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학연구재단 기고1] 한국 의료기기 산업 성장을 위한 전략
김동우 고문/재단법인 미래의학연구재단, 상무/메드트로닉코리아
전세미 기자 jeonsm@yakup.com 뉴스 뷰 페이지 검색 버튼
입력 2020-01-08 05:00   수정 2020.01.13 20:59

한국 의료기기 산업의 현 주소

최근 5년간(2014~2018년) 연평균 8%의 성장을 거듭한 우리나라 의료기기 시장은 2018년 기준 6조 8천억원 규모로 세계 9위의 위상을 자랑하고 있다. 하지만 430조원 규모로 추산되는 세계 의료기기 시장에서 국내 의료기기 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1.6% 내외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국내 의료기기 산업이 추구해야 할 방향은 자명하다. 제품 경쟁력 강화를 통한 해외 시장 진출 확대일 것이다. 국내 의료기기 산업이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노력이 선행되어야 할까? 하나의 정답이 있을 수 없는 어려운 질문에 대해서 필자는 의료기기의 R&D(연구개발) 기획이라는 관점에서 제품 군 선정, 혁신(Innovation) 방법론, 그리고 산학병 협업이라는 영역에서 한국 의료기기 산업 성장을 위한 전략을 제안해 보고자 한다.


제품 군(device area)에 따른 시장 규모와 성장률

2017년 기준 제품 군 별 세계 시장 규모를 보면 체외진단(In Vitro Diagnostics) 분야가 60조원2)으로 1위, 순환기(Cardiology) 분야가 54조원으로 2위, 진단영상(Diagnostic Imaging) 분야가 45조원으로 3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어서 정형외과(Orthopedics) 분야가 4위, 안과(Ophthalmics) 분야가 5위에 자리하고 있다. 같은 해를 기준으로 우리나라 의료기기 업체가 높은 생산실적을 보이고 있는 제품 군을 확인하여 보면 세계 시장 규모 순위와는 다소 차이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치과용 임플란트 고정체가 1위, 범용 초음파 영상진단 장치가 2위, 치과용 임플란트 상부 구조물이 3위, 조직 수복용 생체재료가 4위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치과, 피부과 등의 제품 군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다는 것은 훌륭한 성과이나 세계적으로 시장 규모가 큰 순환기, 정형외과 등 분야의 생산 실적이 상대적으로 저조하다는 사실은 다소 아쉬운 부분이다.

세계 시장 규모와 함께 향후 미래에 더욱 시장 규모가 확대될 제품 군에 대해서 알아보는 것도 빠뜨려서는 안될 부분이다. 2017년~2024년 기간의 세계 의료기기 시장 전체의 연평균 성장률(CAGR)은 5.6%이며, 특히 신경학(Neurology) 분야는 연평균 9.1%, 당뇨 관리(Diabetic Care) 분야는 연평균 7.8%, 외과(General/Plastic Surgery) 분야는 연평균 6.5% 성장하는 등 전체 평균을 상회하는 성장률을 통해 향후 시장 규모를 더욱 확대할 것으로 예측되었다. 이와 함께 순환기(Cardiology) 분야는 전체 2위의 시장 규모와 함께 연평균 6.4%에 달하는 성장률을 바탕으로 전체 의료기기 시장 내에서 비중을 더욱 확대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제품 군 별 시장 규모와 성장률을 고려한다면 우리나라 의료기기 업체도 창업, 추가 투자를 고려할 때 기존에 강점이 있는 제품 군 외에도 향후 세계 의료기기 시장에서 지속적으로 비중을 확대할 것으로 예상되는 신경학, 순환기, 당뇨 관리 분야에 대한 경쟁력 강화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생각한다.


의료기기 업체가 고민해야 할 혁신(Innovation)의 방법론

본인만의 기술로 새로운 의료기기 업체를 만들어 보고자 하는 스타트업 대표, 기존의 주력 제품을 대체할 수 있는 차세대 제품을 개발하고자 하는 중견 의료기기 업체 연구소장, 후발 주자의 추격을 따돌리고자 하는 글로벌 의료기기 업체의 R&D 부문 대표가 갖고 있는 공통적인 고민이 있다. 기존 제품과 차별화를 가져오는 방법으로서의 혁신을 추구할 때 어느 정도의 변화를 추구해야 할 것인가하는 문제이다. 이와 같은 고민과 관련하여 글로벌 선도 의료기기 업체인 메드트로닉(Medtronic)은 다음과 같은 혁신의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 지속적인 혁신(Continuous Innovation)이다. 기존에 있는 제품의 경제적 가치(Economic Value)나 임상적 결과(Clinical Outcomes)를 개선시키는 것에 방점을 두는 혁신의 방법을 의미한다. 기존 제품에 추가적인 기능을 부여하는 것, 같은 품질을 유지하되 낮은 가격에 판매할 수 있는 원가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 새로운 소재를 도입하여 제품 안전성을 높이는 것 등 다양한 형태의 개선을 이루는 것을 목표로 둘 수 있는 방법이다. 이와 같은 전략을 선택할 경우 소비자(환자 혹은 의료진)의 요구를 효과적으로 충족시킬 수 있는 차별화 요인을 제공함으로써 경쟁사 대비 우위를 확보할 수 있게 된다. 기존 제품의 보완 성격이 크기 때문에 추가로 부담해야 할 연구개발 비용, 인허가 비용도 상대적으로 낮을 가능성이 있고, 개발 실패의 위험도 낮은 경우가 많다. 다만 경쟁이 치열한 시장일 경우 후발주자 입장에서는 지속적인 혁신만으로는 선도 업체 대비 우위를 점하기가 쉽지 않다는 한계점은 존재한다.

