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바이오의 족쇄, 보툴리눔 톡신 규제 14년…후발주자 죽어간다"
‘국가핵심기술’ 지정으로 연간 최대 1000억원 기회비용 손실 추정
신규 기업의 해외 진출과 산업 생태계 성장 가로막는 규제라는 지적
특정 기업만 보호하는 불공정 구조…지정 해제와 제도 개선 필수
권혁진 기자 hjkwon@yakup.com 뉴스 뷰 페이지 검색 버튼
입력 2025-09-29 16:15   수정 2025.09.29 17:42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정세영 전북대병원 석좌교수, 이정훈 전 동아일보 논설위원, 이재국 한국제약바이오협회 부회장, 최광준 산업통상자원부 과장, 박태규 칸젠 대표, 유한범 한국투명성기구 공동대표.©약업신문=권혁진 기자

한국 제약바이오 미래 성장 동력으로 꼽히는 '보툴리눔 톡신' 산업이 낡은 규제에 발목 잡혀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14년째 이어진 '국가핵심기술' 지정으로 연간 최대 1000억원의 기회비용을 치르고 있으며, 일부 기업만 상대적 혜택을 보는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업계는 보툴리눔 톡신의 국가핵심기술 해제와 규제 개선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라고 입을 모은다.

보툴리눔 톡신은 주름 개선과 치료용으로 전 세계적으로 폭넓게 사용되며, 한국 제약바이오를 대표하는 수출 효자 품목으로 성장했다.

국내에서 18개 기업이 시장에 진출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특히 아시아·중남미 등 세계 시장을 중심으로 수요가 늘어나면서 한국산 톡신 제품의 해외 매출 비중이 빠르게 확대되는 추세다.

그러나 2010년 '보툴리눔 독소제제 생산기술', 2016년 '보툴리눔 균주'가 국가핵심기술로 지정되면서 산업 성장의 발목이 잡혔다. 한국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균주'까지 국가핵심기술로 관리하는 나라다. 

이로 인해 수출 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승인을 반드시 받아야 하고, 위반 시 형사처벌까지 가능해 기업 활동에 중대한 제약이 따른다. 업계는 이를 '과잉 규제'이자 '낡은 제도'라고 지적한다.

문제는 이중·삼중 규제가 오히려 시장을 선점한 일부 기업의 이익만 지켜주는 결과를 낳고 있다는 점이다. 보툴리눔 톡신은 이미 대외무역법, 생화학무기법, 감염병예방법, 약사법 등 5개 부처 7개 법령으로 규제를 받고 있다. 

여기에 국가핵심기술 지정까지 더해지면서 신규 기업은 글로벌 임상이나 제품 론칭 등의 골든타임을 놓치기 일쑤다. 수출 승인 절차가 평균 74일, 길게는 12개월 이상 지연되며 연간 900~1000억원의 기회비용 손실이 발생한다는 분석도 나왔다.

특히 큰 문제는 규제의 무게가 시장 진입을 시도하는 혁신 스타트업과 중견기업에게 더 크게 작용한다는 점이다. 선발 주자만 상대적으로 보호되는 불균형한 구조가 고착화되면서, 산업 생태계 전반의 역동성과 글로벌 확장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업계는 보툴리눔 균주의 국가핵심기술 해제와 규제 정비가 더는 미룰 수 없는 과제라며, 국회의 조속한 제도 개선을 촉구하고 있다.

이 문제를 심도 있게 논의하기 위해 국민의힘 강승규 의원과 더불어민주당 허종식 의원은 29일 한국시민교육연합회와 함께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K-바이오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한 국가핵심기술 보호제도 개선방안' 토론회를 개최했다.

정세영 전북대병원 석좌교수.

정세영 전북대병원 석좌교수 "보툴리눔 균주, 더 이상 국가핵심기술로서 의미 없어"

정 교수는 "보툴리눔 균주 자체는 기술이라고 보기 어렵고, 진짜 핵심은 대량 생산을 가능하게 하는 생산 기술과 정제·분리 기술"이라며 "이미 전 세계가 균주를 보유하고 있어 국가핵심기술로서의 의미가 약해졌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보툴리눔 톡신은 특허가 만료된 지 오래돼 이제는 각 기업이 자체적으로 축적한 생산·정제 노하우로 경쟁이 이뤄지고 있다"며 "균주 자체를 보호한다는 명분은 더 이상 설득력이 없다"고 덧붙였다.

