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7편 > 建國 이후 첫 산업박람회..최초 이벤트 특집기사 (1955. 10.~11.)
[대하기획시리즈] 약업신문 지령 6000호 돌파기념
이덕규 기자 │ abcd@yakup.com 뉴스 뷰 페이지 검색 버튼
입력 2026-09-28 11:00   수정 2026.09.28 12:02

국내 박람회의 효시는 일제강점기였던 지난 1907년에 개최된 경성박람회(京城博覽會)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정부 주관으로 본격적인 산업박람회가 열리기 시작한 것은 해방 이후부터의 일이어서 경제성장이 최우선 과제였던 그때 그 시절, 박람회는 제조업체들의 성과를 한 자리에서 선보일 수 있는 간편하고 효과적인 방법으로 각광받았다.

건국 이후 최초의 박람회는 광복 10주년을 기념하는 거국적인 행사의 일환이자 우리나라의 산업발전을 총결산하는 자리로 1955년 10월 1일부터 11월 말까지 두 달 동안 창경원에서 열린 해방 10주년 기념 산업박람회였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TV를 통해 간간이 소개되는 과거의 ‘대한늬우스’(필자 주: ‘대한뉴스’의 옛날식 표기)나 ‘그 때를 아십니까’ 등의 프로그램 영상을 통해 사상 초유의 큰 행사로 개최된 것이라는 아나운서의 내레이션과 함께 접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생생하게 떠오르는 박람회가 바로 1955년 열린 산업박람회였다.

국산품 장려와 산업부흥을 목적으로 내세운 가운데 농기구관에서부터 원자관, 광업관에 이르기까지 각 분야별로 총 4만739점에 달하는 당시로선 최첨단 제품들이 전시된 1955년 산업박람회는 ‘박람회’란 말 자체가 무척 생소하기만 했던 당시 방문객들의 시선을 잡아끄는데 부족함이 없어 보였고 성황리에 진행됐다. 단적인 예로 우리나라 최초의 국산 조립 자동차인 시발(始發) 자동차가 출품되어 대통령상을 수상하면서 세간의 이목을 끌었던 것이 이 때의 일이다.

해방 이후 국내 최초로 개최된 이 산업박람회에서 제약기업들은 대한약품공업협회(현재의 한국제약바이오협회)의 주도로 특설관을 설치하고 국내생산 의약품을 대거 전시했다. 한국전쟁 기간 동안 전국 제약시설의 80% 이상이 파괴되었던 현실에서 제약기업들의 대대적인 참가가 이루어진 것은 우리나라가 아직 본격적인 산업화 단계로 접어들기 이전에 광산업, 섬유공업 등과 함께 국내 제조업을 대표하는 업종의 하나로 군림했던 제약산업의 위상을 입증해 보인 개가였다.

당시가 휴전협정이 체결된 후 속속 환도한 제약기업들이 제약산업의 재건을 위해 한창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던 무렵인 데다 매년 40만 달러 규모에 이른 미국 국제원조협력처(ICA)의 원조자금이 약업계에 수혈되면서 최신 제약시설이 갖춰지고 본격적인 생산이 개시된 것은 당시 산업박람회에 다수의 제약기업들이 전폭적으로 참가할 수 있었던 배경이 됐다. 실제로 1954년의 국내 의약품 생산액이 5억6,477만환에 불과했던 것이 이듬해인 1955년에는 무려 3배 이상 껑충 뛰어오른 20억8,588만환에 달했을 정도로 당시 국내 제약업계는 한창 기지개를 켜고 있던 무렵이었다.

1955년 10월 대한민국 산업박람회 개최를 알리는 기사가  본지 1955년 10월4일자 1면에 게재돼 있다 ©약업신문 

이와 관련, 본지 1955년 10월 4일자 1면을 보면 “産業博覽會 保健館 開館” 제목(부제‧總出品醫藥品百餘種)의 기사가 가장 눈에 띄는 지면 중간부분에 보건사회관의 전경사진과 함께 게재되어 있어 그리 어렵지 않게 시야에 들어온다. 다음은 해당기사의 일부이고, 원문은 거의 한자로 인쇄되어 있지만, 대부분 한글로 옮겼다.

