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제약사들의 코로나19 백신이 상용화되기 시작한 가운데, 이에 대한 지적재산권을 둘러싼 각국의 의견 충돌이 일어나고 있다.
최근 모더나, 화이자, 아스트라제네카 등 글로벌 제약사들이 내놓은 코로나19 백신은 12월 미국, 영국 등에서 이미 접종이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백신을 확보하는 일은 개발도상국 등 중저소득 국가 뿐 아니라 우리나라 또한 일찌감치 구매 계약을 맺은 서구권 국가에 비해 순서가 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이들 백신을 글로벌 제약사들의 돈벌이 수단이 아니라 '공공재'로 써야 한다는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 달에 열렸던 G20 정상회의에서는 "코로나19 치료제와 백신이 모든 사람에게 적정 가격에 공평하게 보급되도록 전력을 다할 것이며 광범위한 접종에 따른 면역이 전세계적 공공재"라는 정상선언문이 채택됐다.
또한 인도와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중저소득 국가를 중심으로 코로나19 백신의 특허를 한시적으로 유예하자는 요구가 WTO에 제출되기도 했다.
온라인청원사이트 아바즈가 주도한 이번 청원은 세계무역기구(WTO) 무역관련지식재산권협정(TRIPS) 위원회가 코로나19백신 등 팬데믹 관련 의료제품에 대한 저작권, 의장권, 특허권 및 미공개정보 보호 등 지재권 관련 의무사항을 일시적으로 유예하는 방안에 대한 논의를 앞둔 가운데 제출됐다.
청원서에는 “글로벌 시민으로서 우리는 생명과 직결되는 코로나 백신, 치료제, 의료장비 등의 원활한 보급을 보장하도록 요청한다”며, “현 팬데믹 상황에서는 특허권이 중지되어야 하고, 기술지식이 자유롭고 공개적으로 공유되어야 하며, 폭리를 취하는 일이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촉구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즉, 백신 특허를 유예하면 세계 각국에서 복제 백신을 생산해 저렴한 가격으로 전세계에 공급해 팬데믹 상황을 조기에 끝낼 수 있다는 취지다.
현재 WTO 회원국들은 지난달 인도, 남아프리카공화국이 공동 제출한 TRIPS 유예안을 두고 교착상태에 놓여있는 상황으로, 미국, EU, 스위스, 캐나다, 일본은 유예안에 반대, 케냐, 에스와티니, 모잠비크, 파키스탄, 인도네시아, 이집트 등은 찬성하고 있다.
국내의 경우도 백신 보급에 어려움을 표하고 있는 실정이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 8일 백신 수급 관련 브리핑에서 "백신 공급이 수요에 비해 달리고 많은 국가들이 우선적으로 백신을 구매해야겠다는 요청이 있다 보니 불공정 계약이 생기는 것"이라면서도 "우리도 일정 부분 (불공정 계약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언급했다.
이에 일각에선 감염병 대유행 상황에서 국가 등이 특허권을 예외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코로나19 유행 상황에서 국내 치료제나 백신이 개발됐을 때 특허권과 관계없이 치료제나 백신을 공급할 수 있게 하겠다는 것.
더불어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이같은 내용을 담은 ‘특허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강제실시권이란 국가 또는 제3자가 공익적 목적을 위해 특허권자의 허가 없이 특허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으로 WTO 지적재산권에 관한 협정(TRIPs)에서 이러한 권리를 허용하고 있다.
권 의원은 “코로나19 대유행이 지속되면서 세계 각국은 코로나19 치료제·백신의 신속한 공급을 위해 강제실시권을 감염병 대유행 상황에서 발동할 수 있도록 개정하는 등 선제 대응을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권 의원은 “실제로 지난 3월 독일과 캐나다가 코로나19 펜데믹과 같은 감염병 위급상황에서 의약품 생산, 제조, 사용, 판매 등 권한을 국가가 행사할 수 있도록 관련 법을 개정했으며 브라질, 칠레 등 다수 국가도 관련 법제도 개선을 추진 중”이라고 덧붙였다.
권 의원은 “우리나라 현행법은 강제실시 요건으로 ‘국가 비상사태, 극도의 긴급상황 또는 공공의 이익을 위해 비상업적으로 실시가 필요한 경우’를 규정하고 있다”며 “하지만 현행 요건에서는 감염병 대유행에 대한 사항이 명시돼 있지 않아 코로나19 치료제·백신에 대한 적극적 강제실시가 어려울 수 있는 상황”이라고 제기했다.
이에 권 의원은 개정안을 통해 강제실시 요건에 ‘감염병의 대유행 등 국가 비상사태’를 명시해 감염병 대유행 상황에서 강제실시가 가능하도록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고려대병원 김우주 교수는 "코로나19 백신 특허권 강제실시는 신중히 접근할 주제"라며 "해외 제약사가 가진 백신 특허권을 중단시키고 자체적으로 백신을 생산해 공급해야 할 만한 위기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의약품을 비롯해 다양한 제품의 해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이 앞장서서 글로벌 제약사 특허권 무력화 조치를 취하면 득보다 실이 클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코로나19 백신을 두고 각국의 상반된 입장이 피력되는 가운데, WTO는 해당 안건을 오는 16∼17일 열리는 일반 이사회에서 논의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