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시 '바이오클러스터' 도전…성공 조건 ‘병원·데이터·인재·인센티브’
전국 20여개 바이오클러스터 경쟁 속 ‘특화 전략’ 필수
김경일 파주시장 “기업 집적화와 혁신 생태계 조성” 약속
파주시 바이오클러스터 로드맵 구체화에 속도
권혁진 기자 hjkwon@yakup.com 뉴스 뷰 페이지 검색 버튼
입력 2025-11-18 06:00   수정 2025.11.18 06:01
(왼쪽부터)서울바이오허브 김현우 센터장, 제23대 중앙대학교병원 권정택 병원장, 서울대학교 시스템면역의학연구소 예상규 소장, 온코크로스 김이랑 대표.©약업신문=권혁진 기자

파주시가 ‘파주형 메디컬·바이오클러스터’ 구상에 본격 시동을 걸었다. 17일 여의도 켄싱턴호텔에서 열린 ‘2025 파주 경제자유구역 바이오컨퍼런스’에서는 파주 메디컬·바이오클러스터가 전국 20여개 바이오클러스터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무엇을 갖춰야 하는지 병원장·연구자·AI 신약개발 기업 대표들이 머리를 맞댔다. 

이들은 공통으로 “건물만 지어서는 안 된다"면서 "병원, 데이터, 인재, 인센티브가 함께 설계돼야 한다”라고 입을 모았다.

전국 20여개 바이오클러스터 경쟁…파주가 들고 나와야 할 ‘특화’ 카드

토론을 이끈 서울바이오허브 김현우 센터장은 먼저 국가적인 판부터 짚었다. 그는 “전국에 공식·비공식적으로 18~25개 바이오클러스터가 난립한 상황”이라며 “예전에는 좋은 기업을 서로 빼앗는 경쟁 구도였다면, 올해 국가바이오위원회 이후에는 각 클러스터가 잘할 수 있는 분야를 특화하고, 서로 협업해 국가 차원의 하나의 밸류체인을 만들자는 방향으로 전환됐다”고 설명했다.

파주가 구상 중인 메디컬클러스터에는 500병상급 병원, 암센터, 혁신의료연구센터, 기업 집적지 등이 포함돼 있다. 김 센터장은 “이제는 '우리도 바이오 한다' 수준이 아니라, 파주가 전국 네트워크에서 어떤 역할을 맡을지 명확히 정해야 한다”며 “국립암센터, 서울 주요 상급종합병원, 수도권 기존 클러스터와 어떻게 기능을 분담하고 연계할지까지 동시에 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반복해서 꺼낸 키워드는 차별화된 경쟁력이다. 김 센터장은 “오늘 논의에서도 단순 제조·분양이 아닌, 데이터와 연구역량을 끌어모으는 플랫폼으로서 파주가 어떤 색을 낼지가 중요하다는 공감대가 있었다”고 말했다.

“병원은 수익률 3~5%…지속 가능한 재정·전력·인력 없으면 클러스터도 무너진다”

제23대 중앙대학교병원 권정택 병원장은 파주 메디컬클러스터의 ‘핵심 축’인 병원 문제를 정면으로 꺼냈다. 그는 먼저 “지방자치단체장이 바이오에 투자하겠다고 나선 것 자체가 과학자로서 존경스럽다”며 “바이오는 중요하지만, 돈이 빨리 안 되는 산업이기 때문에, 재선과 정치 논리를 넘는 장기적인 확신이 있어야 한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병원 사업의 냉혹한 현실을 숨기지 않았다. 권 병원장은 “대학병원은 영업이익률이 3~5% 수준”이라며 “광명 지식산업단지 내 700병상 중앙대광명병원 사례를 보면, 도시가 약속한 수천억 지원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으면서 현재 연간 이자만 150억원가량 나가는 상황”이라고 털어놨다.

