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 선진국 미국도 어린이 해열제부터 항암제까지 부족
'원료 의약품' 제조시설 저비용 국가로 이전한 탓
최윤수 기자 jjysc0229@yakup.com 뉴스 뷰 페이지 검색 버튼
입력 2023-07-07 06:00   수정 2023.07.07 06:01
의약품 부족 현상은 국내를 넘어 제약 선진국인 미국에서도 겪고 있는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미국 내 의약품 시장을 표현한 이미지. © 프리픽

의약품 부족 사태가  제약 선진국인 미국에서도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정부가 서둘러 행정명령 및 법안 발의를 통해 해결책 모색에 나설만큼 심각한 상태다.

유타대학 의약품 정보 서비스(University of Utah Drug Information Serive) 센터에서 최근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295건이었던 의약품 부족 건수는 올해 1분기 301건으로 최근 5년 내 최고치를 달성했다.  1분기 47건의 의약품이 새롭게 부족 단계에 진입한 것으로 드러났는데, 대안 약물이 많지 않은 항암제 등도 포함돼 있어 환자 치료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고 센터는 경고했다.

미국에선 현재  어린이용 감기약과 같은 일반의약품에서부터 식염수, ADHD 치료제, 항생제, 항암제 및 각종 처방약에 이르기까지 역대 최악의 의약품 부족사태를 겪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 보건 시스템 약사 협회(American Society of Health System Pharmacists) 역시 올해 1월에 대표적인 항암제 ‘시스플라틴’에 대한 부족을 보고했다. 3월에는 시스플라틴의 대체 약품인 카보플라틴 역시 부족 현상을 겪고 있다고 밝혔다. 두 약물을 제조하는 인도 소재의 인타스 파마슈티컬즈(Intas Pharmaceuticals)의 품질 문제로 인한 미국 수출 물량 생산 중단을 주요 원인으로 꼽았다.

이러한 부족 사태에 대해 미국 연방 국토안보위원회는 지난 3월 ‘공급 부족, 의약품 부족으로 인한 보건 및 국가안보 위기’ 보고서를 통해 미국 제약 산업 공급망이 가진 취약성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경고했다. 특정 국가에 대한 의약품 및 원료의 과도한 의존, 적시 제조 관행으로 인한 수요량 예측 시스템 부재 등 복합적인 요인을 문제점으로 들었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이하 KOTRA) 딜라스무역관 이재인 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미국내 의약품 부족 사태에 대한 이유로 제네릭의약품 및 원료 의약품 자급률 저조를 지적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내 대형 제약회사들은 완제품 생산시설 및 각종 약품의 주요 성분이 되는 원료의약품 생산시설 대부분을 비용 절감 차원에서 미국 내가 아닌 중국, 인도와 같은 저비용 국가들로 이전했다.

특히 진입장벽이 낮은 제네릭의약품의 경우 기업 간의 과잉 경쟁으로 지난 10년간 지속적인 가격 하락 흐름이 진행되고 있고, 실제로 미국 전역에서 판매되고 있는 의약품의 약 90%가 제네릭의약품이다. 하지만 정작 제네릭의약품 매출이 전체 의약품 매출 비중의 18%밖에 되지 않는다.

보고서는 “제네릭의약품의 경쟁은 심화되고 있지만, 정작 매출 비중은 작아 생산 기업들이 설비, 연구개발 및 수요 증가 대비 잉여 생산을 위한 추가 투자를 어려워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더 나아가 기업 간의 출혈 경쟁으로 인한 가격 하락이 도리어 미국 보건 안보를 위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조사에 따르면, 2021년 기준 FDA에서 승인한 제네릭 의약품 API 생산 시설의 약 87%, 완제품 생산시설의 약 63%는 미국 외 국가에 위치하고 있다. 그 중 대부분이 인도와 중국에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현재 미국 내에 있는 제네릭의약품 API 생산시설은 단 한 곳에 불과하다. 중국의 경우 자국산 API의 70%를 미국 5대 의약품 수입 국가인 인도에 수출하고 있다.