“旣報한 바 해방 10주년 기념 산업박람회는 드디어 10월 1일 일제히 개관을 보게 되었다. 産博(주: 산업박람회)의 개관과 함께 보건사회부와 대한약품공업협회에서 추진 중에 있는 보건관도 다수 제약회사의 참가를 얻어 성황을 보게 되었는데 출품회사는 旣報한 17社 외에 제일물산 濬性(준성)삭카링 대한비타민 판비타外 2種 南化(남화)의료기 주사침 數種 3社가 추가되어 전부 20社로 총 출품 의약품은 百餘種目에 달하고 있다. 각 회사의 출품순위는 입구에서부터 1, 고려은단 2, 삼일제약 3, 근화제약 4, 桂林(계림)약품 5, 동아제약 6, 동양제약 7, 유한산업 8, 동아물산 9, 중외제약 10, 유한양행 11, 대한비타민 12, 아주제약 13, 合同(합동)제약(주: 합동화학의 오기로 보임) 14, 제일물산 15, 수도제약 16, 남북의료기 17, 天一(천일)제약 18, 신아(新亞)제약 19, 서울약품 20, 종근당으로 되어 있다.”

특히 본지는 산업박람회의 개막을 알리는 스트레이트 기사 이외에 10월 25일자에서 2면에 당시 중앙화학연구소가 출품한 원자로 모형사진과 ‘蔘茸톤’ 옥외광고 사진을 게재한 데 이어 3~4면 2개면에 걸쳐 산업박람회 보건관 특집으로 “産業博覽會 保健館 特輯 醫藥品 出品案內” 기사를 게재했다.

1955년 10월 25일자 약업신문 지면 2개면에는 당시 박람회에 참가한 주요제약기업에 관한 특집기사가 게재됐다. ©약업신문 

박람회에 출품한 업체들과 제품, 사진 등이 집중적으로 게재된 이 기사는 그 당시 통상적으로 사용되었던 열악한 지질의 갱지를 사용해 인쇄‧제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본지가 창간한 이래 특정한 행사 또는 이벤트와 관련해서 기획되고 게재된 최초의 특집기사라는 맥락에서 기억해 두어야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은단’, ‘에비오제’, ‘원기소’ 등 지금도 낯익은 유명제품들이 눈에 띄어 상당히 흥미로움이 앞서게 하기도 한다.

한편 거국적인 행사로 치러진 광복 10주년 기념 산업박람회는 당초 기대했던 수준을 뛰어넘는 높은 호응 속에 장안의 화제를 모으면서 성공적으로 막을 내렸다. 훗날 5‧16 쿠데타로 집권에 성공한 과도기적 군사정부마저 1955년 산업박람회에 이렇듯 큰 호평이 쏟아졌던 것을 기억해 내고 국내산업의 육성발전과 국산품에 대한 생산장려 및 품질향상, 해외시장 개척 등을 목적으로 내세우면서 1962년 4월 15일부터 5월 31일까지 서울 경복궁에서 ‘5‧16 군사혁명 1주년 기념 산업박람회’을 급조해서 개최했을 정도였다.

당시 2억6,000여만원이라는 1960년대 초로서는 가히 천문학적인 예산을 들여 국가 초유의 이벤트를 마련했던 것이다. 박람회 경비를 충당하고 5‧16 군사 쿠데타 1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100환 짜리 산업박람회 복권을 처음으로 발행했을 만큼 당시 과도기적 군사정부는 1955년의 박람회를 모방한 또 한번의 산업박람회를 개최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그렇게 볼 때 창간 바로 다음해였던 1955년 광복 10주년 기념 산업박람회에 본지가 별도의 지면을 할애하면서까지 출범 이래 행사 또는 이벤트와 관련한 최초의 특집기사를 게재했던 것은 대단히 참신하고 민첩하며 의미를 부여할 만한 기획이었다.

해방이후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개최된 산업박람회. 해방된 지 10년만인 1954년 10월부터 11월까지 두달간 열린 박람회에서 제약기업들이 소개된 보건사회관은 관연 최고 인기 공간이기도 했다. ©약업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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