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포장재 규제 시행이 다가오면서 유럽 수출 화장품 기업의 대응 범위가 제품 성분과 표시를 넘어 용기·단상자·운송 포장 관리까지 넓어지고 있다. 기업들은 포장재별 재질·중량·시험성적서 등 증빙 자료를 갖추고 기술문서(TD)와 적합성 선언서(DoC) 작성 체계를 준비해야 한다.
정부는 29일 대전 동구 국가철도공단 대강당에서 '포장재 분야 국외 규제대응 정부 합동 설명회'를 열고 유럽연합(EU)의 포장 및 포장폐기물 규정 대응 방안을 안내했다. 이번 설명회는 기후에너지환경부와 농림축산식품부, 식품의약품안전처, 중소벤처기업부를 비롯해 외교부, 산업통상자원부, 해양수산부 등 관계부처가 함께 준비한 자리로, 한국환경공단과 한국포장재재활용사업공제조합이 주관했다.
EU는 1994년부터 포장재 및 포장폐기물 지침(PPWD)을 운영해 왔다. 회원국별 규제 차이와 포장 폐기물 증가가 계속되면서 법적 구속력이 더 강한 포장 및 포장폐기물 규정(PPWR) 체계로 전환했고, 새 규정은 오는 8월 12일부터 단계적으로 시행된다.
화장품 기업도 규제 대상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화장품 용기, 캡, 펌프, 라벨, 단상자, 세트 포장, 운송 포장 등이 모두 규제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EU가 제품 포장재 전체를 관리 대상으로 삼으면서 브랜드사, ODM사, 용기·포장재 업체, 수출 유통사는 각자 역할에 따라 포장재 정보를 확인하고 증빙 자료를 주고받아야 하는 상황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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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관문은 포장재 유해물질 증빙
당장 오는 8월 12일부터 유럽 시장에 화장품을 수출하거나 유통하는 기업은 포장재 내 유해물질 정보를 입증하는 기술문서(TD)와 적합성 선언서(DoC)를 구비해야 한다. 이는 단순 권고가 아니라 EU 전역에 직접적인 법적 구속력을 갖는 규정에 따른 강제 조항이다.
가장 먼저 적용되는 핵심 규제는 유해물질 제한과 재사용 가능 포장재 관련 요건이다. 유해물질 제한 조항에 따라 4대 중금속(납·카드뮴·수은·6가크롬)의 합계 농도를 100㎎/㎏ 이하로 관리하고 과불화화합물(PFAS) 제한 기준 준수 여부까지 기술문서로 입증해야 한다.
한국환경공단 재생원료관리부 김다혜 과장은 "EU 수출기업은 현재 판매 중인 포장재를 재질별 또는 공급사별로 구분해야 한다"며 "포장재를 카테고리화한 뒤 인증 시험기관에 의뢰해 시험성적서를 발급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기술문서는 포장재의 용도, 재료, 도면, 시험자료 등을 정리한 증빙자료다. 적합성 선언서는 해당 자료를 근거로 제조자가 포장재의 규정 준수 여부를 선언하는 문서다. 화장품 기업은 용기, 캡, 펌프, 라벨, 단상자, 완충재 등 포장 부품별 재질과 공급처를 확인하고 이를 제품별 자료로 정리해야 한다.
재사용 가능 포장재도 8월부터 확인 대상에 포함된다. 김 과장은 재사용 포장재로 인정받기 위해선 단순히 ‘튼튼하다’는 설명만으론 부족하고, 여러 차례 다시 사용할 수 있는 구조인지, 내용물을 비우고 다시 채울 때 문제가 없는지, EU 내 재사용 시스템과 맞는지 등을 기술문서로 입증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브랜드사가 규제 대응 주체
화장품 업계가 주목해야 할 대목은 책임을 지는 '제조자'의 범위다. PPWR에서 제조자는 제조사와 동어가 아니다. 포장재 결정 주체다.
김 과장은 "최종 제품을 출시하는 브랜드의 소유권자가 포장재의 디자인이나 제작 조건을 결정한다면 그 사람이 제조자"라며 "대리인이 행정 절차를 도울 수는 있지만 포장재가 규정을 준수하고 있는지에 대한 최종적인 법적 책임은 제조자에게 있다"고 강조했다.