보고서는 “아웃소싱을 기반으로 해외 의존도가 높을 경우 의약품 수급 구조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제조 및 물류 차질과 같은 예측 불가한 공급망 이슈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며 “국가 간 관계 악화 시 환자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초래할 뿐 아니라 국가적 보건 안보의 절대적 위협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보고서는 또  의약품 부족 사태가 장기화되고 있는 이유로 중요 의약품의 핵심 원료 상당수가 외국에서 제조돼 코로나 팬데믹 같은 갑작스런 수요 증가나 공급망 위기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회복탄력성(Resilience)이 부족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2010년에서 2022년 사이에 FDA 신규 등록된 중국 기반 API 제조업체 수는 188개에서 435개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

또한 정부와 제약회사 간 공급망 관련 데이터 공유 미비 및 국가적 컨트롤이 부족했다고도 지적했다.

보고서는 “미국 제약회사는 API의 출처, API 외 기타 핵심성분이 무엇인지, 또는 얼마나 사용하는지 구체적으로 FDA에 공개할 의무가 없다”며 “정보를 제출 받더라도 데이터화하고 다른 데이터들과 호완될 수 있게 유기적으로 관리되지 않기 때문에 수급 부족 상황에 직면했을 경우 정부기관의 선제 대응이 불가능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완제품에 관해서도 실질적인 수요 대비 병원이나 의료시설에서의 공급 상황에 대한 정보 역시 정부에서 실시간 파악이 불가능해 의약품 부족 현상이 심화되고 난 뒤에야 조취를 취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보고서는 짚었다.

의약품 안전성에 대한 지적도 이어졌다. FDA는 의약품 안전성을 관리하기 위해 해외 소재 등록 제조 시설에 대한 정기 실사를 하고 있지만, 약 2년여간의 코로나 팬데믹으로 실사 대신 제조사가 제출하는 정보에 의존했다. 해외 정기 실사가 재개된 2022년도에도 약 2800개의 해외 소재 제조시설 중 6%의 시설만 실사가 진행된 만큼, 의약품 안전성에 대한 미국 정부의 컨트롤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또한 FDA는 식품, 백신, 의료기기 등 제품에 대한 강제 회수(Recall) 권한을 가지고 있지만, 대부분의 의약품에 대해선 회사 차원에서 자발적으로 회수하도록 권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FDA는 2013년에서 2017년 사이에 부족 현상이 있었던 의약품의 60% 이상이 품질 문제로 인한 생산 중단이 원인라는 점을 감안하면 국가적 컨트롤 부재는 공급 차질을 야기해 잠재적인 부족 현상의 원인이 될 수밖에 없다고 결론낸 바 있다.

미국 정부는 이와 같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여러 차례의 행정명령과 보고서 발간, 법안 발의를 통해 의약품 공급망 강화에 나섰다.

미국 정부는 2021년 6월 발표한 ‘공급망 조사’ 보고서를 통해 미국 내 생산 확대를 강화하기 위해 50~100 품목으로 구성된 필수 의약품 리스트를 작성하게 하고, 해당 의약품들의 자국내 생산 촉진을 위한 인센티브 제공과 같은 세부 정책 과제를 제시했다. 이를 통해 의약품 자급률을 높이고 신뢰를 구축한 동맹국들과의 유대관계를 강화해 안정적인 공급망을 구축하겠다는 계획이다.

블룸버그는 지난 5월 11일자 보도를 통해 “바이든 정부는 의약품 공급을 저해하는 만성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올해 초부터 해결 방안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며 “추후 발표될 해결 방안으로 잠재적인 의약품 부족 예측 도구 개발, 의약품 제조시설 품질 등급제 신설, FDA 불시 점검 확대, 수입 의약품 테스트 강화 등의 내용이 포함될 것”이라고 전한 바 있다.

보고서는 제네릭의약품 및 API는 가격경쟁력이 핵심으로 일부 국가에 국한된 의약품 수급을 즉각적으로 중단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연구원은 “미국 내 제조시설에 대한 지원 정책을 통한 자국 생산 확대 및 동맹국과의 협력을 통한 공급처 다변화 시도는 우리나라 제약기업들에게 있어 기회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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