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품 회사에서 정식으로 허가를 받아 판매하는 제품이 아니면 들여놓지 않아요. 아이들에게 좋을 것도 없고 간혹 검증이 되지 않은 위험한 제품도 있기 때문에… 그래도 입술에 바르는 화장품은 가끔 눈에 띄었는데 지금은 생산을 하지 않는지 물건을 들이라는 업체도 없어요. 손톱을 꾸미는 제품도 스티커나 판박이 종류가 대부분이지 액상 형태의 매니큐어는 잘 나오지 않습니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 앞에서 문방구를 운영하는 A씨의 설명이다. 지난 몇 년간 언론과 소비자단체, 학부모단체는 이처럼 이른바 ‘문방구 화장품’으로 불리는 제품에 대해 꾸준히 문제를 제기해왔다.
화장을 하는 초등학생이 증가함에 따라 어린이들이 매일같이 드나드는 학교 앞 문방구에서 1000원~2000원 대의 저가 화장품 판매가 급속히 확산됐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제품들이 유해 성분을 함유했거나 성분 표시가 전혀 없는 등 안전성이 확보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식약처는 이러한 문제 제기에 발 빠르게 대처했다. 무분별하게 판매되는 문방구 화장품에 대해 단속을 강화하는 한편 지난해 1월에는 ‘소중한 내 피부를 위한 똑똑한 화장품 사용법’ 홍보물을 제작, 10세 미만의 초등학교 저학년을 위한 ‘예쁜 나’ 책자를 전국 초등학교에 배포했다.
5월에는 녹색건강연대와 ‘2016 어린이·청소년 화장품 안전사용 교육’ 신청 학교를 모집해 100개 학교를 대상으로 전문 강사의 강당교육, 방송교육 등을 진행했다. 식약처가 이처럼 꾸준히 인식 개선 활동을 진행한 결과, A씨의 말처럼 현재 문방구에서 판매되는 불량 화장품은 거의 자취를 감춘 상태다.
하지만 이와는 별개로 화장을 하는 어린이의 숫자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그 연령 또한 낮아지는 추세다. 지난 2014년 발표된 ‘초등학생들의 화장품 사용실태 및 구매 행동에 관한 연구’ 논문에 따르면 연구에 참여한 초등학교 5~6학년 학생 586명 중 약 76%가 ‘화장품을 사용해본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최근 성신여대 김주덕 교수가 발표한 '초등생 화장품 사용 실태 연구’ 논문에서도 초등학교 4~6학년 300명 중 절반 정도의 학생이 색조 화장품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실제로 초등학교 4학년인 장 모 양(11)은 “팬시점에서 볼터치 화장품과 립스틱을 팔고 있는 걸 봤어요”라며 “주위에 틴트를 쓰는 친구도 있고, 학년이 높아질수록 화장품을 더 많이 사용해요”라고 말했다.
또 다른 4학년 학생 김 모 양(11)은 “어떤 친구는 입술이 많이 트는데, 자기가 직접 립밤과 틴트를 녹여서 화장품을 만들기도 했어요”라며 “학교 근처 문구 전문점에서 원래 장난감을 파는 자리에 화장품을 놔둔 걸 봤어요”라고 말했다.
화장품에 대한 어린이들의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이처럼 최근에는 대형 문구 전문점과 팬시점에서 쉽게 화장품을 접할 수 있게 됐다. 입점 제품 카테고리 내에 화장품을 추가한 경우도 있고, 직접 PB 상품을 제작해 출시한 곳도 있다.
이는 정식 허가를 받은 제품이기 때문에 안전성 측면에서 문제되는 사항은 없다. 다만 현재 식약처에서 화장품을 분류하는 기준이 ‘영·유아용’과 ‘성인용’ 두 가지뿐인 만큼, 어린이들이 구입하는 제품이 ‘성인용’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
아직은 피부가 여린 어린이들이 성인용 화장품을 사용하고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이에 대해 식약처는 현재 화장품 법에 규정된 화장품 유형 12가지에 ‘어린이용 제품류’를 추가하고 9월부터 시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식약처 관계자는 “아직 구체적으로 정해진 바는 없으며 색조, 눈 화장용 등 허용 범위에 대해 논의하고 있는 단계”라고 말했다.
또 “화장품이 술·담배와 같이 인체에 ‘유해하다’는 연구결과가 밝혀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기준을 정해 규제하는 것이 까다롭다”고도 했다. 새롭게 바뀌는 제도에 따라 출시될 ‘어린이 화장품’의 사용 연령은 만 13세 미만의 초등학생으로 설정될 예정이다.
화장품 업계는 조심스러운 반응을 내놓고 있다. 신설되는 ‘어린이 화장품’ 관련 기준은 시장의 새로운 카테고리이긴 하지만, 그만큼 역풍도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예측 때문이다.
대다수의 학부모는 ‘어린 아이들에게 화장품을 판매하는 것은 상술’이라며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어린이 화장품’이라는 기준 자체가 어린이들이 화장품을 사용하는 것을 당연시하고, 악용될 경우 아이들에게 화장을 장려하는 역효과를 낼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반면 “아이들이 화장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면, 성인용 화장품과 구분되는 확실한 규정에 따라 안전한 제품을 사용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한 학부모도 있어 의견이 분분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 보건 교육 관계자는 “아이들은 화장품 사용법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고 한 번에 많은 양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며 “클렌징을 제대로 하는 경우도 드물어 화장 독이 오르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말했다.
이때 치료를 위해 피부과를 찾으면서도, 붉게 트러블이 생긴 피부를 감추고 싶어 다시 화장을 덧바르는 악순환이 이어진다는 것. 그는 “하지만 요즘은 워낙 화장품을 사용하는 학생이 많아 일일이 제재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