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경제위기와 기등재약 목록정비사업
제약업계 ‘로컬’ 아닌 ‘글로벌’ 바라봐야
손정우 기자 son@yakup.com 뉴스 뷰 페이지 검색 버튼
입력 2008-11-11 06:55   수정 2008.11.11 06:44

최근 한국제약협회 등 국내 제약사 쪽에서 ‘경제위기’를 이유로 고지혈증 치료제 기등재약 목록정비 시범사업 유보를 촉구하는 발언이 나와 관심이 모아진다.

기등재약 목록정비 사업의 시행 유보 주장은 계속 나왔던 이야기지만, 그 이유를 ‘경제성평가 연구’가 아닌 ‘경제위기’에서 찾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6일 제약협회 문경태 부회장은 “국가경제가 극도로 어려운 이 시점에서 경제성평가 같은 것은 충분히 검토하고 인프라를 구축하면서 시행시기 문제를 다시 재검토해야 하지 않겠느냐”며, 경제위기에 따른 제약업계 어려움을 목록정비 사업에 반영해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이에 앞서 지난달 기등재약 시범사업에 관한 약제급여평가위원회에서도, 한 평가위원이 “제약업계에 급작스런 충격이 없도록 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언급하는 등 제약업계 ‘위기론’이 제기됐던 것으로 전해졌다.

‘경제위기론’이 기등재약 목록정비 사업으로 대표되는 보건당국의 ‘약가인하’ 정책에 대한 일종의 대항마(對抗馬)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1997년 IMF vs 2008년 금융위기

제약업계의 이 같은 주장은 현 시점에서 매우 ‘적절해’ 보인다. 실제로 지난 1997년 IMF 때, 보건당국은 제약업계에 1천억의 긴급자금을 투입하고, 환차손 보전을 위해 127개 제약사 2,700여 품목의 약가를 평균 12.8% 인상한 바 있기 때문이다.

당시 보건당국은 제약업계를 비롯한 보건의료단체들과 논의를 통해 △보험진료비 개산불제 한시운용 △보험약가등재 월 1회로 단축 △제약업체 자금 결제기간 축소 △KGSP제도 시행 2년간 유예 △관련단체의 비대위 구성 및 운영 등 ‘경제난 극복 특별 조치’를 발표하고, 제약업계를 지원했다.

환율이 요동치고 은행이 대출을 꺼리고 있으며 GMP선진화방안이 추진되는 등 올해 상황이 1997~1998년과 비슷한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기는 하지만, IMF 때와 올해 금융위기 상황은 몇 가지 측면에서 다른 점이 존재한다.

일단 97년 IMF 때는 ‘국가부도’라는 초유의 위기상황이었지만, 현재는 그 정도의 위기상황은 아니라는 점이다. 정부도 우리 경제의 기초체력이 IMF 당시보다 튼튼해졌기 때문에 ‘크게 우려할만한 상황은 아니다’라고 진단하고 있다. 당시와 현재의 상황 인식이 전혀 다른 것이다.

또한 미국발 금융위기에 따른 국내 금융부문 혼란 역시 미국과의 통화 스와프협정 체결, 美 대선 마무리에 따른 불확실성 해소 등으로 안정을 되찾는 분위기이다.

다만 소비심리 위축으로 인한 내수 부진, 수출 등 실물경제 부문에 있어서의 위기가 문제인데, 최근 아파도 병원에 가지 않아 건강보험재정이 흑자로 돌아섰다는 보고가 있기는 하지만, 의약품이 다른 소비재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기흐름의 영향을 덜 받는다는 점에서 실물경제의 위기가 곧 제약업계의 위기로 이어질지는 미지수이다.

오히려 건강보험제도라는 단일보험체제는 정부가 은행에 지급보증을 하듯이 정부가 약값 지불을 보장하고 있는 형태이기 때문에, 제약 산업은 타 산업에 비해 안정적인 이익을 보장받아 왔던 것이 사실이다.

실제 제약사들의 영업이익은 2000년 의약분업 이후 평균적으로 크게 증가했으며, 매출에 대비한 영업이익률 역시 타 산업보다 월등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리베이트’ 차단 등 제약업계 자구노력 미비

IMF 당시, 보건당국은 환차손에 따른 약가인상에 대해 환율이 안정을 찾으면 다시 약가를 인하할 것이란 점을 분명히 했고, 제약사들도 영세성으로 대표되는 국내 제약업계 문제 해결을 위해 M&A 등 구조조정 노력에 동참키로 하는 등 제약 산업 선진화를 위한 자구책 찾기에 열심이었다.

하지만 당시 논의됐던 M&A 등 구조조정 문제는 이미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지 오래며, 그나마 올해는 자구노력을 이야기하는 제약사 조차 찾아보기 힘들다. 단지 ‘어렵다’는 말만 전면에 부각되고 있다.

지금에 있어 자구노력이란 결국 리베이트 문제일 것인데, 제약협회를 중심으로 한 제도적 장치 마련에는 어느 정도 진전이 있어 보이지만, 개별 제약사들의 리베이트 차단 노력은 아직도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오히려 리베이트 문제에 대해 제약업계는 없애도록 노력해야한다는 분위기보다,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는다는 ‘회의론’이 더욱 팽배해 있는 상황이다.

제약 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한 ‘제약산업육성법’이 리베이트 문제로 발목 잡힐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 현실은 국내 제약 산업의 현 주소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사례다.

‘로컬’ 아닌 ‘글로벌’ 필요한 시점

사실 제약 산업이 신성장동력으로 회자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 제약 산업은 보다 큰 밑그림을 그릴 필요가 있다.

물론 적절한 약가를 받아 산업 발전 기반을 조성하는 것도 필요하고, 부당하다면 보건당국의 약가인하에 반대해야 하는 것도 필요하다. 또한 제약사가 개량신약이나 제네릭 개발로 건강보험재정에 기여할 경우, 상응하는 보상을 받는 것도 필요하다.

그러나 최근 한국사회의 변화를 제약업계가 받아들이고, 변화에 따른 변화된 경영정책을 도입하는 것이 더욱 시급해 보인다.

고령화 사회로의 이행 등 우리나라 보건당국이 감내할 수 있는 약제비 수준이 사실상 포화상태에 다다랐고, 이에 따라 해외진출 등을 통한 신규 수입원 확보가 국내 제약업계의 시급한 과제라는 점은 제약업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다.

국내 경제위기가 제약업계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더 이상 ‘어렵다’는 이야기로만 상황을 모면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나갔다고 봐야할 것이다.

결국 제약 산업의 육성과 발전은 약가보전이라는 방어적 측면에서의 접근도 중요하지만, ‘로컬’이 아닌 ‘글로벌’ 도약이라는 공격적 측면에서의 접근도 적극적으로 고려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이유에서, 국내 제약업계는 교육과학기술부, 지식경제부, 보건복지가족부가 매년 보건의료연구개발사업에 수십兆의 예산을 쏟아 붓고 있음에도, 대부분 ‘바이오’라는 이름으로 제약 산업에 직접 투입되고 있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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