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산업, ‘알약’ 넘어 플랫폼으로…조직·사업구조 재편
신약개발 효율성 제고·R&D 넘어 사업 전 과정 혁신 필요
빅테크·헬스케어 서비스 진입…환자 중심 접점·‘Beyond the Pill’ 중요
정수용 IQVIA 대표이사, KSPM MA Forum서 ‘제약산업 변화 방향’ 제시
허지수 기자 suhjs0721@yakup.com 뉴스 뷰 페이지 검색 버튼
입력 2026-09-02 06:00   수정 2026.09.02 06:20
정수용 IQVIA 대표이사가 1일 서울성모병원 마리아홀에서 열린 ‘KSPM MA Forum 2026’에서 발표하고 있다.©약업신문=허지수 기자
‘KSPM MA Forum 2026’ 현장.©약업신문=허지수 기자

제약산업이 의약품 개발·판매 중심의 사업모델에서 벗어나 데이터와 서비스, 플랫폼을 포괄하는 산업으로 재편되고 있다.

신약개발 임상 성공률이 장기간 정체된 가운데 자본 효율성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고 있으며, 오픈이노베이션과 M&A 확대, 빅테크의 헬스케어 진입 등이 맞물리면서 제약사의 조직과 사업 전반에도 변화가 요구되고 있다.

정수용 IQVIA 대표이사는 1일 서울성모병원 마리아홀에서 열린 ‘KSPM MA Forum 2026’에서 ‘Industry Dynamics Reshaping Pharma Organization’을 주제로 제약산업의 변화 방향을 제시했다.

산업 경계 허문 스마트폰…제약산업은 상위권 구도 유지

정 대표는 “산업 구조를 바꾼 대표적인 사례가 스마트폰”이라며 “다양한 기능을 하나로 통합해 산업 간 경계를 허물고 소비자 접점을 확보한 플랫폼이 기존 산업의 사업 구조를 재편했다”고 말했다. 반면 제약산업은 주요 기업의 시장 지위가 장기간 유지되며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구조를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2000년과 2026년 제약사 상위 10곳을 비교하면 일부 기업의 순위가 하락했지만 상위권 기업 대부분은 여전히 시장에 남아 있다. 2026년에는 일라이 릴리가 시가총액 1조500억달러로 1위를 차지했으며, 노보 노디스크와 길리어드 사이언스가 상위 10위권에 진입했다.

임상 성공률 제자리 …‘효율성’이 화두

정 대표가 제시한 제약산업의 첫 번째 변화는 효율성 제고다.

그는 2000년 신약개발 임상 성공률이 8~9% 수준이었으며 2025년에도 같은 수준에 머물렀다고 설명했다.

지난 25년간 의료기술이 발전했지만 임상 성공률을 크게 높이지 못한 가운데 제약·바이오에 대한 투자 규모가 커지면서 수익성과 투자수익률(ROI)에 대한 요구도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효율성 제고의 범위도 연구개발을 넘어 영업과 임상 등 사업 전반으로 확대되고 있다.

영업에서는 대면 중심의 활동을 디지털 방식으로 전환해 비용 대비 효과를 높이는 방안이 요구되고 있으며, 임상에서는 분산형 임상시험(DCT)을 통해 환자의 병원 방문 부담을 줄이고 원격 환자관리와 모니터링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R&D 중심에서 오픈이노베이션·M&A로 확장

두 번째 변화는 혁신의 범위가 R&D를 넘어 사업 전반으로 확대되는 것이다.

과거 제약사의 이상적인 사업모델은 신약 후보물질 발굴부터 임상, 허가, 생산, 영업·마케팅까지 직접 수행하는 수직통합형 구조였다. 그러나 현재는 오픈이노베이션과 협업을 통해 각 분야의 전문성을 결합하는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다.

시장 구조에서도 이러한 변화가 나타난다. MSCI World Health Care Index에서 순수 제약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0년 82%에서 2026년 45%로 감소했다. 의료기기와 헬스케어 서비스, 기술기업 등이 그 자리를 차지하면서 제약산업이 의약품 중심에서 서비스·데이터·플랫폼 영역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M&A는 산업 간 융합을 가속하는 수단으로 부상했다. 길리어드, 아스트라제네카, 사노피 등 글로벌 제약사들은 멀티빌리언달러 규모의 거래를 통해 새로운 기술과 파이프라인을 확보하고 있다.

정 대표는 “글로벌 제약사들이 M&A에 대규모 자금을 투입하고 있다”며 이를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큰 베팅’으로 설명했다.

치료 넘어 예방으로…GLP-1이 보여준 확장성

세 번째 변화는 치료에서 예방으로의 확장이다.

과거 제약사의 역할이 질병을 가진 환자를 치료하는 데 집중됐다면 앞으로는 조기 진단과 위험 예측, 만성질환 관리 등 건강을 유지하는 영역까지 확대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국가건강검진 등을 통해 진단 접근성이 높은 만큼 예방 중심의 헬스케어에서 제약사의 역할이 확대될 가능성도 제시됐다.

GLP-1은 이러한 변화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혔다. GLP-1은 당뇨병 치료에서 비만 치료로 영역을 넓혔으며 심혈관질환, 수면무호흡, 중독치료 등으로 적용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

정 대표는 GLP-1이 단순한 비만 치료제가 아니라 대사질환 전반을 아우르는 플랫폼으로 확장될 가능성을 언급했다. 이에 따라 기존 질환별·진료과별 구분을 넘어 대사 건강을 중심으로 새로운 치료 영역이 형성될 가능성도 제시했다.

빅테크 진입에 환자 직접 접점까지…‘Beyond the Pill’

제약산업의 경쟁 구도에는 빅테크도 들어오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오픈AI, 애플, 구글, 삼성 등은 AI, 클라우드, 웨어러블, 의료서비스와 소비자 접점을 기반으로 헬스케어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특히 디바이스와 AI 기술을 활용하면 환자가 병원을 직접 방문하지 않고도 의료진과 소통할 수 있는 환경이 구축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에 따라 제약사의 고객 접점도 달라질 수 있다. 기존에는 의사와 약사가 주요 고객이었다면 앞으로는 환자와 직접 소통하고 지원하는 역량이 중요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정 대표는 향후 환자가 병원을 방문하기 전 AI를 통해 건강정보나 의약품 정보를 확인하고 제약사와 직접 소통하는 형태가 나타날 가능성도 제시했다.

이러한 변화는 제약사 조직의 기능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환자지원 프로그램, 교육, 실사용근거(RWE) 기반 근거 창출, 원격 모니터링 등 기존 조직의 경계를 넘어선 기능이 확대될 수 있다. 특히 Medical Affairs(MA)와 인접 조직 간 역할을 어떻게 구분하고 새로운 기능을 만들어갈지가 과제로 제시됐다.

정 대표는 “제약사는 의약품을 개발해 판매하는 ‘Product Sales Company’에서 ‘Beyond the Pill’로 확장돼야 한다”며 ”경쟁자 범위를 제약사를 넘어 다른 산업까지 넓게 바라보는 동시에 데이터와 AI 기반 플랫폼 역량을 확보하고 산업 간 파트너십을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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