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版 제약 빅딜'이 전혀 예기치 못했던 시나리오로 현실화할 가능성이 수면 위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바이엘社가 23일 총 163억 유로(195억 달러)라는 매력적인 조건으로 쉐링 AG社에 인수를 제안하고 나섰기 때문. 이날 바이엘측은 한 주당 86유로(103달러)를 오퍼 수용에 따른 반대급부로 쉐링측에 제시했다.
한 주당 86유로라면 지난 12일 머크 KGaA社가 쉐링측에 제안했다가 비토당했던 한 주당 77유로(92.4달러)를 12% 이상 뛰어넘는 호조건이다. 이 백기사 오퍼(white-knight offer)가 받아들여질 경우 바이엘은 142년의 회사 역사상 최대 규모의 M&A를 실현할 수 있게 된다.
이와 관련, 애널리스트들은 쉐링과 머크의 M&A說이 오가는 과정에서 바이엘은 그다지 스포트라이트가 쏠리지 않았던 의외의 카드라며 차후 추이를 예의주시하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부 애널리스트들의 경우 쉐링이 머크측 제안을 거부한 직후 오히려 스위스 노바티스社를 제 3의 유력한 파트너로 점찍었을 정도.
바이엘측으로부터 러브콜을 받은 쉐링측은 일단 상당히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머크측이 인수조건을 상향조정해 새로운 제안을 내놓거나, 또 다른 우호적 M&A 파트너가 새롭게 나서지 않는 이상 주주들에게 바이엘측 제안을 수용토록 권고하는 방안을 놓고 검토에 들어갔다는 것.
실제로 쉐링社의 후베르투스 에를렌 회장은 바이엘측 제안이 나오자 "양사의 비즈니스가 상호보완적인 관계에 있으므로 둘의 결합은 경쟁력을 배양할 수 있는 시나리오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입장을 내놓아 기대감을 드높였다.
그러나 한 소식통은 "머크측도 새로운 제안을 내놓을지 유무를 검토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많은 전문가들은 바이엘의 제안이 지난 2001년 블록버스터 콜레스테롤 저하제 '바이콜'(세리바스타틴)을 회수조치한 이후 어려움이 지속되었던 상황에서 꺼내든 국면전환용 카드라며 주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헬스케어 부문이 지난해 올렸던 305억 달러의 전체 매출실적 가운데 40% 이하를 점유했지만, 쉐링 인수를 성사시킬 경우 이 액수가 한해 180억 달러 수준으로 대폭 상향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 이들은 바이엘이 지난 2004년 로슈社로부터 OTC 사업부를 인수했던 것이 M&A를 통한 돌파구 확보플랜의 신호탄이었다는데 한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바이엘의 헬스케어 부문을 총괄하고 있는 아르투르 히긴스 회장도 이번 제안과 관련해 가진 한 인터뷰에서 "특화된 제약기업으로 성장해 왔던 쉐링이 우리에게 이상적인 파트너가 될 수 있다고 평소부터 생각해 왔다"고 말했다.
이 같은 히긴스 회장의 언급은 바이엘이 현재 독일 1위의 제약기업이면서도 세계 랭킹은 16위로 뒤쳐져 있음을 의식한 결과로 풀이되고 있다. 사실 독일은 세계 제약업계에 대형 M&A의 광풍이 몰아치던 당시에도 잔챙이급 입질 성사사례들만이 일부 눈에 띄었을 정도로 자력갱생(?) 기조가 전반적인 분위기를 주도해 왔던 형편이다.
쉐링 인수에 성공할 경우 바이엘은 세계 랭킹 12위로 뛰어올라 일약 '글로벌 톱 10' 재진입이 가시권 안으로 들어오게 된다.
한편 쉐링은 경구용 피임제와 항암제, 다발성 경화증 치료제, 진단용 조영제 분야 등에 전력투구하고 있는 메이커. 바이엘은 심혈관계 치료제와 항당뇨제, 항생제, 항암제 등의 분야에 주력하면서도 다양한 처방약을 발매해 왔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바이엘과 같은 빅 메이커가 쉐링처럼 특화된 중견업체와 손을 잡는 시나리오의 실효성에 의구심을 제기하는 시각도 없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 애널리스트는 "양사가 항암제 분야를 제외하면 공통분모가 없어 M&A가 성사되면 대규모 감원사태를 부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피력했다.
바이엘측도 쉐링 인수에 성공할 경우 전체 재직자의 10% 수준인 6,000명 안팎을 감원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를 통해 오는 2009년까지 7억 유로(8억3,700만 달러) 정도의 비용절감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는 것.
게다가 히든카드 신약으로 꼽히는 진행형 신장세포암종 치료제 '넥사바'(소라페닙 토실레이트)가 지난해 말 FDA로부터 허가를 취득함에 따라 바이엘은 내심 쉐링측이 보유한 항암제 영업인력의 노하우를 등에 업을 수 있으리라 기대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쉐링측이 회사의 독립성 유지를 원하고, M&A에 따른 인력감축을 우려하는 내부의 목소리를 잠재우고 바이엘과 손을 잡는 결단을 내릴 것인지에 비상한 관심이 쏠릴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