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위기 대응 제조망 'RAMP UP' 가동…EU 공급망 재편 본격화
제조사·공급업체·CDMO 생산정보 평시 공유…위기 시 신속 조달·매칭
진흥원 "한국도 유사 제조 네트워크 검토…EU 보건안보 협력 활용해야"
전하연 기자 hayeon@yakup.com 뉴스 뷰 페이지 검색 버튼
입력 2026-07-28 06:00   수정 2026.07.28 06:01
EU는 RAMP UP을 통해 의료 대응수단 제조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기존 EU FAB·HERA Invest와 연계한 보건위기 대응 체계를 마련할 계획이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 ‘글로벌 바이오헬스산업동향’

유럽연합(EU)이 보건위기 발생 시 백신과 치료제 등 의료 대응수단의 생산을 신속히 확대하기 위한 제조 협력망 구축에 나섰다.

원료의약품과 필수의약품의 역외 의존도를 줄이고 EU 역내 제조 역량을 강화하려는 공급망 재편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27일 발간한 ‘글로벌 바이오헬스산업동향’ 제599호에 따르면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는 지난 2일 ‘의료 대응수단 신속 제조 파트너십(Rapid Agile Manufacturing Partnership for Union Protection·RAMP UP)’ 파일럿 프로그램을 공식 출범했다.

RAMP UP은 EU와 유럽경제지역(EEA) 내 제조사와 공급업체, 바이오의약품 위탁개발생산기업(CDMO), 혁신기업이 참여하는 자발적 제조 협력 네트워크다. 보건비상대응청(HERA)이 주도하며, 보건위기 발생 시 의료 대응수단 생산을 즉각 확대할 수 있도록 산업 역량을 평시부터 파악하고 연결하는 것이 핵심이다.

참여 기업들은 평소 생산 역량과 공급망 현황, 운영 절차 등을 HERA와 공유한다. 이를 토대로 위기 시 활용할 수 있는 생산정보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신속 조달 계약과 참여 기업 간 매칭 인센티브를 통해 필요한 제품의 생산 확대를 지원하는 구조다.

적용 대상은 백신과 치료제뿐 아니라 진단키트, 개인보호장비(PPE), 기타 의료기기 등 의료 대응수단 전반을 포괄한다. 다만 파일럿 단계에서는 의약품 분야에 우선 집중하고, 의료기기와 체외진단기기, PPE 등은 운영 결과를 바탕으로 단계적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RAMP UP은 코로나19 대유행 과정에서 드러난 EU 의약품 공급망의 구조적 취약성을 보완하기 위해 마련됐다.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과 인도는 전 세계 원료의약품 생산량의 약 55%를 차지하고 있다. EU 필수의약품 부족 사례의 절반 이상도 제조 문제에서 비롯된 것으로 분석됐다. 코로나19 당시 백신 생산 역량과 원자재 부족, 물류 병목에 일부 국가의 수출 제한까지 겹치면서 EU의 역외 의존 구조가 공중보건 위협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다.

이에 EC는 지난해 7월 의료 대응수단 전략을 채택하고 차세대 독감 백신과 항균제 내성 항생제, 항바이러스제 개발을 비롯해 의료 대응수단 감시체계와 유연한 제조 파트너십 구축을 핵심 과제로 제시했다. RAMP UP은 해당 전략을 실행하기 위한 주요 수단 중 하나다.

기존 EU 생산 지원 체계와도 역할이 구분된다. 2022년 출범한 ‘EU FAB’가 백신과 치료제 분야의 예비 생산 역량을 상시 유지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면, RAMP UP은 적용 범위를 의료기기 등으로 넓히고 기업의 생산정보 공유와 제조사 간 매칭을 기반으로 유연하게 대응하도록 설계됐다.

연구개발 금융 지원 프로그램인 ‘HERA Invest’와도 차이가 있다. HERA Invest가 보건위기 대응 제품을 개발하는 중소기업의 임상시험 비용 등을 지원하는 제도라면, RAMP UP은 개발된 제품을 실제로 생산할 제조 네트워크 구축에 초점을 맞춘다.

진흥원은 RAMP UP이 EU 제약·바이오 제조 생태계와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내다봤다.

EU 역내 제조사와 CDMO의 생산 역량이 제도적으로 연결되면서 위기 상황에서 적합한 생산 파트너를 찾는 시간이 단축되고, 스타트업과 중소 제조기업의 참여 기회도 확대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EU가 필수의약품과 원료의약품의 역내 생산을 강화하면서 역외 기업의 유럽시장 접근 환경에는 변화가 예상된다. 특히 항생제 원료의약품의 상당 부분을 아시아에 의존하는 구조가 점진적으로 재편되면 EU 외부 공급업체와 제조사의 시장 진입 조건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전망이다.

아울러 모듈형 원료의약품 생산시설과 이동식 충전·완성 시스템, 디지털 제조 네트워크 등 신속하게 생산을 확대할 수 있는 기술에 대한 투자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보고서는 이를 글로벌 의료 대응수단 제조 생태계의 구조적 전환을 촉진하는 요인으로 평가했다.

한국은 글로벌 제약사의 공급망 다변화 과정에서 대체 생산 거점으로 주목받을 가능성이 제시됐다. 국내 CDMO 시장이 성장하는 가운데 중국 의존도를 줄이려는 글로벌 제약사들이 한국을 새로운 생산 파트너로 검토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EU의 역내 생산 우선 기조가 강화되면 국내 기업의 유럽시장 접근 환경도 달라질 수 있다. 이에 따라 한국 기업도 단순 위탁생산 역량을 넘어 EU 보건안보 정책과 연계한 협력 전략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분석이다.

진흥원은 한국도 RAMP UP의 설계 원리인 평시 생산 역량 정보 공유와 위기 시 신속 조달 계약, 기업 간 매칭 인센티브를 참고해 국내 보건위기 대응 제조 네트워크 도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또 CDMO 관련 제도 정비와 함께 한국과 EU 간 보건안보 협력 채널을 전략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RAMP UP은 아직 파일럿 단계인 만큼 실효성을 판단하기에는 이르다. 기업 참여가 자발적으로 이뤄져 위기 발생 시 실제 생산 확대를 강제할 법적 장치가 없고, 생산정보 공유와 지식재산권 보호 간 구체적인 기준도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

보고서는 향후 정식 제도로 전환하려면 데이터 공유 범위와 절차를 명확히 하고 참여 기업의 행정 부담을 줄이는 동시에, 기존 유럽의약품청 및 의약품 부족 대응체계와의 업무 중복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짚었다. 특히 이 같은 조건이 충족되지 않을 경우 중소 바이오기업과 CDMO의 실질적인 참여가 제한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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