그는 “파주 500병상 병원도 마찬가지”라며 “병상이 생겼다고 자동으로 환자가 차는 것이 아니다. 수도권은 이미 병상이 과잉이고, 환자의 20% 이상을 지방에서 끌어와야 겨우 유지가 되는 구조라 정부가 병상 허가제를 운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결국, 병원이 클러스터의 앵커 역할을 하려면, 파주시가 재정 구조, 인력 수급, 환자 유입 시나리오까지 포함한 지속 가능한 모델을 제시해야 한다는 의미다.

AI 인프라와 전력 문제도 빠지지 않았다. 권 병원장은 “요즘 병원은 AI 없이는 생존이 어렵다. 영상 판독, 중환자 예측, 응급 대응까지 이미 많은 영역에 AI가 들어와 있다”며 “문제는 이렇게 AI를 쓰려면 엄청난 전력이 필요하다는 점"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상급종합병원급은 전력 인프라 확충에만 100억원 이상을 투입하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면서 "파주 클러스터 설계에도 병원·기업이 동시에 쓸 수 있는 전력·전산 인프라 투자를 충분히 반영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하나의 현실적인 허들은 인력이다. 그는 “500병상 병원이라도 의사 200명, 간호사 수백 명이 필요하다"라며 "의대 정원 증원 갈등, 간호사 이탈 문제로 임상 현장 인력 충원이 점점 어려워지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또한 “기숙사, 의료·연구 인력을 위한 주거시설, 생활 인프라를 함께 계획하지 않으면 병원과 기업 모두 사람을 못 구해 문을 닫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데이터 없는 클러스터는 빈 껍데기…파주형 도시 코호트와 항노화 전략을”

AI 신약개발 기업 온코크로스 김이랑 대표는 하드웨어보다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먼저 질병관리청의 안성·안산 코호트 사례를 언급하며 “수년간 건강 데이터를 모아놓고도 정작 신약개발 기업들이 잘 활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처음부터 의약품 개발을 염두에 둔 설계가 아니라서, 실제로 쓰기에 애매한 데이터가 많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김 대표가 제안한 파주 해법은 '도시 단위 코호트’다. 그는 “파주는 운정신도시를 중심으로 젊은 인구와, 기존 도심의 고령 인구가 함께 있는 도시"라며 "인구 50만명을 넘는 규모를 활용해, 젊은 층부터 노년층까지 장기 추적이 가능한 코호트를 설계하고, 여기에 단백질체, 전사체, 유전체 등 오믹스 데이터를 결합하면 국내에서 보기 드문 데이터 자산을 만들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 데이터는 항노화·건강수명 연장 사업과도 연결될 수 있다. 앞서 권 병원장 역시 “파주는 고령 인구 증가가 예상되는 만큼, 항노화·영양·노인의학 같은 분야를 특화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언급했다. 

김 대표는 “파주 장단콩, 파주 쌀 같은 지역 농산물과 건강 데이터의 연관성을 분석해, 실제로 노화 지표를 낮추는 식단·생활습관 요인을 발굴할 수 있다”며 “이렇게 되면 의료·헬스케어를 넘어 농업, 식품 산업까지 동시에 성장하는 ‘확장형 클러스터’로 진화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서울대학교 시스템면역의학연구소 예상규 소장은 파주만의 ‘관광+헬스케어’ 모델 가능성도 언급했다. 그는 “파주는 통일·DMZ 관광의 관문이 될 도시”라며 “판문점 관람과 연계한 외국인 건강검진, AI 기반 신속 검진 모델 등으로 차별화된 헬스케어 관광 상품을 설계할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2025 파주 경제자유구역 바이오컨퍼런스’ 현장.©약업신문=권혁진 기자

호주 임상시험 ‘페이백’ 모델 벤치마킹…“파주에서 임상하면 남는 장사 되게 해야”

