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고약이요... 이제 거의 포기상태였어요. 그나마 작년에 이루어진 대한약사회의 재고약반품사업과 금년의 재고현황 파악 사업에 약간의 희망을 걸긴 했지만, 그 역시 당장의 해결보다는 이런 자료들이 쌓이다 보면 전체 차원에서 정부의 제도적인 개선을 요구할 백그라운드가 될 수 있겠다 싶어 협조 했었죠. 더 이상 개별적인 시도들로는 어떤 해결방법도 찾을 수 없다는 것이 제 판단입니다."
동네약국의 재고약 실태를 알아보기 위해 방문한 용산구 A약국 B약사의 씁쓸한 반응이다. 전문약이 약국경영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상대적으로 크지 않지만 고정적인 요양기관에서 처방전이 수용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재고율은 다른 형태의 약국보다 더 높을 수밖에 없고 이런 저런 자구노력 끝에 결국 해결방법이 없어 대부분의 동네약국들이 체념상태나 마찬가지라는 것.
△침체일로 약국경영... 피할 수 없는 재고
의약분업과 함께 전문약의 선택권이 의사에게 집중되면서 약국가가 대형병원 문전이나 클리닉건물 위주로 재편돼 동네약국은 개국가에서 일종의 마이너리그가 돼 버렸다.
"갈수록 환자들은 아프면 병의원에 가야만 한다는 의식이 높아져 일단 병원처방을 먼저 받고 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처방전은 갈수록 문전이나 클리닉 주변 약국으로 몰리고 일반약을 찾는 이들은 줄어들어 전반적인 동네약국 경기는 점차 침체되고 있어요."
이렇게 나빠지는 경영상황 속에서 그나마 동네약국이 유지되는 건 일반약과 단골고객으로부터 들어오는 처방전 수입. 약사 개별 특성상 건기식이나 의약부외품 등 경영다각화에 적극적으로 나서기도 하지만 이를 보편적인 현상으로 보기는 힘들다.
오늘의 주인공인 동네약국 불용재고의 주범은 바로 이 처방전 상의 전문약들.
처방전의 비중은 약국마다 편차가 있지만 A약국의 경우 전체 매출의 1/3 수준이다. 하지만 이중 재고약 발생 비율은 20%∼25%선. 처방전 매출의 수익률을 따져보면 실질적인 조제수입은 제로에서 심하게는 마이너스 수준으로 볼 수 있다. 결국 처방조제와 관련해 투입되는 인력, 설비, 운영비용 등을 감안하면 그렇지 않아도 취약한 동네약국 경영구조에서 퇴출 순위 첫 번째다.
하지만 동네약국으로서는 처방전 부분을 포기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동네약국은 단골손님이 가장 큰 고객인데, 처방전 받지 않겠다고 해서 이들을 놓칠 수 없지 않습니까. 그러다보니 처방전을 받아 실질적으로 손해를 봐도 수용할 수밖에 없고, 결국 전문약 재고발생을 피할 방법이 없게 되는 거죠."
A약사의 경우에도 한동안 병원조제실에서 일한 경험 때문에 일부러 동네약국으로 자리를 잡았는데, 단골손님들이 가져오는 처방전을 거절할 수 없어 하나 둘 받다보니 조제실이 이렇게 커지게 됐고 손해가 나는 줄 알지만 없앨 수도 없다며 한탄했다.
단골 유치 위한 처방약 재고 경영악화 가중
실질 수익률 마이너스, 약국가는 포기상태
△악성 재고, 중소형 의원 처방변경이 주범
이같은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클리닉 주변 약국이나 병원 문전약국은 어느 정도 고정된 처방 패턴이 있지만 동네약국을 찾는 단골들의 처방전은 일단 출처에 일관성이 없다. 그만큼 새로운 전문약에 대한 조제 가능성이 높은 것.
그나마 대형병원들의 처방은 어느 정도 사용되는 전문약의 범주가 정해져 있는 편이어서 대응하기 수월하다. 가장 큰 골치거리는 바로 중소의원의 처방전. 듣도 보도 못한 의원의 처방전이 어쩌다 한번 접수되는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한달에 몇 건씩 처방전이 접수되는 의원들도 그 처방변경 수준이 심각하다. 처방변경이 주로 일어나는 품목은 진통소염제, 당뇨·혈압약, 제산소화제 등 비교적 처방빈도가 잦은 약들이다 보니 더욱 잦은 처방변경을 낳는다.
"최근 들어 특히 이런 경향이 심해져가는 것 같아요. 아마도 경기 침체와 관의 강화된 심사업무 추진 등으로 인해 나타난 경향으로 생각됩니다. 점차 좋은 시설에 클리닉 건물에 들어선 의원으로 환자들이 몰리는 상황에서 경영상태가 어려운 중소형 의원들이 제약사로부터 커미션을 받는 것으로 보이는데...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갑니다. 약사들도 의약분업 전에는 이런 관행에서 100% 깨끗했다고 할 수는 없으니까요. 하지만 이건 경우가 좀 다릅니다. 의원의 처방변경은 재고약이라는 형태로 약국가에 고스란히 전가돼 경제적인 피해를 주는 것 아닙니까."
△의원이 더 싼약 처방, 대체조제도 할 수 없어...
그렇다면 적극적인 대체조제 노력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을까?
일단 기존에 제기되던 대체조제의 가장 큰 정당성은 건강보험재정 절약에서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재고약 문제로 인해 대체조제 협조를 구하고자 해도 의원들이 먼저 싼 의약품을 사용하는 바람에 시도 해보기도 힘든 지경이라고 한다.
"의원들의 약 선택 기준도 특별히 약효나 안전성에 근거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아요. 그렇다며 그렇게 잦은 처방변경이 일어날 이유가 없는 거죠. 심평원의 고가약 처방에 대한 심사가 강화되는 상황에서 지명도가 떨어지는 중소형 제약사들의 과도한 커미션 경쟁이 맞물려지다보니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워낙 건보재정 안정이 강조되다보니 의원들도 예전에 비해 대체조제에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기는 하지만, 전화를 하면 "처방전은 그대로 유지하고 원하는 약으로 대체조제 하라"는 식의 불가능한 요구를 해오는 의원까지 있다는데... 이는 결국 의원과 제약사간 유착을 반증하는 사례로밖에 볼 수 없다.
온라인교품이나 약사회원들 간 교품도 별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다양한 컨셉의 온라인교품사이트들이 생겨났지만 신속한 조제를 원하는 환자들을 하염없이 기다리게 할수도 없고 교품시장만으로는 잦은 처방변경으로 계속 발생하는 새로운 약과 겨우 몇정 쓰고 남겨둔 악성 재고를 감당할 수 없다는 것.
제약과 도매의 반품 의지부족도 지적됐다. 일부 도매담당자들이 거래 약국들을 다니며 교품을 유도하려는 시도를 하지만 거의 미미한 상황이고, 제약사의 경우도 재고반품 시스템을 갖춘 한미를 비롯한 일부 대형업체를 제외한 대부분의 중소업체들에서는 여전히 요원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