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力史” 바로세우기 ‘비아그라’ 어느덧 10년!
1998년 3월 27일 FDA 승인 이후 “우뚝”
이덕규 기자 abcd@yakup.com 뉴스 뷰 페이지 검색 버튼
입력 2008-03-24 14:08   

1998년 3월 27일!

이 날은 바로 최초의 경구용 발기부전 치료제 ‘비아그라’(실데나필)가 FDA로부터 허가를 취득한 역사적인 날이다. 어느덧 강산도 한번 변한다고들 하는 10년 전의 일이다.

같은 해 4월 미국시장에 출시된 후 처음 여섯달만에 4억 달러가 넘는 매출을 올려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신약 랜딩사례로 꼽히게 될 것이라는 평가까지 따랐던 ‘비아그라’가 발매 10주년을 눈앞에 두고 있다.

“실패는 발명의 어머니”라는 말도 있지만, 따지고 보면 ‘비아그라’ 또한 원래 협심증 치료용 심혈관계 치료제로 개발이 착수된 제품이었음은 적잖이 아이러니컬한 사실이다. 화이자社에 학술이사로 재직 중인 브라이언 클리 박사는 “실데나필을 복용했던 임상시험 피험자들이 부작용(?)으로 인해 재복용을 꺼리는 예기치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며 당시를 회고했다.

오늘날 세계 각국에서 3,500만명 이상의 남성들이 복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비아그라’는 간편한 치료를 가능케 했을 뿐 아니라 공개적인 자리에서의 언급이 금기시되어 왔던 발기부전이라는 문제를 양지로 끌어낸 공로가 큰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비뇨기과 클리닉의 문턱이 넘쳐나는 환자들로 닳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비아그라’가 의료계에 미친 공헌으로 인정받고 있기도 하다.

실제로 ‘비아그라’가 발매되어 나오기 전까지 환자들은 인공보형물을 음경 내부에 삽입하는 수술을 받거나, 요로좌제를 사용하거나, 주사제를 투여받는 등 상당한 불편을 감수해야 했고, 이것은 수많은 환자들이 치료를 꺼리는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워싱턴 D.C.에서 클리닉을 열고 있는 한 비뇨기과 전문의는 “편리한 치료를 가능케 했다는 사실이야말로 ‘비아그라’가 많은 환자들을 병원으로 인도한 핵심요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풀이했다. 예전에는 발기부전 증상을 치료받기 위해 병원 문을 두드리는 환자가 가물에 콩나듯 했다는 것.

클리 박사는 “발기부전을 심인성 증상의 영역으로부터 신체의 질환이라는 영역으로 인식을 전환시키는 과정에서도 ‘비아그라’는 중요한 도우미 역할을 했다”고 강조했다. 이제는 발기부전이 혈관계 질환의 일종이라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이들이 눈에 띄지 않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버드대학 의대의 한 비뇨기학 담당교수는 “모든 환자들에게 ‘비아그라’가 축복의 약물이었다고 할 수만은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즉, 일부 환자들의 경우 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비아그라’ 복용을 통해 얻지 못하는 걸림돌들이 없지 않다는 설명이다.

가령 ‘비아그라’가 공복 또는 저지방 식사 후에 복용했을 때 가장 괄목할만한 약효를 기대할 수 있는 데다 복용 후 30분 정도 ‘기다릴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고, 복용 후 4시간 정도까지 약효가 지속된다는 사실은 “性의 프로그램화”라는 문제를 낳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는 대목.

파트너와 진정한 정서적 교감을 원하는 이들에게는 ‘비아그라’가 축복의 약물이 될 수 없음을 시사하고 있는 셈이다.

인터넷을 통해 손쉬운 구입이 가능해진 탓에 필요하지도 않은 건강한 남성들의 복용을 부추기고, 이로 인해 의존성을 유발할 수 있다는 문제점도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이 때문일까? 발매 초기 당시 일부 애널리스트들은 “차후 5년 이내에 한해 매출규모가 30억 달러 고지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지만, 현실은 아직 여기에 도달하기에는 힘이 부치는 모습이다.

그럼에도 불구, 심지어 ‘비아그라 신화’(The Viagra Myth)라는 말까지 널리 회자되기에 이른 현실은 ‘비아그라’가 가져온 혁명이 결코 과소평가되어선 안될 것임을 웅변하고 있다는 평가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어쨌든, 1998년 3월 27일은 제약史에 손꼽히는 ‘혁명의 날’ 가운데 하나로 기록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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