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사이클로세린은 '내 머리 속의 지우개'
고소공포증·거식증 막연한 불안감 불식 유도
이덕규 기자 abcd@yakup.com 뉴스 뷰 페이지 검색 버튼
입력 2005-03-22 18:05   수정 2005.03.23 08:28
각종 공포증(phobias)은 약물치료로는 한계가 있는 탓에 행동요법이 주요 치료법으로 선택되고 있는 형편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한 항생제가 가까운 장래에 각종 공포증과 중증 불안장애 등을 치료하는 약물로 사용될 가능성이 시사되어 주목되고 있다.

화제의 항생제는 결핵 치료용도로 사용되고 있는 D-사이클로세린(D-cycloserine)!

D-사이클로세린은 공황(恐慌) 상태나 예민한 신경을 완화시켜 주지는 못했지만, 학습능력과 기억력을 제고시켜 막연한 불안감 등을 빠른 시일 내에 극복할 수 있도록 뒷받침할 수 있으리라는 연구사례들이 공개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 가능성은 지난 2003년 초기단계의 연구를 통해 시사됐었다. 이후로 10여건의 연구사례들이 다양한 증상을 대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후문이다.

미국 에모리大 의대의 케리 레슬러 교수팀은 행동요법에 병행해 D-사이클로세린을 투여했던 환자들의 경우 치료주기를 2회 거친 뒤 고소(高所) 공포증이 괄목할만한 수준으로 개선되었음을 지난해 11월 알아낼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고소공포증을 치료하는데 8회 정도의 치료주기를 거치고 있는 것이 통례임을 상기할 때 놀랄만한 효과가 눈에 들어온 셈.

이에 따라 레슬러 교수팀은 사회공포증, 공황장애, 강박장애 등에 D-사이클로세린이 발휘하는 효과를 관찰하기 위한 시험을 진행 중이다.

연구과정에 참여했던 같은 대학의 마이클 데이비스 박사는 "바리움이나 항우울제로 불안장애를 치료할 경우 대체로 막연한 공포감을 완전히 불식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D-사이클로스포린 투여群에서 나타난 신속하고 우수한 효과에 놀라움을 표시했다.

레슬러 교수팀의 연구논문은 '일반정신의학誌'를 통해 소개됐다.

데이비스 박사는 "그 동안 진행된 연구결과 편도체(amygdala) 내부의 글루탐산 수용체가 외부로부터 전해지는 공포스런 자극을 조정하는 학습에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D-사이클로세린이 바로 이 수용체에 작용하는 것으로 사료된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레슬러 교수팀은 28명의 고소공포증 환자들에게 D-사이클로세린 또는 플라시보를 투여한 뒤 외부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투명 엘리베이터에 탑승토록 했다.

그 결과 D-사이클로세린 투여群의 경우 치료주기를 2회 거친 뒤 불안감을 거의 내비치지 않아 플라시보 투여群과는 상당한 차이를 보였다. 레슬러 교수는 "D-사이클로세린을 투여받았던 환자들의 경우 일상생활 중 높은 다리를 자유롭게 건너다녔을 뿐 아니라 고층건물의 최상층에도 별탈없이 올라갔다"고 밝혔다.

한편 미국 컬럼비아大 의대의 티모시 월시 교수팀은 D-사이클로세린이 신경성 거식증 환자들에게 효과적인지 유무를 관찰하기 위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신경성 거식증은 재발할 확률이 높은 데다 아직껏 뚜렷한 치료약물도 찾기 어려운 증상.

월시 교수팀은 D-사이클로세린이 불안증상 자체에는 손길이 닿지 못하지만, 학습능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신경성 거식증 환자들로 하여금 음식물 섭취에 따른 부정적 영향을 잊도록 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라는 가정에 착안해 연구삼매경에 빠져 있다.

월시 교수는 "신경성 거식증 환자들에게 D-사이클로세린을 투여하면서 음식물에 대한 불안감을 극복토록 훈련시키고 있다"며 "올여름이면 기대되는 연구결과를 내놓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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