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배송 반대 전선 시민사회로 확산…2000명 거리로
약사·의사·소비자·건보노조 등 청와대 앞 집결…"플랫폼 중심 의료체계 우려"
약 배송 철회·공공의료 확충 촉구…20일 광화문 전국 약사 총궐기
전하연 기자 hayeon@yakup.com 뉴스 뷰 페이지 검색 버튼
입력 2026-09-14 05:00   수정 2026.09.14 05:19
약사와 보건의료·노동·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이 13일 서울 청와대 앞에서 열린 비대면진료·약 배송 확대 반대 연대집회에 참석해 구호를 외치고 있다. ©대한약사회 전문기자단

정부의 비대면진료 의약품 배송 확대 방침을 둘러싼 반발이 약사사회를 넘어 보건의료·노동·시민사회로 확산하고 있다.

약사와 보건의료·노동·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은 13일 서울 청와대 앞에서 ‘비대면진료 확대 및 약배송 추진 규탄, 의료민영화 저지와 국민 건강권 수호를 위한 연대집회’를 열고 약 배송 전면 확대 철회와 공공의료 인프라 확충을 촉구했다.

주최 측에 따르면 이날 집회에는 약사와 보건의료·노동·시민사회단체 관계자 등 2000여명이 참석했다. 당초 신고 인원은 500명이었으나 예상보다 많은 참가자가 집회장을 찾았다는 게 주최 측 설명이다.

이번 집회는 의료민영화저지와무상의료실현을위한운동본부가 주최하고 약사의 미래를 준비하는 모임(약준모), 실천하는 약사회,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 건강소비자연대, 아로파약사협동조합 등이 주관했다.

참가자들은 이번 집회가 특정 직역의 이해관계를 보호하기 위한 자리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비대면진료와 약 배송 확대가 환자 안전과 건강보험 재정, 지역 의료체계에 미칠 영향을 살펴야 하며 영리 플랫폼 중심으로 의료체계가 재편될 가능성도 경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박현진 약사의 미래를 준비하는 모임 회장 겸 무상의료운동본부 정책위원이 13일 서울 청와대 앞에서 열린 연대집회에서 비대면진료·약 배송 확대에 대한 반대 입장을 밝히고 있다. ©대한약사회 전문기자단

"기술 자체 아닌 플랫폼 중심 의료체계가 문제"

박현진 약준모 회장 겸 무상의료운동본부 정책위원은 집회 취지문을 통해 비대면진료 기술 자체보다 이를 매개로 영리 플랫폼의 영향력이 의료 전반으로 확대되는 구조가 문제라고 주장했다.

박 회장은 “우리가 문제 삼는 것은 단순히 전화나 화면을 통해 진료하는 기술 자체가 아니다”며 “비대면진료가 대면진료를 보완하는 제한적 수단을 넘어 하나의 거대한 시장으로 확대되고, 그 과정에서 영리 플랫폼이 환자와 의료기관, 약국을 연결하는 통로를 독점하면서 의료체계 전체에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는 구조를 우려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거동이 어려운 환자나 의료 접근성이 현저히 낮은 지역 주민 등에게 비대면 방식이 제한적·보완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에는 동의하면서도, 의료취약 문제의 근본적인 해법은 지역 의료기관과 약국, 공공의료 및 의료인력에 대한 투자라고 강조했다.

약사사회 내부에서도 비대면진료와 약 배송을 넘어 정부의 디지털 헬스케어 정책 전반에 대한 문제 제기가 나왔다.

전경림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 대표는 지역·필수·공공의료의 결핍을 데이터와 인공지능(AI) 중심의 산업 육성으로 해결하려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전 대표는 “AI 기반 의료와 디지털 헬스케어는 의료인력과 공공의료 인프라를 대신할 수 없으며 지역·필수·공공의료의 대안이 될 수 없다”며 “우리가 먼저 물어야 할 것은 ‘AI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지금 국민에게 어떤 의료가 필요한가’”라고 말했다.

특히 의료데이터가 민간 플랫폼에 집중되면서 환자의 선택과 의료기관·약국의 노출 등에 플랫폼의 영향력이 커질 가능성을 지적했다. 그는 “건강은 클릭 몇 번으로 구매하는 상품이 아니며, 의약품은 문 앞에 도착하면 끝나는 배송상품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소비자·의료계도 가세…"편리함보다 안전 먼저"

소비자단체에서도 약 배송 확대에 앞서 환자 안전과 건강보험 재정에 미치는 영향을 충분히 검증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조동환 건강소비자연대 부대표는 “국민이 원하는 것은 약을 더 손쉽게 소비하는 사회가 아니라 불필요한 약을 먹지 않을 권리, 전문가의 책임 있는 설명을 듣고 안전하게 약을 사용할 권리”라고 밝혔다.

