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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불면증 치료제 시장이 거대한 패러다임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다. 과거 뇌를 억제해 강제로 수면을 유도하던 향정신성 수면제 중심의 처방 관행에서 벗어나, 뇌의 각성 주기를 조절하는 새로운 기전의 신약과 모바일 앱 형태의 디지털 치료기기(DTx)가 양대 축으로 떠오르며 시장 재편을 주도하고 있다.
현대인의 스트레스 증가와 급속한 인구 고령화로 수면장애 환자가 매년 급증하는 가운데, 약물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수면의 질을 근본적으로 개선하려는 제약업계의 연구개발(R&D)과 시장 선점 경쟁이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하게 전개되는 양상이다.
국내 수면장애 환자 수는 매년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보건의료빅데이터 개방시스템 통계에 따르면, 수면장애(질병코드 G47)로 병원을 찾아 진료를 받은 환자는 2020년 103만명 수준에서 2024년 130만명을 돌파하며 가파른 증가세를 보였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경제적 스트레스와 라이프스타일 변화가 맞물리며 전 연령층에서 불면증 호소가 늘어났다.
이에 따라 치료제 시장 규모도 팽창하고 있다. 의약품 시장조사기관 아이큐비아(IQVIA) 및 업계 추산에 따르면, 국내 불면증 치료제 전체 시장 규모는 2021년 480억 원대에서 2025년 800억원을 돌파했으며, 올해 2026년에는 약 1000억원 규모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국내 수면진정제 처방 시장은 기존 약물들이 굳건히 양분하고 있는 구조다. 가장 높은 점유율을 차지하는 것은 향정신성 의약품인 '졸피뎀' 성분이다. 졸피뎀은 중추신경계의 가바(GABA-A) 수용체에 작용해 뇌 활동을 억제함으로써 빠른 수면 유도 효과를 낸다. 한독의 '스틸녹스'와 한미약품의 '졸피드' 등이 대표적이며 전체 시장의 약 40%를 차지한다.
그 뒤를 잇는 것은 비향정신성 제제인 '멜라토닌'으로, 건일제약의 '서카딘' 등을 필두로 시장의 약 36%를 점유하고 있다. 멜라토닌은 생체 리듬을 조절해 자연스러운 수면을 유도하므로 부작용이 적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졸피뎀을 비롯한 기존 벤조디아제핀계 및 비벤조디아제핀계 수면제는 뚜렷한 한계를 지니고 있다. 내성과 의존성 발생 우려가 높고, 다음 날 아침까지 졸음이 이어지는 '행오버(Hangover)' 현상, 기억력 저하, 몽유병과 같은 수면 중 이상행동 등의 부작용이 꾸준히 보고되어 왔다. 향정신성 의약품으로서 처방 기간이 제한적(일반적으로 4주 이내)이라는 점도 임상 현장의 장기 치료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었다.
이러한 미충족 수요를 뚫고 등장한 게임체인저가 바로 이중 오렉신 수용체 길항제(DORA, Dual Orexin Receptor Antagonist)다.
DORA는 뇌를 억제하는 기존 방식과 달리, 뇌의 시상하부에서 분비되어 각성을 유도하는 신경전달물질인 '오렉신'이 수용체(OX1R, OX2R)에 결합하는 것을 차단한다. 즉, 뇌를 강제로 재우는 것이 아니라 깨어 있으려는 신호를 차단해 자연스러운 생리적 수면 상태로 유도하는 혁신적인 기전(MOA)을 자랑한다.
국내에서는 한국에자이의 ‘데이비고(성분명 렘보렉산트)’가 2023년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품목허가를 받은 이후, 시장 점유율을 공격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데이비고는 기존 수면제 대비 의존성과 내성 발생 위험이 현저히 낮아 장기 처방에 유리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SK케미칼은 한국에자이와 코프로모션 계약을 체결하고, 300병상 이하 병·의원 대상 영업과 제품의 전국 유통을 전담하며 개원가 불면증 처방 시장을 적극적으로 공략하고 있다.
이에 맞서 동아에스티 역시 스위스 제약사 이도르시아(Idorsia)로부터 도입한 또 다른 DORA 계열 신약 ‘큐비빅(성분명 다리도렉산트)’의 국내 상용화를 준비하며 차세대 수면제 시장의 각축전을 예고하고 있다. 다리도렉산트는 수면 유도뿐만 아니라 불면증 환자의 주간 기능 개선 효과까지 입증하며 글로벌 블록버스터로 기대를 모으는 품목이다.
의약품의 진화와 더불어, 불면증 치료의 가장 큰 변화는 디지털 앱을 활용한 ‘디지털 치료기기(DTx, Digital Therapeutics)’의 정착이다. 불면증 인지행동치료(CBT-I)는 전 세계 수면의학회에서 만성 불면증의 1차 표준 치료로 권고하고 있으나, 국내에서는 전문 치료 인력 및 인프라 부족으로 인해 약물 치료에 밀려 제대로 시행되지 못했다.
이러한 물리적 한계를 극복한 것이 모바일 앱 기반의 DTx다. 에임메드가 개발한 국내 1호 디지털 치료기기 '솜즈(Somzz)'와 웰트가 개발하고 한독이 협력하는 2호 기기 '슬립큐'가 그 주인공이다. 이들 앱은 환자의 수면 일기를 바탕으로 수면 제한 요법, 자극 통제 요법, 수면 위생 교육 등 개인 맞춤형 인지행동치료 알고리즘을 6~9주간 제공하여 불면증의 근본 원인을 교정한다.
특히 솜즈와 슬립큐는 혁신의료기술로 지정되어 서울대병원 등 주요 상급종합병원을 중심으로 실제 진료 현장 처방이 본격화되었으며, 한국보건의료연구원(NECA) 등록 건수도 빠르게 누적되고 있다. 무엇보다 최근 보건복지부가 정은경 장관 체제 하에서 필수의료 강화 및 혁신 의료기술 보상 체계 개편을 적극 추진함에 따라, 디지털 헬스케어 기기의 건강보험 등재 및 수가 체계가 안정화되면서 일선 의료기관의 DTx 처방 접근성이 한층 개선되고 있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아울러 글로벌 신약과 DTx의 공세 속에서 국내 중견·전통 제약사들은 제형 개선과 독자적인 타깃 발굴을 통해 돌파구를 마련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신신제약은 기존에 경구용으로 복용하던 수면 유도 성분을 피부에 붙이는 패치형으로 바꾼 'SS262'의 임상 1상을 진행해 왔다. 비록 최근 시장 환경 변화와 파이프라인 포트폴리오 전략 수정에 따라 지난 5월 임상 조기 종료를 결정했으나, 그간 확보한 경피 약물전달 시스템(TDDS) 기술력을 바탕으로 차세대 수면유도 플랫폼 개발 등 R&D 역량을 보다 고도화하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또한 SK바이오팜은 과거 기면증 및 수면무호흡증에 따른 주간 졸림증 치료제 '수노시(성분명 솔리암페톨)'를 발굴해 기술수출에 성공, 미국 FDA 허가까지 이끌어낸 저력을 바탕으로 중추신경계(CNS) 질환 파이프라인 확장에 지속적인 투자를 단행하고 있다.
신약의 임상적 가치 입증과 정책적 보상 체계 정립이 맞물려, 2026년 국내 불면증 치료제 시장은 본격적인 질적 성장의 원년을 맞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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