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8세기의 대항해시대에 유럽이 다른 대륙에서 가져온 작물과 향신료를 보자. 새로운 항로를 개척한 탐험가들은 신대륙에 들어가 감자, 옥수수, 고추, 토마토, 카카오, 담배, 땅콩, 파프리카를 가져왔다. 아시아에서는 후추, 계피, 정향을, 아프리카에서는 커피, 바나나, 생강을 들여왔다. 당시 탐험가들은 얼마나 엄청난 보물들을 발견한 걸까? 그래서 대항해시대는 ‘발견의 시대’(Age of Discovery)라고도 한다.
21세기는 바이오헬스 분야에서 ‘발견의 시대’가 열릴 것으로 보인다. 벌써 맞춤형 항암제 킴리아(Kymriah), 비만치료제 삭센다(Saxenda), 알츠하이머치매 치료제 레켐비(Leqembi) 같은 혁신 신약들이 잇달아 발굴됐다. 불면증 환자를 위한 디지털치료제 솜리스트(Somryst)도 나왔다. 인공지능(AI)까지 동원하면, 앞으로 얼마나 혁신적인 신약들이 우수수 쏟아져 나올까? 바이오헬스 분야에서 그 동안 깊숙이 잠겨있던 보물섬들이 우후죽순처럼 수평선 위로 떠오를 것이다.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는 것은 항해사(Navigator)의 역할이다. 별의 위치와 나침반으로 안전하고 빠른 항로를 찾아내고, 바람에 따라 배의 방향과 속도를 조절한다.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인도 항로를 개척한 바스코 다 가마, 지구를 한 바퀴 돈 페르디난드 마젤란,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을 발견한 제임스 쿡처럼 대항해시대의 위대한 탐험가는 모두 항해사 출신이다. 심지어 카리브해의 전설적인 해적선장들도 대부분 항해사를 거쳤다.
항해사가 모든 항구를 속속들이 다 꿰고 있을 순 없다. 입항과 정박과 출항을 도와주는 도선사(導船士. Pilot)의 역할이 점점 중요해졌다. 항구는 대개 좁고 얕은데다 곳곳에 암초가 숨어 있다. 또 수시로 바뀌는 바람과 물의 변화를 예측하기 어려워 입항에서 출항에 이르는 과정이 꽤 까다롭다. 19세기 영국의 로버트 피츠로이는 도선사 역량까지 뛰어났던 항해사 출신의 선장이다. 찰스 다윈이 탔던, 바로 그 ‘비글’호의 함장이다.
바이오헬스 분야의 연구원은 21세기의 ‘보물섬’을 찾는 ‘항해사’다. 혁신적인 신약과 디지털치료제와 첨단 의료기기들이 그들의 도전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새로운 ‘항해사’들은 상당히 젊은 편이다. 대항해시대에는 숱한 항해 경험이 성과를 좌우했지만, 지금은 자세한 ‘보물지도’가 성패를 가름한다. 첨단기술에 익숙한 젊은 연구원들이 ‘보물’이 숨어있을 만한 좁은 구석까지, 축척도 높은 상세지도를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바이오헬스 분야의 젊은 ‘항해사’들이 ‘보물지도’ 한 장 달랑 들고 잇달아 야심 찬 항해에 나서고 있다. ‘보물지도’에 혹한 엔젤들이 바이오헬스 ‘탐사선’(스타트업)에 식량과 연료를 대기도 한다. 문제는 ‘항해사’들이 젊기 때문에 선장(CEO)이나 갑판장(COO)이나 기관사(CTO)의 노련한 역할이 약하다는 점이다. 또 임상시험수탁기관(CRO)이나 임상연구간호사(CRC)처럼 전문적인 ‘도선사’ 기능도 보완해야 한다.
21세기의 ‘보물섬’을 먼저 발견하려고 ‘보물지도’에만 혈안이 되어서는 안 된다. 야심 찬 ‘항해사’들이 드림팀을 만들어 ‘탐사선’을 빠르게 띄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선장과 갑판장과 기관사의 역할을 교육하거나 지원해야 한다. 특히 갈수록 규제가 심해지는 ‘도선사’의 전문 역량을 체계적으로 육성해야 한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산실 스탠포드 대학이 운영하는 ‘바이오디자인’(BioDesign) 같은 글로벌 차원의 혁신적인 교육훈련 프로그램이 절실하다.
영국은 강대국 스페인을 약탈하기 위해 후원하던 해적을 해군으로 편입시키면서 세계 최고의 해양대국으로 떠올랐다. 영국이 ‘해가 지지 않는 나라’가 된 것은 로버트 피츠로이 같은 유능한 해군장교를 왕실 차원에서 양성했기 때문이다. 피츠로이는 왕립해군학교에 들어가 기상학과 수로학(水路學)까지 사상 처음 ‘만점’으로 통과한 수재다. 다윈 같은 과학자를 키우고 탐나는 ‘보물’들을 가져오려면, 피츠로이처럼 뛰어난 ‘항해사’와 능숙한 ‘도선사’를 육성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