김이랑 대표는 파주가 글로벌 임상시험 허브로 도약하기 위한 정책 방향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그는 “호주는 자국에서 임상시험을 수행하는 기업에 R&D 비용의 40% 안팎을 세액 공제·현금 환급 형태로 돌려준다"면서 "중요한 건 그 돈을 반드시 호주 안에서 다시 써야 한다는 조건”이라고 짚었다. 이어 “이 구조 덕분에 글로벌 제약·바이오 기업이 호주에 CRO, 임상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자연스럽게 일감과 사람이 모이게 된다”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파주 병원에서 임상시험을 하면 임상비의 일정 비율을 세제 혜택이나 현금성 인센티브로 돌려주되, 그 돈은 파주에 입주한 CRO·임상시험수탁기관·데이터 회사에서만 다시 쓰게 하는 구조를 설계할 수 있다”며 “이렇게 해야 기업 입장에서 ‘파주에 가서 임상하는 게 남는 장사’가 되고, 자연스럽게 회사와 일거리가 모인다”고 제안했다.

국제적 피험자 구성도 중요한 과제로 꼽혔다. 그는 “한국 임상시험의 가장 큰 약점 중 하나가 피험자의 대부분이 한국인이라는 점”이라며 “미국 FDA 허가를 목표로 하는 약이라면 백인(코카시안) 데이터를 반드시 확보해야 하는데, 지금은 해외에서 따로 임상을 돌려야 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요즘 K-팝, K-콘텐츠 영향으로 한국에 놀러 오고 싶은 외국인이 많고, 파주는 인천공항에서 차량으로 30분대 거리에 있다”면서 “파주만의 프로그램을 만들어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건강검진을 유치한다면, 한국인·코카시안 데이터를 동시에 확보하는 ‘글로벌 임상 허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GTX·학원·주거까지…연구자와 가족이 살고 싶은 도시가 돼야 기업이 온다”

인재 정착 여건은 클러스터 성공의 또 다른 조건으로 꼽혔다. 김현우 센터장은 “서울바이오허브에 있던 한 기업이 송도로 연구소를 옮기려다, 연구자 상당수가 출퇴근 부담을 이유로 사표를 낸 사례가 있었다”며 “좋은 기업을 유치하는 것 못지않게, 연구자들이 ‘이 도시에서 계속 살겠다’고 느끼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했다.

김이랑 대표 역시 “GTX가 개통되면 삼성역에서 파주 클러스터까지 25분 정도라 출퇴근 여건은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며 “다만 실제로 연구자와 가족이 이주하려면, 주거 인프라와 더불어 학부모 입장에서 가장 민감한 학원·교육환경이 따라와야 한다”고 현실을 짚었다. 그는 “파주가 목표로 하는 100만 인구 도시가 되려면, 젊은 과학자와 직장인이 ‘아이를 키우기 좋은 곳’이라고 느끼게 하는 정책이 병행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의료인력 정주 여건도 마찬가지다. 권정택 병원장은 “간호사·전공의 부족으로 전국 병원이 몸살을 앓는 상황에서, 병원 바로 옆에 기숙사·원룸형 주거시설 등을 함께 확보하지 않으면 의사·간호사가 버틸 수 없다”며 “지식산업센터 일부를 병원·기업 인력 숙소로 활용하는 방안 등, 초기 설계 단계에서부터 인력 정주 전략을 포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보스턴 보고 다짐했다…기업 집적화·혁신 생태계로 답하겠다”

김경일 파주시장은 “오늘 패널 분들이 숙제를 워낙 많이 주셔서 마음이 무겁다”면서도 “그동안 차근차근 준비해 온 방향과 크게 다르지 않아, 오히려 해야 할 일이 더 구체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고 소회를 밝혔다.

김 시장은 “특정 산업의 성공 여부는 기업들의 집적화에 달려 있다”며 “파주 경제자유구역 지정을 추진하고 있으며, 여기에 들어올 바이오 기업을 전폭적으로 지원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특히 그는 “직접 미국 보스턴 바이오클러스터를 방문해, MIT와 하버드가 인재를 길러 내고 이들이 최고 수준의 연구기관에서 성과를 내며, 이를 바탕으로 바이오기업이 혁신을 이끄는 모습을 보고 큰 울림을 받았다”며 “파주에도 그런 혁신 생태계를 만들겠다는 다짐을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2025 파주 경제자유구역 바이오컨퍼런스’ 현장.©약업신문=권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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