조 부대표는 약국 방문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도서·벽지 주민이나 거동 곤란자 등에게는 별도의 지원이 필요하지만, 이를 전 국민 대상 약 배송 확대의 근거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건강정보의 플랫폼 집중과 건강보험 재정에 미칠 영향도 문제로 제시했다. 그는 “개인의 질병명, 진료 내역, 처방과 복약 정보는 가장 민감한 개인정보”라며 “의료와 약료의 기준은 광고비도, 수수료도, 클릭 수도 아닌 오직 환자의 필요와 안전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의료계에서는 비대면진료보다 도서·벽지의 의료인력과 응급의료 인프라를 확충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전진한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정책국장은 연평도에서 공중보건의로 근무했던 경험을 언급하며, 도서지역에서 시급한 문제는 경증환자의 의약품 접근보다 중증·응급환자를 적시에 치료할 수 있는 체계라고 강조했다.

전 정책국장은 “한국은 250개 시군구 중 34곳에는 응급실이 없고 77곳에는 분만실이 없다”며 “공공 상담서비스, 의사와 약사의 방문진료와 지역사회의 찾아가는 돌봄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약 배송 논의를 ‘환자 대 약사’의 대립 구도로 바라봐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며, 비대면 방식보다는 지역 공공의료와 방문 의료·돌봄체계 확충이 의료취약지역 문제의 대안이 돼야 한다고 밝혔다.


건보노조 "건보재정 낭비 우려…공공플랫폼 포함 재검토해야"

건강보험 재정을 둘러싼 우려도 제기됐다.

강성권 국민건강보험노동조합 부위원장은 비대면진료와 약 배송이 영리 플랫폼의 수익 추구와 결합될 경우 과다진료와 의약품 오남용, 건강보험 재정 지출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강 부위원장은 “정부가 추진하는 비대면진료 약 배송 전면화는 영리 플랫폼 기업이 진료부터 약 배송까지 의료과정 전반에 영향력을 확대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며 “현재 비대면진료 정책을 공공플랫폼 전환을 포함해 전면 재검토하고 지방 의료취약자와 고령층을 위한 공공의료 확대 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날 참가 단체들은 ‘비대면진료 약 배송 전면 확대 철회 및 공공의료 확충 촉구 결의문’도 채택했다.

결의문을 낭독한 김태수 약준모 정책위원장은 의약품은 일반적인 편의 물품이나 소비재가 아니라며 약 배송 확대가 복약지도와 안전성 확인, 약물 오남용 등에 미칠 영향을 충분히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참가 단체들은 결의문을 통해 △약 배송 전면 확대 계획 철회 △비대면진료 관련 제도 재검토 △지역 공공의료 인프라 및 보건의료 인력 확충 △국민 안전을 우선한 의약품 정책 마련 등을 정부에 요구했다.

이들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영리 기업의 돈벌이 수단으로 바꿀 수 없다”며 “공공의료 체계를 끝까지 수호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13일 서울 청와대 앞에서 열린 ‘비대면진료 확대 및 약배송 추진 규탄, 의료민영화 저지와 국민 건강권 수호를 위한 연대집회’ 현장. ©대한약사회 전문기자단

13일 시민사회 연대집회→20일 전국 약사 총궐기

이번 집회를 계기로 약 배송 확대에 대한 반대 움직임은 약사단체를 넘어 의료계와 소비자·노동·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하는 연대 투쟁으로 외연을 넓히는 모습이다.

약사사회의 대정부 투쟁은 오는 20일 전국 단위 집회로 이어진다. 대한약사회 국민건강권 사수 비상대책위원회는 20일 오후 3시 서울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 도로에서 전국 약사와 약학대학생이 참여하는 ‘전국 약사 총궐기대회’를 개최한다.

대한약사회는 총궐기대회의 메시지를 단순한 ‘약 배송 반대’에 한정하지 않고 국민건강권 수호와 건강보험 재정 보호, 사설 플랫폼 중심의 보건의료 상업화 방지, 약국의 공공성 수호라는 관점에서 국민에게 알린다는 방침이다.

총궐기 이후에도 관계 부처와 국회를 상대로 안전성 검증 없는 약 배송 확대 추진을 중단할 것을 요구하는 등 대정부·대국회 대응을 이어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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