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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정부의 보건의료 분야의 핵심 국정과제 중 하나인 '의료 시스템 AI 전환(AX, AI Transformation)'이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의 강력한 드라이브 아래 속도를 내고 있다. 정부는 혁신의료기기 통합심사·평가 제도 등을 통해 디지털 치료제(DTx)와 AI 기반 진단 보조 솔루션의 시장 진입 기간을 대폭 단축하며 산업 육성에 사활을 걸고 있다.
그러나 화려한 정책적 수사와 범정부적 지원에도 불구하고, 실제 의료 현장에서 체감하는 AI 솔루션의 '침투율'은 여전히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업계와 병원 현장에서는 그 근본적인 원인으로 '건강보험 수가 적용의 구조적 한계'를 지목한다. 아무리 뛰어난 혁신 기술이라도 현행 건강보험 체계 내에서 적절한 금전적 보상(수가)을 받지 못하면, 일선 병원과 의사들이 굳이 비용을 들여 AI를 도입할 유인이 없기 때문이다.
최근 전통 제약사들의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 진출은 선택이 아닌 생존을 위한 '필수'가 되었다. 지난 3월 26일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를 통과한 약가제도 종합개편안 등으로 제네릭 중심의 수익 모델이 한계에 직면하면서, 주요 제약사들은 인공지능(AI) 신약 개발부터 디지털 치료제(DTx)까지 미래 먹거리 발굴에 사활을 걸고 있다. 유망 바이오·디지털 벤처와의 오픈 이노베이션이나 지분 투자를 통해 자체 파이프라인의 한계를 극복하고 헬스케어의 외연을 '알약'에서 '소프트웨어'로 확장하려는 움직임이다.
하지만 이들 제약사 역시 '디지털 헬스케어 수가 적용'이라는 낯선 장벽 앞에서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수십 년간 화학 합성의약품이나 바이오시밀러를 개발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약가 산정 트랙을 밟는 데는 도가 튼 제약사들이지만, 무형의 알고리즘과 앱 서비스의 경제적 가치를 증명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기존의 '대체 약제 가중평균가'나 '제조 원가 산정' 같은 전통적인 약가 등재 공식을 디지털 치료제나 AI 솔루션에 그대로 들이대기엔 구조적인 모순이 발생한다. 현행 대한민국의 건강보험 지불 제도는 철저히 의사의 '의료 행위' 혹은 실체가 있는 '약물'을 기반으로 설계되어 있다. 별도의 수가가 신설되지 않고 기존 행위료에 묶이게 되면, 병원이나 환자 입장에서는 AI 소프트웨어 도입 비용을 온전히 자체 부담해야 하므로 상업화의 길이 막히게 된다.
특히 제약사들이 눈독을 들이는 디지털 치료제 분야에서 현행 수가 제도의 맹점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알약은 복용하는 순간 체내에서 화학적 기전이 발생하지만, DTx는 환자의 지속적인 앱 참여와 행동 교정, 데이터 모니터링이 필수적이다.
따라서 초기 앱 개발비 외에도 처방 이후의 환자 관리, 데이터 보안 유지, 알고리즘 지속 업데이트 등 막대한 유지보수 비용이 수반된다.
업계 관계자는 "전통 제약사들이 DTx나 의료 AI에 뛰어들 때는 대규모 임상 비용과 시간을 투입해 객관적인 유효성을 입증한다"며 "하지만 막상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나 보건의료연구원(NECA)의 평가 문턱에 서면 '기존 진료를 보조하는 단순 소프트웨어' 취급을 받으며 원가 보전조차 힘든 턱없이 낮은 수가를 제시받기 일쑤"라고 토로했다.
이어 "알약 형태의 혁신 신약에는 수백, 수천만 원의 약가를 인정해 주면서, 수년의 연구 끝에 환자 예후를 획기적으로 개선한 디지털 치료제에는 기존 의료기기의 낡은 잣대만 들이대고 있다"며 "소프트웨어의 혁신 가치를 제대로 된 '수가'로 인정해 주지 않는다면, 리스크를 감수하고 국내 디지털 헬스케어 생태계에 선제적으로 투자할 제약사는 점차 사라질 것"이라고 꼬집었다.
병원 현장의 목소리도 궤를 같이한다. 한 병원 관계자는 "아무리 환자에게 좋고 혁신적인 기술이라 하더라도, 도입했을 때 병원 수익에 마이너스가 되거나 행위료 보전이 안 된다면 섣불리 예산을 투입하기 어렵다"며 "결국 수가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정부가 밀어붙이는 의료 AX는 반쪽짜리에 그칠 것"이라고 꼬집었다.
다행스러운 점은 정부 역시 이러한 산업계의 고충을 인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이형훈 보건복지부 차관을 필두로 한 실무 라인에서는 제약업계와 의료 AI 산업의 특수성을 반영한 '가치 기반 보상 체계' 마련을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혁신의료기술평가' 제도를 통해 최대 3년간 한시적으로 비급여 또는 선별급여 형태로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우회로를 열어준 것도 이러한 노력의 일환이다.
하지만 업계 전문가들은 한시적 코드를 부여하는 수준을 넘어, 보다 근본적이고 영구적인 '디지털 헬스케어 전용 수가 매트릭스'가 신설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구체적인 수가 적용 측면의 보완점으로는 크게 네 가지가 거론된다.
첫째, '결과 지향형 추가 보상' 제도의 적극적인 도입이다. AI 솔루션이나 디지털 치료제가 별도의 독립된 행위로 인정받기 어렵다면, 치료 순응도를 높이거나 예후를 개선한 객관적 지표를 바탕으로 기존 진료비나 약제비에 '디지털 가산 수가'를 정식으로 부여해야 한다.
둘째, 혁신의료기술의 정식 등재 전환을 위한 '유연한 근거 창출' 지원이다. 3년의 한시적 기간 동안 기업이 직접 리얼월드데이터(RWD)를 수집해 신의료기술평가의 문턱을 다시 넘어야 하는 부담을 줄여주어야 한다. 정부와 건보공단이 가진 보건의료 빅데이터를 제약사의 실증 임상 데이터와 연계할 수 있도록 제도를 보완할 필요가 있다.
셋째, 디지털 치료제(DTx)에 특화된 '위험 분담제' 모델 도입이다. 고가의 항암제에 주로 쓰이는 위험 분담제를 소프트웨어 의료기기에도 차용해, 일단 환자에게 처방하여 성과(치료 순응도, 증상 개선도)가 입증된 경우에만 건강보험 재정을 청구하는 식의 새로운 지불 모델을 검토해야 한다.
넷째, AI 특성을 반영한 지속적인 원가 보전(유지보수비 인정) 체계 마련이다. 기기 자체에 대한 비용 보상과 더불어 연간 구독료 형태의 수가 청구 방식 등 지불 제도의 다변화가 절실하다.
의료의 패러다임이 '인력·알약 중심'에서 '데이터와 AI 중심'으로 급변하고 있다. 정은경 장관이 이끄는 보건복지부가 이재명 정부의 남은 임기 동안 K-디지털 헬스케어의 글로벌 경쟁력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다가오는 건정심 등에서 얼마나 전향적인 '수가 개편안'을 도출해 내느냐에 달려 있다. 혁신을 이끄는 것은 기술이지만, 그 기술을 현장에 안착시키는 것은 결국 '정교한 보상 체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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