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꾸라지 제약사 ‘튜링 파마’ 개과천선 튜닝?

‘다라프림’ 폭리ㆍCEO 기행 물의..직접 개발 나서

미국 뉴욕과 스위스에 오피스를 두고 있는 제약기업 튜링 파마슈티컬스社(Turing Pharmaceuticals)는 일천한 연륜에도 불구, 국내에서도 그리 낯설지 않은 이름이다.

지난해 톡소플라스마증(톡소포자충 감염증) 치료제 ‘다라프림’(Daraprim: 피리메타민)을 다른 제약사로부터 매입한 후 약가를 한 정당 13.50달러에서 750달러로 50배 이상 대폭 인상해 이에 격분한 민주당 대통령 후보 힐러리 클리턴 前 국무장관이 파격적인 약가억제 공약을 내놓게 했던 곳이 바로 튜링 파마슈티컬스社이기 때문이다.

흔히 사용되는 언어상의 관행과는 정반대 의미에서 엄청난 가격파괴를 단행했던 셈이다.

논란이 불거지자 가격인상을 철회했지만, 당시 튜링 파마슈티컬스社를 이끌었던 마크 슈크렐리 회장은 이 문제로 의회 청문회에 불려나갔을 때 태도논란을 일으키면서 일약 ‘탐욕의 아이콘’으로 급부상했을 뿐 아니라 또 다른 논란을 키웠다.

그랬던 튜링 파마슈티컬스社가 새로운 톡소플라스마증 치료제를 개발하기 위해 몇몇 후보물질들을 대상으로 전임상 단계의 연구‧개발을 진행 중이라고 21일 공표해 다시 한번 화제의 중심에 설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튜링 파마슈티컬스측이 이날 공개한 내용에 따르면 자체적으로 진행한 톡소플라스마증 치료 후보물질 가운데 몇몇 저분자량 약물들이 동물실험 모델에서 현재 사용되고 있는 치료제들에 비해 크게 개선된 효능 및 선택성을 보였다는 설명이다.

이 같은 성과가 도출됨에 따라 튜링 파마슈티컬스측은 임상시험 신약으로 FDA의 승인을 받기 위한 안전성 시험 등에 착수했다고 이날 밝혔다. 아울러 몇몇 후보물질들의 임상시험은 내년 하반기에 착수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개발이 원활히 진행될 경우 튜링 파마슈티컬스는 지난해 2월 출범한 이래 4번째 임상시험 신약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엘리시오 살리나스 연구‧개발 부문 대표는 “톡소플라스마증은 새롭고 효능이 향상된 신약들을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현재 사용 중인 치료제들의 경우 원충과 사람 숙주가 모두 필요로 하는 계열의 단백질을 표적으로 작용하는 까닭에 원충을 제거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용량에 제한이 따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뒤이어 살리나스 대표는 “원충에 고도선택적으로 작용할 수 있도록 할 경우 환자들에게 유해한 영향을 미치지 않으면서도 감염원을 제거하는 효과를 극대화시킬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톡소플라스마증은 지구상에서 가장 흔하게 발견되는 기생충의 일종으로 알려진 톡소포자충(Toxoplasma gondii)에 의해 발생하는 감염성 질환이다. 미국에서는 5명당 1명 꼴로 톡소포자충이 체내에 잠복해 있는 데다 매년 100건 이상의 톡소플라스마증이 새로 발생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다행히 대부분의 경우 증상은 경미한 수준에 그치고 있지만, 소수의 환자들은 중증을 나타낼 뿐 아니라 일부 치명적인 결과로 귀결되는 사례들도 없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하지만 현재 사용 중인 치료제들은 50년도 더 된 약물들이어서 그 동안 치료제 개발에 별다른 진전이 따르지 못했던 형편이다.

튜링 파마슈티컬스측이 개발을 진행 중인 톡소플라스마증 치료제 개발 프로그램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엽산 대사와 세포증식에 필수적인 효소로 알려진 디히드로엽산 환원효소(DHFR)를 억제하는 약물인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사용 중인 치료제들도 같은 경로를 표적으로 작용하지만 중등도 선택성을 나타내는 데 그치고 있다고 튜링 파마슈티컬스측은 언급했다.

튜링 파마슈티컬스측은 첨단 컴퓨터 화학(computational chemistry) 기술과 컴퓨터 모사(in silico) 스크리닝, 구조 기반 약물설계 등을 적용해 개발을 진행한 결과 후보물질들을 찾을 수 있었으며, 질환모델에서 다시 한번 가장 유망한 후보물질을 걸러내는 과정을 거쳤다고 밝혔다.

이 후보물질들은 원충의 디히드로엽산 환원효소(DHFR)와 사람 숙주의 DHFR 사이에서 고도의 선택성을 나타냈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현재 사용 중인 톡소플라스마증 치료제들의 결점을 배제하면서 치료효과는 크게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는 전언이다.

구체적인 연구결과는 ‘구조 기반 약물설계를 통해 톡소플라스마충의 디히드로엽산 환원효소를 억제하는 효과적이고 고도의 선택성을 유도하는 약물의 개발’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로 작성되어 학술저널 ‘의약화학誌’(Medicinal Chemistry Letters) 17일자 최신호에 게재됐다.

‘의약화학誌’는 미국 화학회(ACS)가 발간하는 권위있는 학술저널이다.

튜링 파마슈티컬스 연구팀은 톡소플라스마충의 디히드로엽산 환원효소와 결합하는 신규 저해물질의 결정학적(結晶學的) 자료도 함께 공개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가까운 장래에 후속 문헌자료를 관련저널들에 발표할 예정이다.

회사의 물을 흐려놓았던 마크 슈크렐리 회장이 물러난 후 진행되고 있는 튜링 파마슈티컬스社의 튜닝작업이 앞으로도 순조롭게 이루어질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