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임상시험 경쟁력 키우기 위해선 다국가 임상 활성화돼야
'세계 임상시험의 날' 맞아 살펴 본 한국 임상시험의 미래
권혁진 기자 hjkwon@yakup.com 뉴스 뷰 페이지 검색 버튼
입력 2023-05-18 06:00   수정 2023.05.18 06:01
18세기 영국  제임스 린드(James Lind) 군의관은 해병들의 괴혈병을 치료하기 위해 과일을 식단에 추가하는 임상시험을 진행, 비타민C와 괴혈병의 인과관계를 밝혀냈다.  유럽 임상시험 인프라 네트워크 컨소시엄(ECRIN)은 최초의 임상시험을 기념하고자 2005년 5월 20일 ‘세계 임상시험의 날’을 제정했다. 사진은 자몬, 레몬, 오렌지.©픽사베이

국내 제약바이오기업이 글로벌 진출에 사활을 걸고 있으나, 임상시험 분야는 다국가임상 대신 내수 중심의 단일국가 임상시험이 주를 이루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임상시험지원재단(KoNECT)은 오는 20일 세계 임상시험의 날을 기념해 ‘팬데믹 이후 임상시험 산업 심층 분석 보고서’를 최근 발간했다.

재단은 보고서를 통해 “한국은 임상시험 분야의 주요 국가로 자리매김했으나, 글로벌 경쟁을 위한 혁신은 부족하다”면서 “임상시험 국제 표준에 부합할 수 있도록 다국가 임상시험 활성화와 다양한 제도, 규제 개선의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의 임상시험 미래는’

2022년 국내 임상시험의 주요 특징은 △다국가 임상시험 감소 △코로나19 이전으로 복귀 △제약사 임상시험 비중 증가 등으로 나타났다. 특히 국내 임상시험은 단일국가 임상시험 점유율이 높고 다국가 임상시험 점유율은 낮은 특징을 보였다.

한국이 다국가 임상시험이 부족한 이유는 대표적으로  자본의 부족, 까다로운 임상시험 규정, 국제 규정과의 조화 부족, 다양한 인종 및 국적을 가진 인구의 부족 등이 꼽힌다. 특히 다국가 임상시험은 신약개발 후 별도의 가교시험(인종 간 시험) 없이 바로 데이터를 글로벌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어, 신약개발 기업에게는 매우 중요하다.

제약기업 관계자는 17일 "임상시험에는 천문학적인 비용이 소모된다"면서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 규모로는 가능성만 보고 다국가 임상시험을 진행하기엔 위험성이 크다"고 밝혔다.

같은 날 임상시험 업계 관계자는 “국내에서 다국가 임상시험이 활성화되기 위해선 임상시험 인프라 향상과 한국의 임상시험 우수성을 글로벌에 적극적으로 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아시아권 국가인 중국, 일본, 대만은 임상시험 관련 정부기관이 직접 나서 미국 DIA(Drug Information Association) 학회 및 유럽 주요 학회에 부스 설치, 발표 등을 통해 자국 임상시험 인프라의 우수성을 지속해서 알리고 있다.

국내 임상시험 관련 정부기관도 지속해서 국내 임상시험의 인프라의 우수성을 알리고 있으나, 업계에선 혁신적인 임상시험 지원 및 유인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국내 다국가 임상시험 점유율 순위는 2022년 11위를 기록했다. 2011년 19위에서 2020년 10위까지 지속 상승했으나, 최근 3년간 점유율과 순위는 모두 하락했다.

특히 해외 제약바이오사가 원개발사인 임상시험이 338건으로 2021년 대비 15.1% 감소했다. 이 중 다국가 임상시험은 325건으로 2021년 대비 15.6% 줄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임상시험계획 승인 현황(전체) 그래프.©식품의약품안전처, KoNECT재가공

전 세계 기준 국내 임상시험 점유율은 2020~2021년 6위에서 2022년 한 단계 상승한 5위를 기록했다. 대부분 국가의 임상시험 점유율이 하락했지만, 국내 임상시험 점유율은 다소 상승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2022년 임상시험은 711건 승인돼, 2021년 842건 대비 15.6% 감소했다. 이는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인 2019년 714건과 유사한 수준이다.
2022년 전체 임상시험 중 제약바이오사 주도 임상시험은 595건으로 2021년 대비 12.4% 감소했다. 그러나 비중으로는 84.6%를 차지, 2021년 대비 3.1%P 증가했다. 

또 학술연구 등을 목적으로 하는 연구자 임상시험은 총 116건(16.3%)으로 집계돼, 2019년 이후 지속해서 감소했다.

