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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AI)이 신약개발의 새로운 경쟁력으로 부상하면서 임상시험 현장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과거에는 임상시험 설계와 환자 모집, 데이터 검증, 안전성 분석 등이 각각 별도의 시스템과 인력에 의해 운영됐다면, 이제는 AI가 이들 과정을 하나의 플랫폼 안에서 연결하며 임상시험 전주기를 변화시키고 있다.
메디데이터는 17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개최한 ‘NEXT Innovation Day Seoul’을 통해 AI 기반 임상시험 플랫폼 전략을 공개하고, 환자·스터디·데이터 경험을 통합하는 새로운 임상시험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회사는 이번 행사를 통해 ‘AI는 더 이상 특정 업무를 자동화하는 보조 도구가 아니라 임상시험의 속도와 품질,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핵심 인프라가 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메디데이터 제프 벤티밀리아 수석부사장은 기조강연에서 “AI는 더 이상 실험 단계 기술이 아니다”라며 “산재된 데이터를 실행 가능한 인사이트로 전환함으로써 임상시험 전주기에서 실질적 성과를 창출하는 핵심 기반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글로벌 임상시험 환경은 점점 복잡해지고 있다. 정밀의학과 희귀질환 치료제 개발이 증가하면서 임상시험 설계는 더욱 복잡해졌고 환자 모집은 어려워졌다. 메디데이터에 따르면 현재 임상시험의 약 90%가 실패를 경험하며, 전체 임상시험의 80%는 환자 등록과 관련된 문제를 겪고 있다. 시험기관의 약 11%는 임상시험 개시 이후에도 단 한 명의 환자도 등록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메디데이터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핵심 수단으로 AI를 제시했다.
AI는 과거 임상시험 데이터를 기반으로 환자 등록 가능성을 예측하고 적절한 시험기관을 추천하며 임상시험 운영에 필요한 예산을 시뮬레이션할 수 있다. 특정 지역에 환자가 집중돼 있는 경우 해당 지역의 최적 시험기관을 탐색하고 국가별 시나리오를 비교해 보다 효율적인 임상시험 전략 수립도 가능하다.
특히 글로벌 시장 진출을 추진하는 국내 바이오벤처에는 이러한 기능이 더욱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간담회에서 메디데이터 측은 초기 바이오텍들이 임상시험 설계 경험 부족과 환자 모집의 어려움을 동시에 겪고 있다고 진단했다. AI는 기존 임상시험 데이터뿐 아니라 다양한 외부 데이터와 대규모 언어모델(LLM)을 결합해 환자 분포와 시장 환경을 분석하고 보다 현실적인 임상 전략 수립을 지원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가장 주목받은 기술은 메디데이터가 올해 공개한 AI 오케스트레이터 ‘닷(Dot)’이었다.
메디데이터는 현재 전 세계적으로 7600개 이상의 임상시험을 플랫폼에서 운영하고 있으며 지난 25여 년간 3만8000건 이상의 임상시험과 1200만 명 이상의 환자 데이터를 축적해 왔다. 연간 처리되는 데이터 포인트만 700억 개에 달한다.
닷은 이러한 방대한 임상 데이터를 기반으로 작동하는 AI 계층이다. 사용자는 자연어 대화 방식으로 임상시험 설계와 데이터 분석, 리스크 평가, 운영 업무를 수행할 수 있으며, AI는 필요한 인사이트를 실시간으로 제공한다.
메디데이터는 AI 경쟁력의 핵심을 데이터 품질에서 찾았다.
벤티밀리아 수석부사장은 “AI 성능은 결국 데이터 품질에 의해 결정된다”며 “수십 년간 축적된 검증된 임상시험 데이터와 운영 경험이 메디데이터의 가장 큰 경쟁력”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메디데이터는 AI 활용 과정에서 데이터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해 다단계 검증 체계를 운영하고 있다.
임상시험 데이터는 입력 이후 품질 검토와 검증 과정을 거친 후 AI 분석에 활용된다. 이를 통해 데이터 오류나 이상 징후를 사전에 탐지하고 규제기관 제출 전 데이터 무결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메디데이터가 공개한 ‘Clinical Data Studio(CDS)’ 역시 이러한 전략의 연장선에 있다.
CDS는 다양한 출처의 데이터를 하나의 환경으로 통합하고 AI를 활용해 이상 신호를 탐지하는 플랫폼이다. 과거에는 여러 보고서를 사람이 직접 검토하며 이상 징후를 찾아야 했지만, 이제는 AI가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해 효능 신호와 안전성 리스크를 실시간으로 식별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임상시험 중단 여부 판단이나 안전성 대응 속도를 높일 수 있으며, 현재 수천 건의 임상시험에서 활용되고 있다는 것이 회사 측 설명이다.
AI가 가져오는 변화는 환자 경험 영역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메디데이터는 환자를 단순한 피험자가 아니라 신약개발의 공동 개발자로 정의한다. 실제 환자 자문위원회와 시험기관 자문위원회를 운영하며 소프트웨어 개발 과정에 환자 의견을 반영하고 있다.
환자 포털 ‘마이메디데이터(myMedidata)’를 통해서는 원격 등록과 데이터 제출이 가능하며, AI 기반 맞춤형 알림 기능을 활용해 환자의 순응도를 높이고 있다.
또한 스마트워치와 웨어러블 기기를 활용한 연속 모니터링 기능도 확대되고 있다. 수면, 심박수, 활동량 등 다양한 디지털 바이오마커를 임상시험에 활용함으로써 보다 현실적인 환자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메디데이터는 이러한 기술들을 하나로 통합하기 위해 올해 3월 ‘메디데이터 플러스(Medidata Plus)’를 출시했다.
메디데이터 플러스는 데이터와 워크플로우, AI를 하나의 환경으로 연결하는 통합 플랫폼이다. AI 기반 스터디 구축 기능부터 데이터 통합, 규제 대응, 리스크 관리까지 임상시험 전 과정을 단일 환경에서 운영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회사가 제시한 가장 인상적인 수치는 임상시험 구축 기간 단축 효과다.
메디데이터에 따르면, AI를 활용한 임상시험 구축 과정은 기존 대비 최대 95%까지 시간을 줄일 수 있다. 또한 임상시험 진행 중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프로토콜 수정도 크게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궁극적으로는 임상시험 개시 시점을 앞당기고 데이터 정제와 데이터베이스 잠금(Database Lock) 기간을 단축함으로써 신약개발 전반의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한국 시장에서는 해결해야 할 과제도 존재한다.
메디데이터는 한국이 높은 디지털 역량과 우수한 임상시험 인프라를 갖추고 있지만 개인정보 보호와 데이터 활용 규제 측면에서는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시장이라고 평가했다.
이에 따라 미국이나 유럽처럼 전면적인 AI 활용보다는 환자 모집, 스터디 구축, 데이터 관리 등 특정 영역 중심으로 AI가 적용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상시험 환경의 복잡성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AI 활용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환자 모집부터 데이터 검증, 안전성 분석, 운영 효율화에 이르기까지 AI가 임상시험 전주기를 연결하기 시작하면서 신약개발 현장 역시 새로운 전환점을 맞고 있다. 메디데이터가 제시한 비전은 단순한 기술 도입을 넘어 AI가 신약개발 생산성 자체를 재정의하는 시대가 시작되고 있음을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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