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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체생검의 다음 단계는 암을 찾아내는 것을 넘어 환자의 종양과 전신 면역상태를 정밀하게 파악하고 치료 결정에 활용하는 것입니다. CTC·ctDNA·단백질 등 다양한 바이오마커를 통합하고 AI·자동화 기술을 접목해 임상과 신약개발로 연결해야 합니다.”
암 진단을 넘어 치료 반응과 재발, 종양 변화까지 파악하려는 액체생검의 임상 활용 가능성이 구체화되고 있다.
액체생검(Liquid Biopsy) 최신 연구 동향과 미래 발전 방향을 논의하는 ‘Meet the Pioneers: Liquid Biopsy 2026’이 9일 판교 코리아바이오파크 B1 강당에서 개최됐다. 이번 행사는 DGIST(대구경북과학기술원)가 주최하고 씨티셀즈(CTCELLS), 한국바이오협회가 공동 주관했다.
액체생검은 종양 조직을 직접 떼어내는 조직생검과 달리 혈액 등 체액에서 암세포나 종양 유래 DNA, 단백질 등 바이오마커를 분석하는 검사 방식이다. 비침습적으로 반복 검사가 가능해 암 조기 발견은 물론 치료 반응과 재발, 종양의 변화를 지속적으로 추적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행사에는 클라우스 판텔(Klaus Pantel) 독일 함부르크-에펜도르프 대학병원(UKE) 교수, 카트린 알릭스-파나비에르(Catherine Alix-Panabières) 프랑스 몽펠리에 대학병원 희귀 순환세포 연구소 교수 등 해외 액체생검 연구진이 참석했다. 김민석 DGIST 뉴바이올로지학과 교수이자 씨티셀즈 대표는 AI 기반 자율실험실을 활용한 차세대 액체생검 기술을 소개했다.
세 연사는 각각 CTC 분석 자동화, 액체생검의 임상적 가치와 검증 과제, 종양 유래 지표와 전신 면역상태를 함께 보는 다중 바이오마커 분석 필요성을 제시했다.
김민석 교수, CTC 분석 ‘AI 자율화’로 전환
김 교수는 “CTC 기반 액체생검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복잡한 분석 과정을 자동화해야 한다”며 “CTC는 워낙 적고 이질성이 큰 데다 분리·염색·영상분석 과정에서 작업자의 숙련도와 판단이 개입하기 때문에 같은 검체에서도 결과에 차이가 생길 수 있다. 이를 줄이는 것이 임상 적용을 위한 핵심 과제”라고 설명했다.
CTC는 원발암이나 전이 병소에서 혈액으로 흘러나온 온전한 암세포다. DNA뿐 아니라 RNA와 단백질 정보까지 분석할 수 있지만, 혈구세포 약 10억개당 1개 수준으로 매우 드물다. 세포 크기와 마커 발현도 제각각이어서 같은 검체를 분석해도 분석자에 따라 CTC 개수가 달라질 수 있다.
김 교수는 “ctDNA는 종양에서 나온 DNA 조각을 분석하는 데 강점이 있지만 RNA와 단백질 정보까지 얻는 데는 한계가 있다”며 “CTC를 포함한 세포 기반 액체생검은 DNA·RNA·단백질 정보를 함께 볼 수 있어 종양과 종양 미세환경을 더 정밀하게 분석할 수 있다”고 제시했다.
CTC 분석에는 상당한 시간과 인력이 필요하다. 김 교수가 제시한 기존 분석 워크플로우 사례에서는 CTC 분리에 1회당 5시간과 최소 23회 개입, 염색에는 40시간과 최소 43회 개입이 필요하다. 현미경 관찰과 영상 분석에도 검체당 각각 약 2시간이 소요된다.
