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물부터 수술까지…‘발작 없는 삶’ 향해 달라지는 뇌전증 치료
국내 환자 약 36만명·매년 2만명 이상 신규 발생…약물 난치성 환자는 전체 약 30%
3세대 신약과 로봇 기반 정밀검사·뇌자극술·최소침습 치료 등 선택지 확대
강남베드로병원 홍승봉 원장 “전문센터 확대로 적극적 치료 가능한 환경 조성”
최윤수 기자 jjysc0229@yakup.com 뉴스 뷰 페이지 검색 버튼
입력 2026-07-22 10:06   

뇌전증 치료가 약물을 통한 발작 관리에서 장기간 발작이 없는 상태와 환자의 삶의 질 개선을 함께 추구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새로운 기전의 항경련제부터 수술용 로봇을 활용한 정밀검사, 뇌자극술, 레이저 기반 최소침습 치료까지 치료 선택지가 넓어지면서 약물 난치성 뇌전증 환자의 치료 접근성도 개선되고 있다.

뇌전증은 전 세계적으로 약 5000만명이 앓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만성 뇌질환이다. 국내 환자는 약 36만명에 달하며 매년 2만명 이상의 신규 환자가 발생한다.

뇌전증은 뇌졸중, 치매와 함께 3대 신경계 질환으로 꼽힌다. 특정 연령대에만 발생하는 질환이 아니라 영유아부터 고령자까지 전 연령대에서 나타날 수 있다. 그러나 난치성 뇌전증 치료를 위한 인프라가 충분하지 않았던 탓에 여전히 약물을 통해 발작을 관리하는 질환으로만 인식되는 경우가 있다. 환자 역시 약물 치료 이상의 적극적인 치료를 선택하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강남베드로병원 신경과 홍승봉 뇌전증·수면센터장은 “신약과 정밀 진단, 수술 기법이 동시에 발전하면서 뇌전증 치료 분야가 전환기를 맞고 있다”며 “국내 뇌전증 진단·치료 인프라도 지속해서 확대되는 만큼 앞으로 환자가 선택할 수 있는 치료 방법은 더욱 다양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강남베드로병원은 7월 22일 ‘세계 뇌의 날’을 맞아 최근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뇌전증 치료 방법과 국내 진료 환경을 소개했다.

3세대 신약부터 로봇·레이저까지…적극적 치료로 전략 변화

뇌전증은 뇌 신경세포의 과도한 흥분으로 일시적인 발작이 반복해서 나타나는 질환이다. 발작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전신경련뿐 아니라 짧은 의식 소실, 기억이 끊기는 증상, 멍한 상태, 반복행동, 팔다리의 이상감각 및 자율신경발작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과거에는 반복적인 발작으로 인해 뇌전증 환자의 사회생활이 어렵다는 인식이 강했고, 치료도 항경련제를 사용해 발작을 억제하는 데 주로 초점이 맞춰졌다.

그러나 뇌전증 환자 가운데 약 30%는 두 가지 이상의 적절한 약물 치료에도 발작이 충분히 조절되지 않는 약물 난치성 뇌전증에 해당한다. 이들 환자는 기존 약물 중심의 치료만으로는 발작을 관리하기 어려워 치료 과정에서 상당한 어려움을 겪어왔다.

최근의 뇌전증 치료는 단순히 발작 횟수를 줄이는 것을 넘어 장기간 발작이 없는 상태를 유지하고, 환자의 삶의 질과 장기적인 예후를 개선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약물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환자별 발작 유형과 원인, 병변 및 치료 반응을 고려하는 맞춤형 치료를 시행하고 궁극적으로 환자의 사회 복귀까지 지원하는 적극적인 치료 전략이 강조되고 있다.

새로운 항경련제의 등장도 이러한 변화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최근에는 기존 2세대 치료제와 차별화된 작용기전을 갖춘 3세대 뇌전증 신약들이 도입되고 있다.

현재 건강보험 급여 심의가 진행 중인 세노바메이트는 국내 기업 SK바이오팜이 개발한 신약이다. 약물 난치성 뇌전증을 비롯한 여러 뇌전증 유형에서 새로운 치료 선택지로 주목받고 있다.

3세대 신약 성분인 브리바라세탐 제제도 7월부터 건강보험 급여가 본격적으로 적용됐다. 브리바라세탐은 레비티라세탐의 약물 구조를 개선한 성분으로, 우울증이나 성격 변화 등의 부작용 부담을 줄이면서 빠른 효과와 안정적인 혈중 농도 유지를 돕는 것이 특징이다.

수술적 치료도 정밀화·고도화되고 있다. 수술용 로봇인 카이메로를 활용하면 입체뇌파전극삽입술(SEEG)을 보다 정밀하게 시행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발작이 시작되는 뇌 부위를 정확하게 확인하고, 약물 난치성 뇌전증 환자의 수술 가능성과 적절한 수술 범위를 평가할 수 있다.

병변이나 발작 초점을 제거하는 완치 목적의 수술이 어려운 환자에게는 뇌심부자극술(DBS)과 미주신경자극술(VNS) 등 신경조절 치료를 적용할 수 있다. 환자별 뇌병변과 발작 초점, 발작 양상 등을 고려해 적합한 치료법을 결정하는 방식이다.

