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온다습' 여름철 약 배송...변형에 세균 오염 가능성 높아

약준모, 온습도 변화 추적 연구 결과 발표 "냉매 넣어도 30도 넘어"

냉매제에서 나온 습기로 택배 포장이 손상되거나(위 사진) 상자 속 습기를 흡수해  제형이 망가지거나(아래 오른쪽) 변질된 가루약. ©약준모

지난 여름 의약품 배송 과정에서 온도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의약품이 변질되는 사고가 적지 않았다. 냉장 포장의 경우 온도가 상승하며 택배 내부의 습도가 급격히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약사 단체는 의약품은 온도와 습도에 민감한 영향을 받는다며 장마철과 혹서기의 약 배달 위험성을 지적했다.

약사의미래를준비하는모임(이하 약준모)이 26일 발표한 택배 배송시 포장 형태에 따른 온습도 변화를 추적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혹서기인 8월엔 냉매를 넣었음에도 30도 이상의 온도가 측정됐다. 또 냉매가 온도유지 효과를 다한 후 온도가 상승할 때 습도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약물에 치명적인 결과로 작용한다고 연구팀은 경고했다.

약준모 연구팀은 약배달 상황에서의 의약품 안정성을 살펴보기 위해 장마철과 혹서기인 올 6월 28일부터 8월 31일까지 수도권에서 강원, 경북, 제주 등지로 다수 택배회사를 통해 왕복 발송했다. 일반 포장과 냉매를 넣은 냉장포장 두가지 형태로 포장했고, 각각 TEMPU-03(TZONE) 온습도 기록계를 부착해 운송기간 온도 및 습도를 확인했다.

연구에 따르면, 약이 배달되기까지 영업일 기준 내륙은 2~4일 , 제주 지역은 3~5일 걸렸다. 제주 지역은 여름철 기후 특성상 선박 고장과 날씨 등 사유로 지연이 발생한 것으로 분석됐다.

연구팀은 아이스팩 등 냉매를 넣은 냉장 포장의 경우 냉장 효과가  6~18 시간 유지됐다고 전했다. 모든 사례에서 영업일 기준 3일차부턴 외부 온도 변화에 그대로 영향을 받았고 혹서기인 8월초엔 30도 이상의 온도를 유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포항 지역 배송 사례 1건을 제외하곤 평균 습도가 80% 이상 유지됐고, 특히 장마철 폭우가 지속된 상황에선 100%의 습도를 기록했다.

장마철과 혹서기 냉매를 넣지 않은 일반 배송에선 최대 39.9도까지 올라갔고 습도는 40~85%를 보였다. 약준모 연구팀은 "모든 사례에서 평균 온도가 상온(15~25도)을 넘어섰고, 혹서기인 8월초엔 실온(1~35도) 범위를 초과한 경우도 있었다"며 "외부온도보다 더 높은 온도대를 유지하거나 30도 이상이었던 경우도 확인됐다"고 전했다.

의약품 배달에서 일반 포장과 아이스패킹에 따른 온·습도 변화 비교표. ©약준모

연구팀은 높아진 온도에 급격한 변화를 보인 습도에 주목했다. 의약품은 제형, 성분, 형태 등 다양한 화학적·생물학적 조합을 통해 그 기능을 발휘하도록 설계돼 있어 온도와 습도 변화에 민감하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습도가 높으면 가수분해와 같은 원치 않는 화학 반응을 통해 약물의 분해를 일으킬 수 있고, 이는 불순물을 형성해 약물의 활성을 감소시킨다”고 지적했다. 실제 우리나라에서 남녀노소에 광범위하게 쓰이는 항생제인 '아목시실린' 경우 습기에 노출될 경우 수일 내로  성분이 분해되는 것으로 보고돼 있다.

연구팀은 또 수분의 흡수는 고체의 습윤을 초래해 약물의 안정성뿐 아니라 약물의 제형에 영향을 준다고 전했다. 연구팀은 "이는 분말의 유동성, 압축성, 경도, 투여 정확성에 영향을 미친다"며 "습기 노출을 막고자 PTP 포장으로 제조됐으나 개봉 조제시 쉽게 그 형태가 붕괴되는 '텔미사르탄이나 콜린알포스트레이트' 등의 약물 제제도 있다"고 했다.

또 고온에 단시간 노출되는 것만으로도 약효가 감소한다는 연구 결과와 약물 자체의 융점이 낮은 경우도 있다고 연구팀은 강조했다. 실제로 소염진통제인 '덱시부프로펜'은 녹는점이 49~53도로 매우 낮아 제형 붕괴가 쉽게 발생하고 있다. 연구팀은 30도 이상, 95% 이상의 습도에 지속적으로 의약품이 노출되면 세균이 급격하게 성장할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는 연구결과도 제시했다.

약준모 박현진 회장은 “냉장 포장을 하더라도 실제 배송 과정에서 고온다습한 외부 환경에 노출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이번 추적 연구를 통해 확인했다”면서 "온도가 높아지는 과정에서 급격하게 증가하는 습도는 실제 약물에 치명적인 결과로 작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박 회장은 “의약품 배송은 국민의 건강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는 만큼 편의성보다는 보건의료 환경에 따른 다양한 문제점 등을 충분히 검토한 후 시행돼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