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으론 포성, 안으론 정책 칼바람"… 최악의 타이밍 약가개편, 제약업계 아우성
미국-이란 무력 충돌 여파, 환율 급등·물류 마비로 원부자재 수입가 '천정부지'
꽁꽁 언 투심에 바이오 벤처 '돈 가뭄'… 임상 중단·파이프라인 포기 속출
엎친 데 덮친 고강도 약가개편안… "캐시카우 잃은 중견 제약사, R&D 동력 상실"
업계 "구조조정 넘어선 산업 궤멸 위기… 정책 유예 및 속도 조절 절실"
김홍식 기자 kimhs423@yakup.com 뉴스 뷰 페이지 검색 버튼
입력 2026-03-10 06:00   수정 2026.03.10 06:01
그래픽. ©약업신문=김홍식 기자

미국과 이란 간의 지정학적 긴장이 사실상 전면적인 무력 충돌 양상으로 번지며 글로벌 경제가 요동치는 가운데, 우리 정부의 고강도 약가개편안 강행이 맞물리면서 제약·바이오 산업이 태동 이래 최대의 벼랑 끝에 섰다.

9일 제약·바이오 업계와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현재 국내 제약사들과 바이오 벤처들은 통제 불가능한 대외 변수와 가혹한 대내 정책이라는 '이중고'에 갇혀 사실상 신약 연구개발(R&D)을 비롯한 미래 투자 시계를 전면 재검토하고 있다. '체질 개선'이라는 명분으로 추진되는 정부의 약가개편이, 하필이면 거시경제 지표가 최악으로 치닫는 '현재 시점'과 맞물리면서 산업 생태계 전체를 붕괴시킬 수 있다는 뼈아픈 경고가 쏟아지고 있다.

환율·유가 폭등에 원료 수입 ‘비상’… 제조 원가 압박 한계치 도달

가장 먼저 타격을 입은 곳은 의약품 생산의 최전선이다. 미국과 이란의 충돌은 즉각적인 국제 유가 폭등과 호르무즈 해협 등 주요 해상 물류망의 마비를 불러왔다. 이는 원료의약품(API)의 70% 이상을 중국, 인도, 유럽 등지에서 수입하는 국내 제약 산업 구조에 치명상으로 작용하고 있다.

글로벌 안전자산 선호 심리에 따른 ‘강달러’ 현상은 수입 단가를 기하급수적으로 끌어올렸다. 여기에 항공 및 해운 운임 등 물류비용마저 전쟁 이전 대비 수 배 이상 폭등하면서, 국내 제약사들은 약을 만들어 팔아도 남는 게 없는 ‘수익성 악화’의 늪에 빠졌다.

업계 관계자는 “원부자재 가격과 물류비가 하루가 다르게 뛰고 있지만, 의약품은 정부의 가격 통제를 받기 때문에 제조 원가 상승분을 판매가에 전가할 수 없는 구조"라며 "공장을 돌릴수록 적자가 누적되는 품목이 속출하고 있어 생산 중단을 심각하게 고려 중"이라고 토로했다.

바이오 벤처는 '돈 가뭄'에 아사 직전… 글로벌 임상 줄도산 위기

대외 악재는 제약·바이오 산업의 미래인 '바이오 벤처'들의 자금줄도 완전히 말려버렸다. 전쟁 리스크로 인해 벤처캐피탈(VC) 등 자본시장의 투심이 급격히 얼어붙으면서, 후속 투자 유치에 실패한 벤처들이 속출하고 있다.

신약 개발은 특성상 임상 1상, 2상, 3상으로 넘어갈수록 천문학적인 자금이 소요된다. 하지만 자금 조달 창구가 막히면서 당장 직원들의 급여조차 주지 못해 핵심 인력이 유출되거나, 글로벌 임상을 눈앞에 두고 파이프라인(신약 후보물질)을 헐값에 매각하거나 임상 자체를 포기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한국 바이오 산업의 미래 동력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는 셈이다.

최악의 타이밍에 등판한 '약가개편'… 벤처와 전통 제약사 잇는 '연결고리' 절단

업계가 가장 분통을 터뜨리는 대목은 정부의 정책 타이밍이다. 대외 악재로 인해 산업의 기초체력이 바닥을 드러낸 현시점에서, 제네릭(복제약) 중심의 약가 인하와 기등재 약제 재평가를 골자로 하는 고강도 '약가개편안'이 업계의 숨통을 완벽히 조이고 있기 때문이다.

통상적으로 국내 제약 생태계는 중소·중견 제약사들이 제네릭 판매를 통해 안정적인 현금흐름(캐시카우)을 창출하고, 이 자금을 바탕으로 자체 신약을 개발하거나 자금난에 빠진 유망 바이오 벤처에 투자(지분 참여, 공동연구 등)하는 선순환 구조로 굴러간다.

하지만 이번 약가개편안으로 제네릭 약가가 대폭 칼질을 당하면, 제약사들의 영업이익은 반 토막이 날 수밖에 없다. 업계 관계자는 "평시라면 뼈를 깎는 비용 절감으로 버텨보겠지만, 원가가 천정부지로 솟구친 지금 상황에서 약가마저 깎이면 기업은 R&D 예산부터 0순위로 삭감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는 곧 유동성 위기에 빠진 바이오 벤처들에게 구원투수 역할을 해야 할 전통 제약사들의 지갑마저 닫히게 만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외 위기(자금조달 불가)와 대내 위기(약가 인하로 인한 제약사 투자 여력 상실)가 결합해, 생태계 전체가 동반 몰락하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정책 목표 공감하지만, 시기가 틀렸다"… 전향적 속도 조절 절실

물론 건강보험 재정 안정화와 혁신 신약 위주의 산업 재편이라는 정부의 정책 방향성 자체를 부정하는 목소리는 적다. 문제는 '속도'와 '타이밍'이다.

전문가들은 현재의 위기를 단순한 산업 내 '옥석 가리기'로 치부해선 안 된다고 경고한다. 옥석을 가리기도 전에 밭 자체가 타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대외적 불확실성이 해소될 때까지 한시적으로 약가개편안 적용을 유예하거나, R&D 투자 비율이 높은 기업에 대해서는 약가 인하를 면제해 주는 등의 유연한 정책 도입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의 제약·바이오 환경은 전시상황에 준하는 비상사태"라며 "정부가 기계적인 약가 인하 잣대만 들이댈 것이 아니라, 수십 년간 쌓아온 제약업계의 인프라가 한순간의 정책 미스로 붕괴되지 않도록 유예 기간을 부여하고 산업계와 함께 위기 극복 펀드를 조성하는 특단의 대책을 내놓아야 "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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