이에 김 교수는 AI와 로봇을 결합한 ‘Biopsy 2.0’ 자율실험실을 구상했다. 그는 “분리와 염색, 영상 판독부터 단일세포 회수까지 각 단계를 자동화하고 Physical AI와 로봇을 결합해 사람이 반복적으로 개입하지 않아도 CTC를 분석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궁극적으로는 DNA·RNA·단백질을 아우르는 멀티오믹스(Multi-omics) 분석까지 연결하고 스스로 분석 조건을 최적화하는 자율실험실로 발전시키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자동화를 통해 작업자에 따른 편차를 줄이고 분석 결과의 재현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나아가 “CTC 분석 병목을 해결하고 표준화된 데이터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어야 연구에서 끝나지 않고 임상으로 연결할 수 있다”며 “이런 기반이 마련되면 CTC 기반 액체생검의 임상 활용뿐 아니라 신약개발 적용 범위도 넓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판텔 교수, 액체생검 ‘조기진단’ 넘어…MRD·치료로
판텔 교수는 “액체생검 활용 범위를 암 조기진단에 한정하지 않고 미세잔존질환(MRD), 치료 반응, 재발 위험, 치료 표적 및 치료법 선택 등으로 넓혀야 한다”며 “궁극적으로는 암을 발견하는 검사에서 환자별 치료 전략을 결정하는 도구로 발전해야 한다”고 전했다.
MRD는 치료 후에도 체내에 남아 있는 미량의 잔존 종양을 의미한다. 액체생검은 CTC나 ctDNA 같은 혈액 바이오마커를 이용해 영상검사로는 찾기 어려운 수준의 잔존 질환을 추적하는 데 활용할 수 있다.
특히 MRD를 실제 치료 결정으로 연결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판텔 교수는 “MRD는 영상검사보다 앞서 재발 위험을 포착할 수 있다는 데 의미가 있다”며 “다음 단계는 MRD 상태를 근거로 수술 후 보조치료를 강화할 환자와 불필요한 치료를 줄일 환자를 구분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액체생검 임상적 가치는 단순히 암을 얼마나 잘 찾아내느냐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혈액검사로 발견한 암이 실제 치료 결정과 예후 개선으로 이어지는지를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혈중 순환유리DNA(cfDNA)의 암 관련 메틸화 신호를 이용해 여러 암을 조기에 발견할 수 있는지를 평가한 ‘PATHFINDER’ 연구가 소개됐다. 새롭게 암이 진단된 29명 중 14명(48%)은 1·2기 암으로 확인됐다. 담도암, 소장암, 췌장암 등 기존 권고 선별검사가 없는 암종도 포함돼 액체생검으로 암을 비교적 이른 단계에서 찾아낼 가능성을 보여줬다.
판텔 교수는 “여러 암을 혈액으로 조기에 찾아낼 수 있다는 가능성은 확인되고 있지만, 암을 더 많이 발견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며 “그 결과가 실제 치료 시점을 앞당기고 환자의 임상적 이득과 생존 개선으로 이어지는지를 입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26년 발표된 영국 국민보건서비스(NHS) ‘Galleri’ 다중암 조기검출 혈액검사 연구에서는 암 증상이 없는 영국인 14만2924명을 대상으로 검사의 효과를 평가했다. 선별검사를 통해 발견된 암은 Galleri 검사군 1173건, 대조군 290건이었지만, 사전에 정한 12개 암종에서 3·4기 암을 줄이는 효과는 통계적으로 유의하지 않았다.
판텔 교수는 “조기검출 기술의 최종 목표는 검사에서 암 신호를 찾는 것 자체가 아니라 진행된 단계의 암을 줄이고, 환자 치료 결과를 개선하는 것”이라며 임상적 유용성을 입증하는 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두 연구 결과를 종합하면, 액체생검은 암을 찾아내는 기술을 넘어 조기 발견이 실제 치료 결정과 임상적 이득으로 이어진다는 점을 입증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알릭스-파나비에르 교수, CTC로 종양·전신 면역상태 함께 본다
알릭스-파나비에르 교수는 “CTC는 단순히 혈액에서 암세포를 찾아내는 바이오마커가 아니라 전이 과정에서 살아남은 세포의 특성과 면역회피 기전을 직접 살펴볼 수 있는 정보원”이라며 “CTC를 통해 종양 전이 특성과 암세포가 면역체계 공격을 피하는 과정을 함께 살펴볼 수 있다”고 밝혔다.
