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9일은 세계 염증성 장질환의 날이다. 최근 국내에서도 염증성 장질환 환자 수가 10년 새 두 배 가량 늘었다. 염증성 장질환은 크론병 또는 궤양성 장질환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크론병은 입에서 항문까지 소화기관의 경로에 따라 염증이 산발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크론병은 한 번의 주사 또는 약물로만 치료되지 않는다. 크론병을 앓는 A 씨의 증언을 빌리자면 치료제로 몸속의 '염증을 묶어둘 뿐' 크론병은 언제고 어떻게 악화될지 모르는 질환이다. 다음은 A 씨의 시점으로 정리한 크론병 경험기에 관한 기사다.
▲ 20대 중후반 크론병 진단…먹지 못하는 음식에 5m 뛰기도 버거울 만큼 허약해져
내가 처음 크론병을 진단받았을 때는 대학 졸업을 앞두고 인턴을 시작하면서 사회생활을 준비하고 있을 시기였다. 그런데 두세 달간 갑자기 체중이 20kg 넘게 빠지면서 몸에 이상을 느꼈다. 병원에 방문해 내시경 검사를 받고서 곧바로 크론병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대장·소장, 항문에 염증이 발견됐고 의사는 확실한 소견이라며 이같이 진단을 내렸다.
처음 진단을 받았을 때 어안이 벙벙해 대기실에서 한참을 앉아 있었다. 직장생활을 막 시작할 시점에서 크론병을 진단받고 나니 직장 생활하기가 점차 어려워졌다. 언제고 화장실에 뛰어갈지 몰라 항상 화장실이 어디에 있는지 주변을 살폈고 업무에 온전히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크론병을 진단받으면서 꿈 많던 20대에 나는 내 의지대로 사는 방식을 체득하기 보다는 일정 포기해야 하는 것들을 먼저 배워야 했다.
크론병을 앓게 되면 소염제와 항생제 등 기본적인 약물 치료법을 계속해서 유지해야 한다. 음식도 가려야 하는 것이 일상이다 보니 빈혈이 찾아오기도 했다. 소화기관이 자극될만한 것은 피했고 오직 음식에 영양가만 있는 것만 계산하다 보니 이제는 음식에서 얻는 즐거움이 없어도 무덤덤하게 받아들이게 됐다.
또 주기적인 피검사를 통해 염증수치와 알부민 수치를 확인한다. 2012년 수술을 받았는데 14년에 재발해 다시 절제술을 받았다. 염증으로 장이 좁아지면서 장의 일부를 드러냈다. 2차 수술이 끝나고 좀 더 적극적으로 치료를 해보자는 의사의 권유로 휴미라 제제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생물학적 제제를 약 3년 정도 유지했는데 확실히 몸이 나아지는 것을 경험했지만 갈수록 약의 유지기간이 짧아진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나의 경우에는 치료제로 인한 알레르기로도 고생이 많았다. 할 수 없이 염증이 심하게 올라오지 않도록 평소 음식을 조절하고 스스로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
답은 이미 정해진 듯하지만 때때로 좌절감이 드는 때가 있다. 제 아무리 음식을 조절한다고 하더라도 사회생활을 하는 이상 매번 회식, 모임을 거절하기만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외부 생활을 완전히 내 통제 속에 두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도 마찬가지다. 크론병이라고 알려진 것이 배려와 이해로 돌아올 때도 있지만 때로 예상하지 못한 불편함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 병원 처방에 횟수 제한, 언제 악화될지 모르는 불안감에 일상의 한계 느껴
크론병 자체로도 고통스럽지만 희귀병이다 보니 보험적용에서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당시 보험적용은 총 8회에 한해 적용됐고, 이 자가 주사제의 비용 10%를 지급하고 처방받을 수 있었다. 건강보험 혜택을 받으면 3달에 한 번 자가주사제를 처방받으며 20-30만 원의 비용을 부담하지만 8회가 넘어가면 몇백만 원을 고스란히 부담했어야 했다.
다행스럽게도 그간 정부에서 크론병 치료에 대한 제도 개선을 해왔고 내가 처음 크론병을 진단받을 때에 비해 지금은 치료제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 혜택은 본인부담금 20%에서 10%로 낮아지는 등 이전보다 좋아졌다. 약 10년 전에는 크론병에 사용하는 생물학적 제제가 몇 개 되지 않았지만 지금은 가짓수도 많아졌다. 그 만큼 약가도 내려갔고 환자가 선택할 수 있는 치료제의 범위도 넓어졌다. 하지만 여전히 크론병의 특수성을 고려해 제도가 수정될 필요가 있다고 느낀다.
크론병은 1주일 가는 감기 같은 것이 아니다. 그야말로 완치라는 병의 종착점이 없이 끊임없이 관리해야 하는 만성질환이다. 언제 염증이 악화될지 모르는 상황에서도 보험이 적용되는 치료 횟수는 정해져 있다. 또 약물을 바꾸거나 수술이 필요한 경우에도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정상적인 생활로 빠르게 복귀하는 것이 더디어진다.
적극적인 치료 외에도 일상에서도 마찬가지다. 평소 좋은 영양 섭취와 운동으로 체력을 길러놓으려는 노력이 무색하게 염증에 시달린 몸은 때로 예고 없이 일상에 주저앉기도 한다.
그야말로 의지와는 상관없이 몸이 주저 앉을 때 바쁘게 돌아가는 업무환경을 바라보며 크론병 환자로서 보호받을만한 장치가 없다는 것을 절감했다. 처음 여성들을 위해 생리휴가가 도입됐을 때 일부 남성들은 이에 반대했듯이 크론병을 앓는 사람을 위해 보건휴가가 생긴다면 일반인들이 얼마나 받아들일지 모르는 일이다.
열이 나는 와중에도 회사 사람이 병원보다는 업무를 먼저 마치라고 붙잡을 때, 친하다고 느꼈던 주변 사람이 '크론병은 옮는 것 아니냐'고 물어올 때, 크론병에 가로막혀 소통의 공통분모가 없음에 좌절감을 느꼈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내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은 바람은 간절하다. 2만 명에 밑도는 희귀병이지만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치료 지원과 병가를 인정받는 제도가 언젠가 정착되기를 희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