화장품 업계에선 브랜드사가 용기, 캡, 펌프, 라벨, 단상자 등의 사양을 정한 뒤 ODM·OEM사와 생산을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실제 생산을 맡은 제조사가 따로 있더라도, 포장재 사양을 정한 브랜드사가 기술문서와 적합성 선언서 준비의 핵심 주체가 된다.
이 과정에서 포장재 공급업체는 브랜드사가 서류를 준비할 수 있도록 재질, 구성, 시험자료 등 기초 데이터를 제공해야 한다. 브랜드사는 증빙 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포장재 공급업체와 긴밀한 데이터 협력 체계를 갖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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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인 성적서 위주 자료 수집해야
기술문서 작성을 위해선 부품별 재질과 중량, 도면 등을 망라한 포장재 인벤토리 구축이 선행돼야 한다. 화장품은 용기 하나에 펌프, 스포이드, 금속 스프링, 접착 라벨 등 여러 부자재가 복합적으로 결합되는 구조라 기초 데이터가 하나만 누락돼도 전체적인 증빙 체계가 중단될 위험이 크다.
한국화학융합시험연구원(KTR) 황범구 PPWR TF장은 "현장에서 포장 데이터를 확보하는 과정이 매우 까다롭지만, 이 기초 자료가 없으면 기술문서 작성이 불가능하다"며 "단순한 공급업체 확인서(CoC)를 넘어 ISO/IEC 17025 인정을 받은 공인 시험기관의 성적서를 확보해 데이터의 신뢰성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지난주 유럽과의 회의에서 ‘인증 시험기관에서 나온 성적서가 필요하다’는 내용이 언급됐다"며 "공급업체 확인자료보다 성적서를 우선 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확보한 자료는 제품별로 계속 관리해야 한다. 공급업체가 바뀌거나 포장재의 재질, 두께, 중량이 달라지면 기존 자료로는 규정 준수를 입증하기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신제품 출시와 패키지 리뉴얼이 잦은 화장품 기업일수록 제품별 포장재 목록과 변경 이력을 함께 관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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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기준 준수가 곧 유럽 대응
식품의약품안전처 역시 화장품 분야의 산업적 특수성과 국내 안전 규제 간의 연계성을 설명하며 업계의 주의를 당부했다. 식약처 첨가물기준과 김형일 연구관은 "현재 EU에서 신설되거나 개정된 화장품 포장재에만 적용되는 전용 규정은 없지만, PPWR 자체가 모든 포장재를 대상으로 하기에 화장품 포장도 당연히 포함된다"고 말했다.
김 연구관은 "화장품 안전기준 등에 관한 규정 제6조 제2항에 따라 포장재로부터 내용물로 이행될 수 있는 비의도적 유래 유해물질의 검출 허용 한도를 이미 관리하고 있다"며 "납, 비소, 수은, 프탈레이트류 등 10가지 물질에 대한 기준을 준수하는 것이 유럽 규제 대응의 시작점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식약처 화장품정책과는 다가오는 PPWR 시행에 대비해 대한화장품협회를 통해 업계에 사전 준비 필요성을 안내해 왔다. 유럽의 포장재 유해물질 요구 사항뿐만 아니라 국내의 내용물 안전 관리 기준을 동시에 만족시켜야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규제 대응에 어려움을 겪는 중소 뷰티 기업들을 위한 정부의 지원 사업도 진행 중이다. 중소벤처기업부는 기술문서 작성 지원, 유해물질 시험 분석, 유럽 현지 대리인 선임 비용 등을 보조하는 시범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정부가 총비용의 70%를 지원하며 기업당 최대 700만원까지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이 지원 사업은 선지출 후환급 형태로 운영되며 접수 마감은 5월 8일 18시까지다.
이날 설명회의 축사를 맡은 기후에너지환경부 자원재활용과 맹학균 과장은 "포장을 안 쓰고 수출하는 기업은 없기 때문에 모든 산업계가 영향을 받게 되는 포장재 규제"라며 "국내 기업들이 포장재 때문에 수출에 차질을 빚는 문제는 없도록 정부도 최선을 다해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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