CTC의 혈액 내 생존 기간은 15분에서 2시간으로 짧지만, 일부 살아남은 희귀 CTC는 전이 능력을 갖는다. 또 CTC는 NK세포, 대식세포, 혈소판, 호중구 등과 상호작용하면서 면역세포의 공격을 피하는 ‘면역회피’에 관여한다.
알릭스-파나비에르 교수는 “혈액 속에서 살아남은 CTC는 혼자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여러 혈액세포와 상호작용하며 생존에 유리한 환경을 만든다”며 “이 과정을 보면 암세포 자체의 특성뿐 아니라 환자에게 어떤 면역억제 상태가 형성돼 있는지도 함께 이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하나의 순환 바이오마커만으로 충분했다면 이미 답을 찾았을 것”이라며 “종양 유래 정보뿐 아니라 환자 전신 면역상태까지 함께 평가하려면 CTC와 ctDNA, 세포외소포체(EV), 면역세포, 혈장 단백질 등 서로 다른 정보를 통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전이성 유방암 연구에서는 종양 조직과 혈액 속 CTC의 PD-L1 단백질 발현이 서로 유의한 상관관계를 보이지 않았다(p=0.589). 단변량 분석에서는 PD-L1 양성 CTC가 확인된 환자의 무진행생존기간(PFS)이 더 짧은 것으로 분석됐다.
알릭스-파나비에르 교수는 “조직에서 확인한 PD-L1 결과가 혈액 속 CTC 상태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며 “암은 시간에 따라 변하고 전이 부위마다 특성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반복적으로 혈액을 분석하면 조직검사만으로는 놓칠 수 있는 변화를 보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비소세포폐암에서도 종양 조직에서 확인한 PD-L1과 CTC에서 확인한 PD-L1 결과의 일치도가 53.7%로 나타났다. 조직검사와 CTC 분석에서 같은 PD-L1 결과가 나온 환자가 절반 정도였다는 의미다.
이 같은 결과는 종양 조직 한 곳이나 하나의 바이오마커만으로 환자 상태를 판단하기보다 CTC·ctDNA·세포외소포체(EV)·단백질·면역세포 등 여러 정보를 함께 분석할 필요성을 보여준다.
알릭스-파나비에르 교수는 “앞으로 액체생검은 하나의 바이오마커를 찾는 경쟁이 아니라 여러 층의 정보를 결합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며 “CTC 분석에 면역세포 프로파일과 혈장 단백체 등을 함께 연결해야 환자의 종양 생물학과 전신 면역상태를 더 정밀하게 파악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씨티셀즈는 자체 ‘CTCceptor’를 기반으로 순환종양세포(CTC)를 자동 분리·분석하고 암연관섬유아세포(CAF)까지 함께 분석하는 CTC·CAF 플랫폼을 개발하고 있다. 관련 플랫폼은 MD 앤더슨 암센터, 일본 국립암센터, 독일 함부르크-에펜도르프 대학병원(UKE) 등에 도입됐다. 현재 한국, 미국, 일본, 유럽에서 규제·인허가 기반을 구축하고 주요 암종의 임상 데이터를 축적하고 있다.
파일럿 연구에서는 기존 ctDNA 및 미세잔존질환(MRD) 검사 대비 잠재적 이점도 확인했다. 씨티셀즈는 다이이찌산쿄와 공동연구를 진행 중이며, 향후 산전진단과 반려동물 종양 등 희소세포 분야로 적용 범위를 확대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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