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약업계 경쟁력 구조 재편을 읽는다'
김용우..1회 '사람이 움직이던 시대..관계가 곧 인프라였던 약업계,그리고 2000년의 기억'
이권구 기자 kwon9@yakup.com 뉴스 뷰 페이지 검색 버튼
입력 2026-06-09 06:00   수정 2026.06.09 07:13

약국 현장을 처음 경험했던 1985년, 조제실에 갖춰진 의약품은 150~250 품목 수준이었다. 약사는 재고 상태를 몸으로 기억했고, 어떤 약이 부족해지는지 감으로 알았다. 도매상에 전화를 걸어 품목명을 불러주는 것만으로 주문이 완결되던 시절이었다.

그 시절 의약품 유통 경쟁력은 결국 사람이었다. 제약사 MR이 직접 약국을 방문하며 신제품 학술·임상 정보를 전달했고, 도매상 영업사원은 재고 흐름과 가격 정보를 현장에서 연결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가 정보 통로였고, 그 통로 자체가 유통 인프라였다. 조제실 취급 품목이 150~250개 수준이었으니 이 구조는 충분히 작동했다.

2000년 밀려온 두 가지 변화

그러나 2000년을 기점으로 약업계에는 두 가지 거대한 변화가 동시에 찾아왔다. 하나는 IT 시대의 본격적인 진입이었고, 다른 하나는 의약분업 시행이었다. 인터넷 벤처 붐이 일던 바로 그 시점에, 약업계는 의약분업이라는 전혀 다른 차원의 구조 변화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당시 업계 전체가 '앞으로 약국은 어떻게 바뀌는가'를 궁금해했다.

 약국가의 궁금증 해소를 위해 약사회는 약업박람회를 개최했고, 필자가 재직하던 동화약품에서도 이 박람회에 참가했다. 

우리 팀은 이미 의약분업을 오래전에 시행한 일본의 약국 현장과 도매상을 직접 방문해 촬영한 동영상을 부스에서 상영했다. 반응은 예상을 넘어섰다. 박람회가 끝난 후 약사회 분회장들 요청으로 일본을 재방문했고, 뒤이어 도매협회 요청으로 주요 도매상 사장들과 함께 또 한 차례 방문이 이뤄졌다.

하드웨어가 아니라 동선의 설계였다

그 방문들에서 필자가 안내역을 맡았다. 버스로 이동할 때마다 미리 안내했다. '다음 코스는 ○○ 도매상입니다. 이 곳의 강점은 자동 피킹 시스템과 피킹 소요시간 최소화입니다. 어떻게 구성돼 있는지 유심히 보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현장에서 실제로 확인한 것은 단순한 기계 설비가 아니었다.

일본 도매상의 진짜 경쟁력은 하드웨어가 아니라 업무구조에 있었다. 출고 빈도가 높은 의약품을 피킹 동선 최단 거리에 배치하고, 직원의 이동 경로를 최소화하며, 처방 패턴 변화에 따라 품목 위치를 주기적으로 재배치하는 구조였다. 즉, 의약품 동선과 사람 동선을 데이터로 통합 설계한 것이었다. 그 바탕에는 수많은 약국의 주문 데이터에서 읽어낸 패턴이 있었다.

환경이 바뀔 때 핵심 질문은 하나다. 공급망의 각 플레이어가 자신의 역할을 어떻게 재구성해야, 고객인 약국이 바뀐 환경에서 고유의역할을 원활히 수행할 수 있는가. 당시 일본 도매상의 답은 명확했다. 다양해진 의약품의 안정적 공급과, 공급 비용 최적화를 위한 데이터 기반 배치 설계였다.

25년이 지난 지금, 같은 질문을 다시 던진다

의약분업 이후 약국 조제실의 취급 품목 수는 폭증했다. 현재, 1~2인 약국 기준으로도 평균 1,000~2,000개 품목에 달한다. 이것은 단순한 업무량 증가가 아니다. 사람의 감각만으로 관리 가능한 한계를 구조적으로 넘어선 것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정보 공백이다. 제약사의 약국 직거래 축소와 접촉 시간 감소는, 단순히 영업사원이 덜 온다는 의미가 아니다. 시장 흐름, 신제품 개발 동향, 축적된 소비자 니즈 변화, 경쟁 제품군 동향 등 약국 경영 판단에 필요한 정보 전체가 차단되는 결과를 낳는다. 소수 인원으로 운영되는 약국은 자칫 시장 동향 정보 사각지대로 전락할 위험에 처한다.

여기서 잠깐, 모두가 놓치기 쉬운 '숨어있는' 구성원을 떠올려보자. 말없이, 그러나 매일 약국과 접촉하고 있는 그 존재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I.T(PC)이고, PC를 통해, 주문을 접수하고, 상품을 공급하는 ‘유통업’이다

최근 일반 유통업 최강자로 떠오른 ‘쿠팡’의 경쟁력을 생각해보자. 그 핵심은 물류기지 전진배치 만이 아니다. 전진배치된 물류기지 안에 '어떤 상품을 어떻게 구성하고, 배치했는가'에 있다. 상품의 흐름과 동선의 설계, 이것이 본질이다. 2000년 일본 도매상 현장에서 확인했던 것도 정확히 같은 원리였다.

그렇다면 의약품 유통에서, 지금 일선 약국이 지역 주민에 대한 건강서비스라는 본연의 사명을 원활히 수행할 수 있도록, 의약품 및 건강상품의 적정 구성과 공간 배치, 주기적 운영 조언, 그리고 실시간 정보 운용까지 설계하고 지원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플레이어는 누구인가?. 

그 답은 이미 우리 곁에 있다. 다음 회에서 그 구조적 실체를 살펴보기로 한다.

필자 김용우(파마링크케이알 대표)

-서울대 약학대학 졸업(약사)
-제약사 마케팅·개발·대관업무 담당
-복지부 DUR(의약품 사용 적합성 평가) 기본설계 참여
-약가 데이터베이스 구축, 의약품 생산실적(5개년판) 발간 
- 정보 인프라 구축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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