다.
당시 한국공항공사 청주지사가 공고한 ‘청주국제공항 약국 운영자 선정을 위한 입찰’에 제시됐던 연간 최소 임대료는 1,212만원으로, 일반의약품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특성과 임대료를 감안할 때 쉽지 않은 운영조건이라는 게 주변의 전언이었다.
뿐만 아니라 지난달 5일 한 인터넷 블로그에는 ‘청주공항에는 상비약을 살 수 있는 약국이 아직도 없다’는 글이 올라왔다. 해당 글 작성자는 “최근 청주공항에 식당과 카페가 늘었다. 먹거리에 대한 갈증은 해소가 됐지만 꼭 필요한 약국은 없는 게 아쉽다. 이용자들이 스스로 상비약을 챙겨야 된다. 언제쯤 생길까?”라며 아쉬움을 표했다.
정일영 의원은 “이동 중인 여객이 상존하는 공항이나 항만에서는 예상치 못한 응급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며 “코로나19 팬데믹 종식을 앞두고 공항과 항만 이용객 수가 증가할 것으로 예측되는 만큼, 신속히 법안이 통과돼 여행객들의 안전과 편의가 증진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반면 입법예고에 반대한 의견제출인은 “입법취지는 이해할 수 있으나 판매에 따른 공익적 목적의 달성에 비해 판매자의 확대에 따른 부작용의 폐해가 더 클 것이 예상된다. 판매의 유익을 구하는 목적에 따라 관리기준의 달성이 어렵고 정부의 관리인력 또한 현실적으로 방치할 수 밖에 없을 정도로 부족하기에 관리가 불가한 상황으로 생각한다”며 “의약품 특수성을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점과 현재 인터넷 등으로 불법적으로 유통되고 있는 상황도 관리가 거의 불가한 마당에 이러한 입법은 부작용이 크게 우려된다”고 밝혔다.
또 다른 의견제출인은 “단지 편의를 위해 모든 규제를 푸는 건 신호등 없는 도로를 만드는 것과 같다”고 반대했다. 일각에서는 이같은 대규모 반대 움직임에 대해 약국 상권을 위협당할까봐 예외 규정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제기하고 있다.
이에 따라 입법예고 다음 단계인 보건복지위원회 심사에 눈길이 쏠리고 있다. 그러나 업계의 강한 반대에 부딪히면서 해당 법안이 위원회 심사를 통과할 수 있을 지는 미지수라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