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6편 > 支社‧支局‧總局 잇단 설치..지방 보급망 확대 “파발처럼”
이덕규 기자 abcd@yakup.com 뉴스 뷰 페이지 검색 버튼
입력 2026-09-21 09:12   수정 2026.09.21 09:12

1959년 5월 24일자 ‘약사시보’ 1면 하단 왼편에 게재된 박스 형태의 사고(社告)를 보면 아래와 같은 내용이 게재되어 있어 눈길이 비상하게 쏠리게 한다.

“今般 弊社에서는 晋州地區의 普及擴張을 期하여 左記와 如히(필자 주: 당시는 세로쓰기로 신문이 인쇄되었던 시절임.) 支局을 增設하였아오니 惠諒하시기 바랍니다.

               晋州市 平安東 一三三
                         高麗藥品株式會社
                           代表   宋   性   根
                               電話 一◯番
             五月二十日
                                 藥事時報社“

경상남도 진주시에서 고려약품주식회사를 경영하는 송성근(宋性根) 대표를 본지의 지국장으로 위촉한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송성근 대표는 약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라면 무척 낯익은 이름이라는 사실에 생각이 미치게 된다. 지난 1962년 1월 5일 의약품 도매업체 대표자 60명이 대한약품공업협회(현재의 한국제약바이오협회) 회의실에서 가칭 ‘대한의약품도매협회’(현재의 한국의약품유통협회) 발기인 총회를 개최했을 당시 초대회장의 중책을 맡을 적임자로 추대된 인물이 바로 송성근 회장이었기 때문이다.

송성근 회장은 오늘날 의약품 도매업계를 대표하는 단체가 조기에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초석을 다지고 주춧돌을 놓은 주인공이다. 의약품 도매업계의 신망을 한몸에 받았던 인물이 바로 송성근 회장이었다는 의미이다.

이처럼 의약품 도매업계의 주역 가운데 한 사람으로 첫손가락 꼽힐 만한 인물이 1950년대 말에 본지의 지국장으로 위촉되어 활동했다는 사실은 당시 ‘약사시보’의 지방 보급망 확대를 위해 앞다퉈 설치되었던 지사, 지국 및 총국들의 성격을 상당부분 가늠할 수 있도록 해 주는 중요한 힌트를 제공해 주는 것처럼 보인다.

 약업신문은 창간 직후 교통과 통신의 발달이 대단히 미흡했던 그 때 그 시절부터 이미 전국 각지에 지사 지국 등 보급망을 촘촘하게 구축했고 본지지면에 지역별 책임자를 사진과 함께 실명으로 게재함으로써 놀라울 정도의 투명성과 신뢰도를 확보했다. ©약업신문 

이와 관련, 본지는 창간호인 지난 1954년 3월 29일자 2면 하단 왼편에 “支社支局 設置” 사고(社告)를 처음 게재하는 등 창간 직후부터 교통과 통신의 발달이 대단히 미흡했던 그 때 그 시절 전국 각지에 본지의 보급망을 촘촘하게 구축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송성근 지국장의 위촉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당시 본지의 지사, 지국 및 총국들은 일간지들의 지역별 신문보급소와는 분명 차이나는 역할을 수행했을 것으로 보인다. 단순히 신문의 보급과 발행부수 확대, 지역광고 수주에만 전력투구하는 일간지들의 신문보급소와 달리 본지의 지사, 지국 및 총국들의 운영을 맡은 담당자들은 대부분이 본인 또한 어떤 업태로든 약업을 본연의 업으로 영위하면서 지역 약업계 내부적으로 동업자들과 안면을 익히고 밀접하게 교류하면서 보폭을 넓히는 데 자신의 지사장, 지국장 및 총국장 등의 직위를 최대한 활용했을 것으로 보인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이들은 서울 및 서울과 가까운 곳은 차편으로, 지방은 우편으로 본지를 배송받으면 가까운 곳에 위치한 업소들이 아닌 한 “신문이요, 신문 왔어요”를 외치면서 일일이 들고 다니며 배달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 약업계의 크고 작은 모임이 있을 때 신문을 가져가 배포하는 등의 방식으로 신문을 보급했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지사, 지국 및 총국과 가까운 곳에 위치한 업소들의 경우에는 자전거 등을 이용해 배포하는 방식도 병행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처럼 지역 약업계에서 정보소스의 역할을 하면서 자신이 업으로 영위하고 있는 약업이 한층 탄탄한 발판 위에 구축될 수 있도록 하는 데 그들 자신도 적잖이 도움을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는 점은 추측해 보기에 그리 어렵지 않아 보인다.

당시로선 구경조차 하기 어려웠던 약업 관련 전문서적이나 신간을 본지로부터 배송받아 보급하는 업무 또한 이들의 몫이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수수한 구독료와 대금 등을 본지와 배분하는 방식으로 지사, 지국 및 총국은 운영비와 수익을 확보했다. 일부 지사장, 지국장 및 총국장들의 경우 1980~1990년대에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기사가 운전하는 승용차를 운영했을 정도로 상당히 쏠쏠한 이윤을 창출한 것으로 알려져 있을 정도다. 또한 일부 지사장, 지국장 및 총국장들은 자신의 직위를 자녀에게 승계하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60년대 후반 약업신문에 게재된 본사 조직 및 기구표. ©약업신문  

그런데 창간 이후 한동안 본지의 배송은 지역에 따라서는 불가피하게 한 두 주일에서 많게는 한달 이상 뒤늦게 배포되는 등의 사례들도 없지 않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물론 이 같은 배달지연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본지는 일찍부터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그 같은 맥락에서 본지 1964년 6월1일자 1면 하단에 게재된 ‘알림’의 내용은 상당히 주목할 만해 보인다.

“本紙는 迅速正確한 보도와 이미 製作된 新聞을 讀者 여러분들에게 보다 빠르게 보내드리기 위해 항상 努力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그의 一環策으로 新聞發送에 늘 不便을 느껴오던 濟州島 發送分은 5月 28日부터 KAL 航空便으로 發送키로 했습니다. 따라서 本紙는 每週 木曜日과 日曜日 下午엔 濟州島에 도착됩니다.”

이와 함께 본지의 지사장, 지국장 및 총국장들은 중요한 정보원의 역할을 하면서 저마다의 지역 약업계에서 비중있는 인사로 우대받았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때로는 아예 본지의 통신원 또는 주재기자 역할까지 겸하는 지사장, 지국장 및 총국장들도 없지 않았다.

이렇듯 창간 직후부터 마치 파발(擺撥)처럼 전국에 걸쳐 촘촘하게 구축된 본지의 지사, 지국 및 총국들의 운영을 맡았던 당사자들이 본지가 조기에 정착하고 약업계의 권위지로 성장해 나가는 데 크게 기여했고, 결코 빼놓을 수 없는 한몫을 담당했다는 것은 명약관화한 팩트라는 데 별달리 이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다만 1990년대 후반 들어 본격적인 온라인 시대가 도래한 이후 지사, 지국 및 총국 등의 운영이 침체기로 접어들면서 내리막길을 걸은 것은 무척 아쉬움이 앞서게 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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