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못 드는 아이들, 오렉신 치료제 소아 2상서 가능성 확인
어린 시절 짧은 수면, 청소년·청년기 우울 증상 위험 높여
슬리나이토, ADHD 소아·청소년 불면증까지 국내 적응증 확대
다리도렉산트, 총 수면시간 용량반응 확인…장기 안전성은 과제
권혁진 기자 hjkwon@yakup.com 뉴스 뷰 페이지 검색 버튼
입력 2026-08-05 06:00   수정 2026.08.05 06:01
어린 시절 지속적으로 짧은 수면은 청소년·청년기 우울 증상과 연관돼, 부모와 보호자의 세심한 관심이 필요하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픽사베이

멜라토닌부터 항히스타민제, 클로니딘, 진정 작용이 있는 항우울제까지 소아·청소년의 수면을 돕기 위해 쓰이는 약물은 적지 않다. 그러나 소아 불면장애를 대상으로 적정 용량과 유효성, 장기 안전성을 확인한 승인 치료제는 여전히 턱없이 부족하다.

최근 국내 치료 환경은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자폐스펙트럼장애 등 일부 신경발달장애에 한정됐던 허가 치료제 범위가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까지 확대됐다. 적용 대상은 제한적이지만, 허가 외 처방이 이뤄지던 치료 현장에 공식 선택지가 늘기 시작했다.

글로벌 개발도 진전되고 있다. 성인 불면장애 치료제로 허가된 오렉신 수용체 길항제(orexin receptor antagonist)인 ‘다리도렉산트(daridorexant)’는 최근 소아·청소년 임상 2상에서 용량이 증가할수록 총 수면시간이 늘어나는 유효성 신호를 확인했다.

어린 시절 짧은 수면, 청년기 우울 증상과 연관

어린 시절 지속적으로 야간 수면시간이 짧았던 아이는 청소년기와 청년기에 높은 우울 증상이 이어질 가능성이 더 높다는 연구가 나왔다.

영국 버밍엄대(University of Birmingham)가 주도한 공동연구진은 지난 5월 국제학술지 ‘유럽 아동·청소년 정신의학(European Child & Adolescent Psychiatry)’에 관련 연구를 발표했다. 논문 제목은 ‘어린 시절 수면 문제와 초기 성인기의 지속적 우울 증상 간 전향적 연관성: 염증의 매개 역할(Investigating the prospective associations of childhood sleep problems with persistent depression in emerging adulthood: the mediating role of inflammation)’이다.

연구진은 영국 에이번 부모·아동 종단연구(ALSPAC) 자료를 활용해 생후 6개월부터 6~7세까지의 야간 수면시간과 약 13~22세의 우울 증상 변화를 비교했다. 야간 수면시간 궤적 분석에는 1만2393명이 포함됐다. 이 가운데 수면시간과 우울 증상, 가정환경 등 관련 자료를 모두 갖춘 1756명을 대상으로 핵심 분석을 진행했다.

전체 코호트 1만5589명 가운데 293명, 약 1.9%는 생후 6개월부터 7세까지 지속적으로 상대적으로 짧은 야간 수면을 보인 집단으로 분류됐다. 야간 수면시간 분석군 1만2393명을 기준으로 하면 약 2.4%다.

분석 결과, 이들은 상대적으로 더 오래 잔 아이들보다 13~22세에 높은 우울 증상이 이어지는 집단에 속할 가능성이 약 2배 높게 나타났다. 분석 방법을 달리한 추가 검증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다만 통계적 불확실성이 남아 있어 짧은 수면이 우울 증상을 직접 일으킨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연구진은 염증 반응이 어린 시절의 짧은 수면과 이후 우울 증상을 잇는 경로일 가능성도 분석했다. 9세 때 측정한 인터루킨-6(IL-6)는 두 현상의 연관성을 일부 설명했지만, C-반응단백질(CRP)에서는 통계적으로 유의한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연구진은 “이번 연구가 염증이 어린 시절 수면과 이후 우울 증상을 잇는 생물학적 경로일 가능성을 보여준다”며 “영유아기부터 야간 수면시간이 지속적으로 짧은 아이의 정신건강을 장기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평가했다.

슬리나이토, ADHD 불면증까지 적응증 확대

국내 소아 불면증 치료 선택지도 넓어지고 있다. 건일제약은 지난 7월 서방형 멜라토닌 제제 ‘슬리나이토 미니서방정’의 국내 적응증을 ADHD 소아·청소년 불면증까지 확대했다.

