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뷰티가 전 세계 시장으로 확장되면서 경쟁의 성격도 달라지고 있다. 한국 브랜드 간 제품 경쟁에 현지 기업까지 합류해 K-뷰티의 미학과 소비 방식을 자체 브랜드로 재해석하기 시작했다. K-뷰티의 주류화가 한국 브랜드의 성장을 자동으로 보장하지 않는 단계에 접어든 것이다.
대학내일ES 구성법인 컨셉추얼의 양문성 대표는 최근 출간한 '글로벌 브랜딩'에서 이러한 변화를 'K-제품에서 K-브랜드로' 전환해야 할 시점으로 진단했다. 양 대표는 기아자동차 마케팅과 메타브랜딩 공동 창업, 엠파스 마케팅 임원을 거쳐 2007년 컨셉추얼을 설립했으며, 아모레퍼시픽 KT&G 등 국내 기업의 브랜드·글로벌 전략을 맡아왔다.
이번 책에는 뷰티를 비롯한 소비재 기업의 해외 진출을 컨설팅하며 축적한 컬처코드와 소비코드, 현지화 전략을 담았다. 양 대표를 지난달 21일 대학내일 본사에서 만나 K-뷰티의 글로벌 브랜딩 전략을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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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책을 쓰게 된 가장 직접적인 계기는
기업들을 만나면 제품과 속도, 가성비, 바이럴에 관한 이야기를 반복해서 듣는다. 그다음에는 무엇을 할 것인지 물으면 답이 뚜렷하지 않다. 과거 중국에서 한류 수요에 힘입어 한국 제품이 판매됐지만, 한류의 열기가 식자 상당수가 함께 사라졌던 상황과 닮았다.
지금은 한류가 전 세계로 확산됐다. 한국 브랜드가 글로벌 시장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는 큰 기회지만, 호기심 구매를 반복 구매로 연결하지 못하면 다시 기회를 놓칠 수 있다. 해외에 물건을 보내고 온라인 광고를 집행하는 데 그쳐서는 브랜드를 남기기 어렵다는 위기감에서 책을 쓰기 시작했다. 책에는 뷰티와 건강기능식품, 식품, 담배 등 주요 소비재 산업의 사례를 담았다. 중국과 일본, 동남아시아, 미국, 유럽을 대상으로 현지화 전략을 수립한 경험 가운데 공개할 수 있는 내용을 선별했다.
책에서 강조한 '컬처코드'와 '소비코드'는 무엇인가
컬처코드는 특정 대상에 관해 한 사회나 문화권의 구성원이 공유하는 의미체계다. 기후와 종교, 역사, 사회환경을 통해 오랫동안 내면화되기 때문에 유행에 따라 쉽게 바뀌지 않는다.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나 '정', '우리'라는 공동체 의식도 컬처코드다.
소비코드는 컬처코드를 포함하는 넓은 개념으로, 소비자가 제품과 브랜드를 해석하고 소비하는 방식에 자리 잡은 인식이다. 기존 마케팅이 소비자를 설득하는 데 초점을 뒀다면 소비코드는 소비자의 인식과 브랜드를 연결한다. 저가 커피 전문점에서 10·20대가 달콤한 음료를 즐기는 현상을 '당 충전'으로, 제품을 '마시는 디저트'로 해석하는 식이다.
K-제품의 인기와 K-브랜드의 성장은 어떻게 다른가
K-제품의 인기는 K-뷰티 안에서 비슷한 제품으로 이동하는 '이너 루프'에 머물 수 있다. 제형과 성분, 가격, 디자인이 비슷하면 브랜드를 바꿔도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 제품력이 좋아도 브랜드는 언제든 대체될 수 있다.
K-브랜드로 성장하려면 현지 소비자와 공감대를 쌓고 반복 구매를 만들어야 한다. 소비자가 수많은 K-뷰티 제품 가운데 특정 브랜드를 찾아 구매할 때 제품의 인기가 브랜드의 성장으로 이어진다.
속도와 가성비, 바이럴 중심의 성장 전략을 어떻게 보나
초기 해외 진출 기업들의 성과가 속도와 가성비, 바이럴에서 나온 것으로 받아들여지면서 이 세 가지가 성공 공식처럼 굳어졌다. 특정 기업이 인플루언서 시딩과 리테일 광고로 성장하면 같은 방식에 물량을 투입하고, 식품이 챌린지로 성공하면 또 다른 챌린지를 기획하는 식이다.
그러나 속도와 가성비, 바이럴은 모두 경쟁을 전제로 한다. 속도는 방향이 맞을 때 효과가 있고, 가성비는 더 저렴하고 좋은 제품이 나오면 힘을 잃는다. 실제로 K-뷰티 제품 대다수가 15~25달러대에 형성돼 있고 30달러를 넘는 제품은 드물어 가격으로 벌어놓을 수 있는 차이가 크지 않다. 바이럴은 첫 구매를 유도할 수 있지만 반복되면 피로와 회피를 부른다. 경쟁사들이 모두 인플루언서와 광고에 비용을 쏟으면서 효율도 낮아지고 있다.
바이럴은 브랜드를 널리 알리는 수단이다. 확산 자체가 목적이 되면 그 안에 어떤 의미와 가치를 담을지가 빠진다. 소비자가 브랜드를 알고 좋아하게 만드는 방향이 먼저 정해져야 한다.