또한 정 교수는 “과잉 규제로 인해 수출 승인 지연과 해외 공동개발 제한이 발생하면서 기업들이 글로벌 협력과 시장 진출에서 뒤처지고 있다"면서 "실제로 수출 승인 절차가 평균 4~6개월, 길게는 1년 이상 걸려 임상시험과 해외 론칭 타이밍을 놓치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2030년 25조원에 이를 세계 보툴리눔 톡신 시장에서 한국이 최소 15~20%를 점유하려면 핵심기술 지정에서 제외하고 규제를 정비해야 한다"며 "기업의 요구가 단순한 민원이 아니라 국가적 차원의 산업 전략 과제로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정훈 전 동아일보 논설위원.

이정훈 전 동아일보 논설위원 "규제 완화, 안보 리스크 검토 없는 경제 논리는 위험"

이 전 위원은 "규제 완화 논의는 경제 논리만으로 밀어붙일 문제가 아니며, 국정원·국방부 등 안보 조직과의 검토·협의가 전제돼야 하고, 대통령 주도의 국가안보 차원의 결단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기업·학계의 요구를 무조건 수용하기보다 안보·사회적 리스크를 함께 설계한 뒤 시장을 풀어야 한다는 의견이다.

이어 그는 "최근 펜토셀 같은 장비를 이용한 소액결제 테러 사례에서 보듯이, 단순한 통신장비가 곧바로 정보·금융 탈취 수단이 될 수 있다"며 "이런 환경에서 바이오·톡신 관련 규제 완화는 안보적 리스크를 반드시 검토한 뒤 추진돼야 한다"고 경고했다.

이재국 한국제약바이오협회 부회장

이재국 한국제약바이오협회 부회장 "규제 논의는 기업 이해가 아니라 국가 산업 전략 과제"

이 부회장은 "보툴리눔 톡신을 둘러싼 규제 논의가 개별 기업의 이해관계로만 비쳐선 안 된다"며 "우리 산업이 짊어진 사회적 책무와 국부 창출이라는 국가적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회원사 간에도 찬반이 엇갈리지만, 협회의 입장은 결국 한국 제약바이오 산업이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제도의 합리성이 보장돼야 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정 제도가 과거에는 필요했을 수 있지만, 지금은 산업 경쟁력을 억제하는 '킬러 규제'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 부회장은 "국가핵심기술 제도는 지정만 있고 해제는 기업이 증명해야 하는 불균형 구조"라며 "앞으로는 정부가 유지 필요성을 입증하고, 산업계와 전문가, 글로벌 동향을 종합해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체계가 마련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이 문제는 보툴리눔 톡신을 넘어 한국 제약바이오산업 전반의 규제 혁신 과제와 직결된다"며 "시대 변화에 맞게 지정과 해제 권한을 분리하고, 규제의 목적과 효용을 다시 설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유한범 한국투명성기구 공동대표.

유한범 한국투명성기구 공동대표 "과잉 규제는 투명성과 예측 가능성 측면에서도 문제"

유 공동대표는 "국제투명성기구의 부패영향평가 기준으로 보더라도 현재 제도는 행정 절차의 접근성과 예측 가능성, 준수 부담의 합리성 측면에서 문제가 크다"며 "규제의 목적과 효과를 명확히 따져보지 않은 채 유지되는 것은 산업 발전뿐 아니라 정책 신뢰성에도 부정적 영향을 준다"고 말했다.

유 대표는 "보툴리눔 균주와 제제는 지식재산권·부정경쟁방지법 등 기존 법률 체계로도 충분히 보호할 수 있다"며 "국가핵심기술이라는 공적 장치를 동원하는 것은 과잉 대응"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그는 "지정 과정에서 제약바이오 업계의 의견 수렴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고, 생명과학 분야에서 겨우 4개 기술만 국가핵심기술로 묶여 있는데 그중 하나가 보툴리눔 독소라는 점은 납득하기 어렵다"라며 "규제의 투명성과 예측 가능성 측면에서도 문제를 안고 있다"라고 전했다.

유 대표는 "업계 설문조사에서도 대다수 기업이 해제를 원했지만, 여전히 일부 기업은 보안 강화를 이유로 찬성 입장을 고수하는 등 이해관계 충돌이 드러났다"고 설명했다.