프로토콜 기준 임상시험 글로벌 점유율 순위(2020~2022) 그래프.©미국 NIH, Clinicaltrials.gov, KoNECT재가공

임상시험 업계 관계자는 “의약품 개발에서 임상시험은 제약바이오산업 만큼 중요한 산업”이라며 “국내 임상시험 기술과 프로세스의 우수성이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제약바이오산업과 더불어 임상시험산업이 발전할 수 있도록, 임상시험 분야에 혁신적인 규제 개선과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코로나19 백신 개발 열풍은 잠시…’

2020년 급증했던 코로나19 관련 임상시험은 2022년에는 절반 이하로 감소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코로나19와 신종 감염병에 대비하기 위한 백신개발 임상시험은 다수 이뤄지고 있다. 특히 크게 위축됐던 비 코로나 분야의 임상시험은 2019년 대비 8% 증가했다

재단은 “팬데믹 기간 동안 급증했던 R&D 투자와 임상시험이 팬데믹 이전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재단은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가속화된 임상시험 프로세스는 전 세계적으로 활용되며 자리잡았다”면서 “여러 국가와 기업에선 임상시험 효율성 제고를 위한 운영 전략과 조직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 국립보건연구원(NIH)은 2022년 한 해 동안 임상시험 레지스트리 'Clinicaltrials.gov'에 신규 등록된 기업 주도의 의약품 임상시험 프로토콜은 총 4729건으로 집계됐다고 최근 밝혔다. 이는 2021년 집계된 5564건 대비 15.0% 감소한 수치다. 그러나 2019년과 비교하면 6.6% 증가해 팬데믹 기간(2020~2021년)을 제외하면 2017년 이후 지속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글로벌 임상시험 프로토콜 및 실시기관 현황표.©미국 NIH, Clinicaltrials.gov, KoNECT재가공

특히 팬데믹 기간 동안 한개 프로토콜에 참여하는 임상시험실시기관과 국가 수가 감소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2019년에는 한개 프로토콜에 약 10.18곳의 실시기관이 참여했다. 반면 2022년에는 한개 프로토콜당 약 9.22곳의 실시기관이 참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재단은 “참여자의 감소는 기업의 R&D 투자가 위축된 상황에서 임상시험의 비용과 복잡성을 감소하기 위한 목적”이라며 “임상시험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우수한 임상시험실시기관으로의 집중이 반영된 것”이라고 전했다.

‘임상시험 생산성 향상을 위한 움직임’

코로나19 팬데믹은 임상시험 분야에서 생산성 향상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하는 계기가 됐다. 팬데믹 상황에서 원격임상시험(Remote), 가상임상시험(Virtual), 분산형임상시험(DCT, Decentralized Clinical trials)의 사용이 많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0년에는 새로운 임상시험 설계 및 도구를 활용한 경우는 약 7.5%뿐이었다. 그러나 2022년에는 17.0%로 증가했고 최근 더 빠르게 증가하는 추세다. 특히 임상시험 복잡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진 항암제 분야에도 새로운 임상시험이 많이 활용된 것으로 나타났다.

재단은 “임상시험의 전반적인 과학적 복잡성을 해결하기 위해 규제기관은 절차 및 요구사항 등을 재평가·재설계해 더 효율적인 규제를 마련하고 있다”면서 “2022년 미국 FDA 승인받은 대부분의 신약은 신속심사 절차를 활용했다”고 전했다.

제이앤피메디는 지난해 11월 11일 '새로운 임상시험 패러다임 콘퍼런스'를 개최, DCT의 활용의 우수성을 강조했다. 제이앤피메디에 따르면 DCT는 2022년 약 1300건이 임상시험에 적용돼, 전년 대비 28% 증가했다. ©제이앤피메디 

업계에선 임상시험 생산성 향상을 위한 효율적인 규제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지속해서 나오고 있다. 대표적으로 DCT의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글로벌에선 비대면 디지털 중심의 DCT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반면, 국내에선 논의 상태에 머물러 있다며 임상시험 분야의 규제 혁신을 요구했다.

DCT는 기업 및 병원 중심의 전통적인 프로세스와 방법에서 벗어나 환자 중심 접근 방식을 강조하는 임상시험을 말한다. DCT의 대표적인 강점으로는 신속성, 경제성, 신뢰성이 꼽히고 있다.

실제 미국 모더나(Moderna)가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할 때 DCT를 활용, 한 달 만에 3만여 명에 달하는 인롤먼트(Enrollment, 임상시험 참여 등록)를 구축했다. 일반적으로 100명을 모집하는 데 평균 7개월이 소요된다.

현재 임상시험 글로벌 점유율 상위 국가인 스페인, 독일, 캐나다, 프랑스도 DCT 도입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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