둘째, 발명(Invention)이 또 다른 혁신의 방법을 제공한다. 기존에 전혀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치료법을 위한 제품을 개발하여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방법이다. 환자 혹은 의료진의 요구는 존재했으나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치료법이 없었던 (혹은 부족했던) 영역에서 새로운 소재, 작동원리 등을 바탕으로 의료기기를 개발, 출시하는 노력이 이에 해당한다. 발명에 해당하는 혁신에 성공할 경우 일정 기간 동안 차별화된 제품을 독점적으로 판매할 수 있는 지위를 누릴 수 있기에 매출, 이익 측면에서 높은 성과를 얻는 것이 가능하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캡슐 내시경(Pill Cam)을 예로 들 수 있다.

셋째, 파괴적 혁신(disruption) 역시 혁신의 방법론 중 하나이다. 이미 존재하는 제품이 갖고 있던 한계점을 획기적인 기술로 해결하거나 제품 사용자의 편의성을 극대화하는 기술을 접목하여 전혀 새로운 가치를 제공하는 방법을 의미한다. 완전히 새로운 가치를 제공한다는 점에서는 발명과 유사한 부분이 있으나 기존 제품의 보완이라는 부분에서는 지속적인 혁신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연속 혈당측정 기능이 탑재된 인슐린 펌프, 무선 심박 조율 시스템(wireless pacing system) 등이 이에 해당하는 사례이다.

위의 세 가지 혁신의 방법론 중 우리나라 의료기기 업체가 추구해야 할 방향은 어떤 것일까? 각 업체가 처한 환경과 보유한 역량에 따라 최적의 방법을 선택해야 하겠지만 일반적으로 시장 선도적 지위를 가지고 있지 않다면 파괴적 혁신(disruption) 혹은 발명(invention)을 통해 차별화된 가치를 제공할 수 있을 때 글로벌 의료기기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기에 유리할 것이다. 다만 혁신적인 제품을 처음 개발하여 임상, 허가 과정을 극복해 나가는데 필요한 막대한 자본과 전문적인 역량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산학병 협력과 정부의 지원이 필수적이다.


연구개발 과정에서의 산학병 협업

의료기기 산업에서 연구개발(R&D)이 갖는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으며, 이와 같은 중요성은 글로벌 선도 의료기기 업체가 집행하는 연구개발비 규모에서도 여실히 증명된다. 세계 최대 의료기기 업체인 메드트로닉은 2017년 기준으로 2.5조원을 연구개발비로 집행하였으며, 필립스는 1.9조원, 존슨앤존슨은 1.8조원을 연구개발비로 집행하였다. 한국 주요 제약사의 연간 연구개발비가 아직 2천억원 내외라는 점을 고려하면 한국 의료기기 업체와의 연구개발비 격차는 더 클 것으로 추산하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당장 글로벌 선도 의료기기 업체와 같은 수준의 연구개발비를 투자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우리나라 의료기기 업체의 여건을 고려한다면 단순한 규모의 확대 보다는 우리나라가 갖는 강점을 활용한 효과적인 연구개발 협업 체계 확보가 선택 가능한 방안일 것이다.

우선 생각해 볼 수 있는 방안은 한국이 강점을 갖고 있는 주요 기술 분야인 정보통신기술(Information Technology), 생명공학기술(Bio Technology) 분야의 기업체, 연구소와의 협업을 통한 의료기기 개발이다. 이와 함께 고려해야 할 방안은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한국의 의료진과 이들이 속한 병원과의 협업이다. BIG 5 병원을 위시한 국내 주요 대학병원들은 최첨단 기술과 우수한 의료진을 바탕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 선도 대학병원이 보유한 풍부한 임상 경험과 연구개발 역량이 한국 의료기기 업체의 잠재력과 체계적으로 결합할 경우 차별화된 시너지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연구소 기반 창업, 병원 기반 창업을 논의하면서 빠뜨릴 수 없는 부분은 스타트업 인큐베이터의 역할이다. 의료기기 산업은 다른 산업과 달리 초기 창업 및 상업화 과정에서 스타트업 단독으로는 수행하기 어려운 시제품 제작, 임상(및 전임상), 해외 인허가라는 장애물을 넘을 것을 요구한다. 해당 과정은 경험 및 자본이 부족한 초기 스타트업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하며 이는 많은 의료기기 스타트업이 상업화 단계에 이르기도 전에 실패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미 우수한 헬스케어 스타트업 생태계가 구축된 미국의 경우에는 다수의 의료기기 스타트업의 창업, 상업화, IPO(주식시장 상장), M&A 등을 주도하는 의료기기 전문 인큐베이터가 활약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향후 활약이 기대되는 인큐베이터가 활동하고 있으나 이들의 역할이 좀 더 활성화되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


한국 의료기기 산업의 미래

한국 의료기기 산업은 세계 9위 수준의 시장 규모에도 불구하고, 해외 수출액은 10위권 밖에 머무르고 있고, 세계 20위 안에 드는 글로벌 의료기기 업체의 존재는 전무한 실정이다. 하지만, 앞서 서술한 바와 같이 세계 최고 수준의 병원과 의료진, 세계 시장을 선도하는 정보통신기술, 생명공학기술을 보유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강점이다. 의료기기의 개발 단계에서부터 산학병 협력을 바탕으로 주요 제품군 시장에서 차별화된 제품을 개발할 수 있는 혁신을 이루어 낸다면 한국 의료기기 산업은 독일, 일본, 스위스와 같은 세계 주요 의료기기 선진국 수준으로 한단계 더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제공 : 재단법인 미래의학연구재단(http://medicalinnovation.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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