박태규 칸젠 대표.

박태규 칸젠 대표 "보툴리눔 균주 누구나 찾을 수 있어…과도한 규제는 혁신 저해"

박 대표는 “보툴리눔 균주는 자연에서 누구나 발견할 수 있는 만큼 국가핵심기술로 지정해 과도하게 규제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면서 "실제 국가핵심기술이라면 정부가 연구개발 과제나 GMP 시설 지원을 해야 했지만, 신약이 아니라는 이유로 어떤 혜택도 주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그는 "칸젠은 2015년 창업 이후 10년간 약 200억원을 투입해 국내 토양에서 7종의 보툴리눔 균주를 발굴해 질병청에 등록을 완료했다"며 "확보한 균주는 해외 기업과 비교해도 유전체 크기와 유전자 변이에서 차별성을 입증했지만, 균주 등록과 보안 관리 과정에서 연구보다 행정 절차에 더 많은 인력과 시간이 소요됐다"고 설명했다.

박 대표는 "과잉 규제는 기업의 혁신을 저해하고 글로벌 시장 경쟁에서도 뒤처지게 한다"며 "K-바이오와 K-뷰티 산업이 세계 무대에서 성장하기 위해서는 불필요한 규제를 과감히 혁파하고, 국가 차원의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광준 산업통상자원부 과장.

최광준 산업통상자원부 과장 "안보·경제 효과 종합 검토해 합리적 결론 내리겠다"

최 과장은 "보툴리눔 톡신 국가핵심기술 지정·해제 문제는 법령에 따른 절차에 따라 산업기술보호 전문위원회에서 안보·경제적 파급 효과, 기술 환경 변화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라며 "업계와 전문가 의견을 지속해서 수렴하면서 합리적 결론을 도출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이번 논의 과정을 돌아보며 "그동안 지정·해제 절차에서 충분한 의견 수렴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지적이 많았다"며 "앞으로는 업계, 학계, 전문가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목소리를 균형 있게 듣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특히 지정 해제에 찬성하는 측뿐 아니라 반대 입장의 논리도 면밀히 검토해 중립적인 전문가 의견에 기초한 정책 판단을 내리겠다"고 강조했다.

최 과장은 "규제는 공공성과 자원 배분의 효율성을 높일 때만 정당성을 가질 수 있다"면서 "정부는 일방적 입장이 아닌, 균형 잡힌 논의 구조 속에서 정책적·기술적 관점을 종합적으로 고려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이승연 건국대의대 교수는 토론회의 발표자로 나섰다. 이 교수는 “국내 기업들이 보툴리눔 톡신을 더욱 발전시킬 역량을 갖췄음에도 국가핵심기술 규제 탓에 불필요한 비용과 지연이 발생한다"면서 "이미 전 세계가 동일한 균주를 활용하고, 국내 시장도 국산 제품이 주도하는데, 수출 때마다 정부 승인을 받아야 하는 현실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날 토론회 좌장은 이상수 한국시민교육연합 상임대표가 맡았다. 이 대표는 “국내 톡신 기술은 이미 국제적 수준에 올라 독점 보호 필요성이 줄었다”라며 "그러나 국가핵심기술 지정으로 해외 진출과 기술 이전이 막히고, 수출 승인 절차 지연으로 연간 약 1000억원의 손실이 발생한다"고 강조했다.

올해 9월 기준 보툴리눔 독소제제 의약품 생산 판매 기업은 △대웅 △대웅바이오 △메디카코리아 △메디톡스 △뉴메코 △이니바이오 △에이티지씨 △제네톡스 △제테마 △종근당 △종근당바이오 △프로톡스 △파마리서치바이오 △휴메딕스 △휴젤 △휴온스바이오파마 △한국비엠아이 △한국비엠씨 등이다.

'K-바이오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한 국가핵심기술 보호제도 개선방안' 토론회 현장.©약업신문=권혁진 기자
'K-바이오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한 국가핵심기술 보호제도 개선방안' 토론회 참석 패널들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왼쪽에서 첫번째)이승연 건국대의대 교수, (왼쪽에서 네번째)이상수 한국시민교육연합 상임대표.©약업신문=권혁진 기자
'K-바이오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한 국가핵심기술 보호제도 개선방안' 토론회 현장.©약업신문=권혁진 기자
전체댓글 0개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