레이저를 이용해 병변이나 발작 초점을 치료하는 최소침습적 수술도 시행되고 있다.

홍승봉 원장은 “미국과 유럽의 주요 뇌전증센터에서는 고주파와 레이저 등을 활용한 뇌전증 치료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며 “정밀 진단과 수술 기술이 발전하면서 과거보다 환자 상태에 맞춘 다양한 치료 전략을 검토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전문센터 확대와 뇌자도검사 급여 전환…진단·치료 접근성 개선

약물 난치성 뇌전증 치료를 위한 국내 진료 인프라도 점차 확충되고 있다.

약물로 발작이 조절되지 않는 환자는 정밀검사를 거쳐 수술적 치료를 시행하면 치료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뇌전증 수술을 시행할 수 있는 의료 인프라가 서울과 부산에 집중돼 있어 환자가 수술 가능성을 검토하지 못하거나, 수술까지 1∼2년 이상 기다리는 사례가 발생해 왔다.

최근에는 대학병원 이외에도 뇌전증 정밀검사와 수술 치료를 제공하는 전문 의료기관이 생겨나면서 진단 및 치료 대기기간을 줄이고 환자의 접근성을 높이는 기반이 마련되고 있다.

뇌전증 수술에 앞서 발작 초점을 정밀하게 확인하는 데 활용되는 뇌자도검사(MEG)는 2026년 2월부터 건강보험 필수급여 대상으로 전환됐다. 뇌자도검사는 뇌 신경세포의 활동에서 발생하는 미세한 자기장을 측정해 발작 초점의 위치를 파악하는 검사로, 난치성 뇌전증 환자의 수술 전 평가에 활용된다.

강남베드로병원은 2025년 4월 신경과 전문의 홍승봉 원장을 중심으로 뇌전증·수면센터를 개소하고, 정밀 진단부터 치료까지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뇌전증 치료 패스트트랙을 구축했다.

센터는 비디오뇌파검사실 7개와 캐드웰(Cadwell), 나투스(Natus) NDX 등 검사 장비를 갖췄다. 뇌자도검사 결과를 판독할 수 있는 체계도 마련했으며, 정밀 진단에 필요한 비디오뇌파검사를 월평균 60건 이상 시행하고 있다.

비디오뇌파검사는 환자의 행동과 발작 양상을 영상으로 기록하는 동시에 뇌파 변화를 측정하는 검사다. 환자에게 나타나는 증상이 뇌전증 발작인지 구분하고, 발작의 시작 부위와 유형을 확인하는 데 활용된다.

강남베드로병원은 지역과 의료기관에 관계없이 정밀검사나 뇌전증 수술이 필요한 환자가 검사·치료 시설을 이용할 수 있도록 관련 인프라를 공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홍 원장은 난치성 뇌전증 환자에게 세노바메이트를 투여해 치료 경험을 축적하고 있으며, 병원 밖에서 사용할 수 있는 뇌전증 응급약 부콜람(구강점막 미다졸람)의 국내 도입에도 참여했다.

일본 뇌전증 의료진과 협력해 국내 신경외과 의사를 대상으로 한 뇌전증 수술 단기 연수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부콜람이 국내에 도입되기 전 환자가 일본에서 처방받을 수 있도록 협진 체계를 구축하기도 했다.

치료 반응 예측 AI·RNA 신약 등 차세대 연구 확대

환자에게 적합한 치료법을 조기에 선택하고 약물 난치성 뇌전증을 치료하기 위한 연구도 이어지고 있다.

서울대병원 연구진은 올해 초 인공지능을 활용해 뇌전증 항경련제 치료 반응을 예측하는 머신러닝 모델의 후향적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 모델은 20종 이상의 항경련제 가운데 특정 약물에 대한 환자별 치료 반응을 사전에 예측해 치료 초기부터 적합한 약물을 선택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개발됐다. 현재 기본 모델 단계이며 향후 임상연구를 통한 검증과 고도화가 필요하다.

유전자 수준에서 뇌전증의 원인에 접근하는 RNA 치료제 연구도 진행되고 있다. 카이스트 의과학대학원에서 설립된 교원창업기업 소바젠은 난치성 뇌전증 치료를 위한 안티센스 올리고뉴클레오타이드(ASO) 기반 RNA 신약을 개발했다.

소바젠은 해당 기술을 기반으로 2025년 9월 글로벌 제약사 안젤리니파마와 약 7700억원, 미화 5억5000만달러 규모의 기술이전 계약을 체결했다.

홍승봉 원장은 “과거에는 치료 인프라 부족으로 환자별 상태에 맞는 적극적인 치료를 시행하기 어려웠지만, 최근 새로운 치료법이 등장하고 뇌전증 전문센터가 생겨나면서 진단과 치료 환경이 빠르게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 다양한 약물과 수술법을 복합적으로 활용하는 치료 전략에 관한 연구가 발전해 장기간 발작 억제와 완치 등의 성과로 이어진다면 더 많은 환자에게 ‘발작 없는 삶’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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