현재 슬리나이토는 수면위생 개선으로 호전되지 않은 자폐스펙트럼장애 또는 멜라토닌 분비 이상이나 야간 각성을 동반한 일부 신경유전질환이 있는 2~18세 환자와 ADHD가 있는 6~17세 환자의 불면증에 사용할 수 있다.

현재 국내에서 ADHD 소아·청소년 불면증 적응증을 확보한 치료제는 슬리나이토가 유일하다. 지름 3㎜의 작은 서방형 정제로 복용 편의성을 높였고, 멜라토닌이 밤 동안 서서히 방출되도록 설계했다. 권장 시작 용량은 하루 1회 2㎎이며 효과가 부족하면 5㎎, 최대 10㎎까지 늘릴 수 있다.

핵심 임상에는 행동중재만으로 불면증이 개선되지 않은 2~17.5세 자폐스펙트럼장애 또는 스미스-마제니스증후군 환자 125명이 참여했다. 대상자의 96.8%는 자폐스펙트럼장애 환자였고, 28.8%는 ADHD를 함께 진단받았다.

13주 치료 후 총 수면시간은 슬리나이토군에서 평균 57분, 위약군에서 9분 늘었다. 잠드는 데 걸린 시간은 각각 39.6분과 12.5분 줄었다.

멜라토닌 다음은 오렉신…성인 불면증약, 소아 임상서 가능성 확인

소아 불면증 치료제 개발도 멜라토닌을 넘어 오렉신 수용체 길항제로 확장되고 있다. 특히 성인 불면장애 치료제로 개발된 약물을 소아·청소년에게 직접 투여해 용량과 효과를 검증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스위스 신약개발 기업 이도르시아(Idorsia)는 성인 불면장애 치료제 다리도렉산트의 소아 적응증을 개발하고 있다. 다리도렉산트는 각성을 촉진하는 오렉신 수용체 1형과 2형을 동시에 차단하는 이중 오렉신 수용체 길항제(DORA)다.

벤조디아제핀과 Z계열 수면제는 뇌의 억제성 신호를 강화해 수면을 유도한다. 반면 다리도렉산트는 잠을 깨우는 오렉신 신호를 낮춰 수면을 돕는다.

소아 불면증 약물 연구는 성인보다 까다롭다. 성장과 신경발달이 진행 중이고 연령에 따라 약물 대사와 적정 용량도 달라질 수 있다. 이 때문에 성인용 수면제가 진료 현장에서 허가 외로 사용되더라도, 소아 환자를 대상으로 용량반응을 직접 검증한 임상은 많지 않다.

이번 임상 2상에는 불면장애가 있는 10세 이상 18세 미만 환자 166명이 등록됐다. 이 가운데 165명이 다리도렉산트 10㎎, 25㎎, 50㎎ 또는 위약을 2주간 투여받았다. 자폐스펙트럼장애와 ADHD 병력이 있는 환자도 포함됐다.

1차 평가변수는 수면다원검사로 측정한 객관적 총 수면시간(TST)의 용량반응이었다. 분석 결과 다리도렉산트 용량이 높아질수록 총 수면시간이 늘어나는 통계적으로 유의한 관계가 확인됐다(p=0.0185).

이는 특정 용량의 효과만 확인한 것이 아니라, 용량을 높일수록 수면 개선 효과도 증가하는지를 평가한 결과다.

안전성은 전반적으로 위약과 비슷했다. 투여 후 발생 이상반응은 위약군 17.1%, 다리도렉산트 10㎎군 20.0%, 25㎎군 11.9%, 50㎎군 19.0%였다. 투여 후 발생한 중증 이상반응과 중대한 이상반응은 모든 군에서 보고되지 않았다.

이번 결과는 다리도렉산트가 소아·청소년 불면장애에서도 용량에 따른 유효성 신호를 보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멜라토닌이나 진정 작용이 있는 기존 약물에 의존해온 소아 불면증 치료에 새로운 선택지가 추가될 가능성도 열렸다.

다만 임상은 2주에 그쳤고, 용량별 총 수면시간 증가분과 수면잠복기, 야간각성 변화 등 상세 유효성 수치는 공개되지 않았다. 

연구진은 “향후 성장과 인지기능, 정서·신경발달에 미치는 장기 영향을 확인해야 한다”며 “수개월 이상 투여했을 때 효과가 유지되는지와 다음 날 졸림, 학습·집중력 저하 여부가 후속 임상의 핵심 과제”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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