글로벌 브랜딩을 '현지화의 총합'이라고 정의한 이유는
글로벌 시장을 하나로 묶어 동일한 제품과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을 글로벌 브랜딩이라고 생각하는 기업이 많다. 그러나 한국과 중국, 일본을 하나의 시장으로 묶을 수 없듯 해외 시장도 각각 다른 소비자와 생활환경을 갖고 있다. 세계적인 기업들도 주요 국가에 맞춘 현지화 전략을 운영한다.
무엇을 동일하게 유지하고 무엇을 현지에 맞게 바꿀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브랜드의 보편성과 각 시장의 개별성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일이 글로벌 브랜딩이다.
'메이드 인 코리아'에서 '메이드 포 유'로 가야 한다는 말도 같은 의미다. 다른 한국 브랜드의 제품만 살펴볼 것이 아니라 현지 소비자가 무엇을 먹고 어떤 순서로 스킨케어를 하며 제품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먼저 봐야 한다.
현지 소비자의 언어와 루틴을 읽은 사례를 소개한다면
한국에서 이니스프리의 성장을 이끈 코드는 자연주의와 친환경, 제주였다. 그러나 중국 소비자에게 자연주의는 일상적인 단어가 아니었고, 친환경은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으로 인식됐다. 제주 역시 당시에는 이미지가 분명하지 않았다. 한국에서 통했던 의미를 중국 소비자가 이해하는 코드로 바꾸고 이를 제품과 매장, 광고, 프로모션에 적용했다. 현지의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은 단어를 번역하는 작업에 그치지 않는다.
중국 시장에서는 메이크업 '튜토리얼'도 중요한 소비코드였다. 많은 소비자가 동영상 플랫폼을 통해 비슷한 메이크업 방법과 순서를 익혔다. AGE20'S는 현지 소비자가 익숙하게 받아들인 튜토리얼에 맞춰 제품과 마케팅을 운영했다.
일본에서 루나의 현지화 컨설팅을 진행할 때는 '매뉴얼의 나라'라는 컬처코드를 확인했다. 일본 브랜드는 오프라인 매장에서 제품의 사용법과 선택 기준을 세세하게 설명한다. 한국 브랜드가 이러한 설명을 불필요하게 여기면 일본 소비자는 제품을 선택하기 어렵다. 가까운 국가라도 스킨케어와 메이크업 루틴에는 차이가 있다.
'하이브리드 K-뷰티'는 무엇인가
K-뷰티는 가성비가 좋은 화장품이라는 인식에서 라이프스타일과 철학을 포함한 소비코드로 발전했다. 글로벌 소비자에게 K-뷰티라고 하면 떠올리는 미학과 제형, 성분, 사용 방식에 대한 기대가 형성됐다. 유럽과 미국, 동남아시아의 현지 기업들은 이러한 소비코드를 자국의 문화와 결합해 새로운 브랜드를 만들고 있다. 겉으로는 K-뷰티와 비슷해 보이지만 현지 소비자에게 익숙한 의미와 철학을 담았다. 이를 '하이브리드 한류' 또는 '하이브리드 K-뷰티'라고 볼 수 있다.
이 현상을 단순한 모방이나 탈취로만 해석하기는 어렵다. 문화는 다른 지역으로 확산돼 현지의 문화적 기반과 만나면 자연스럽게 변형된다. K-팝 스타일의 음악을 해외 작곡가와 가수가 만들 수 있는 것처럼 K-뷰티도 한국 기업만 만들 수 있는 배타적인 영역은 아니다.
현지 브랜드의 공세엔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해외 기업은 K-뷰티의 소비코드를 현지에서 재해석하고 의미와 가치를 부여해 브랜드로 발전시키고 있다. 반면 국내에서는 인기 제품의 성분과 제형을 참고해 일부를 바꾸고 빠르게 출시하는 경쟁이 반복된다. K-뷰티의 확산은 큰 기회지만 그 기회가 한국 기업에만 열려 있지는 않다.
비슷한 제품을 빠르게 내놓는 경쟁에 머물기보다 K-뷰티의 어떤 가치가 소비자의 선택을 이끄는지 먼저 정의해야 한다. 여기에 한국적 고유성과 진출 국가의 문화를 결합해야 한다. 현지 기업이 K-뷰티를 자기 언어로 해석하기 시작한 만큼 국내 브랜드도 K-뷰티의 소비코드를 직접 발전시켜야 한다.
해외 진출을 준비하는 기업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많은 기업이 중국에서 일본으로, 다시 미국과 유럽, 중동으로 관심이 쏠리는 시장을 따라 이동한다. 하지만 브랜드마다 적합한 출발점은 다르다. 어떤 브랜드는 러시아·CIS 국가에서 먼저 기회를 찾을 수 있고, 다른 브랜드는 동남아시아나 유럽의 특정 국가가 맞을 수 있다. 브랜드가 가진 자산과 제품 특성, 현지 소비자의 수요를 기준으로 첫 시장을 선택해야 한다.
유럽이나 동남아시아처럼 넓은 권역을 목표로 삼았다면 구체적인 국가까지 좁혀야 한다. 해당 국가를 선택한 이유와 그 시장에서 확보할 성과를 정한 뒤 다음 진출국까지 연결되는 경로를 설계해야 한다. 여러 시장에 동시에 제품을 보내는 방식이 아니라 첫 시장에서 브랜드의 가능성을 확인하고 경험을 축적하는 과정이 글로벌 전략의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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