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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적으로 진행성 가족성 간내 담즙정체증(PFIC)이 명확한 환자라도 기존에 알려진 유전자 변이가 확인되지 않으면 산정특례 등록과 치료제 지원에서 배제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전문가 가이드라인에서는 새롭게 발견되는 유전자 변이를 고려해 일정 주기로 재검사를 권고하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유전자 검사의 건강보험 적용이 사실상 평생 한 번에 그쳐 진단과 치료 사이에 공백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고홍 세브란스병원 소아소화기영양과 교수는 4일 서울 종로구 교원투어빌딩에서 열린 ‘KMI 희귀난치 희망총서 북토크: PFIC 인사이트’에서 “임상적으로 PFIC라고 진단할 수 있어도 유전자 검사에서 현재 알려진 변이가 확인되지 않으면 산정특례 등록이 불가능한 환자가 있다”고 말했다.
PFIC는 담즙 배출에 관여하는 유전자 이상으로 담즙 정체와 심한 가려움, 성장 지연, 간 손상 등이 발생하는 희귀질환이다. 국내 확진 환자는 약 30명으로 추정된다.
고 교수는 국내 확진 환자 수가 실제 환자 규모보다 적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그는 “양쪽 유전자에서 전형적인 변이가 확인되고 증상도 뚜렷하면 진단이 어렵지 않지만, 유전자 기능이 일부 남아 있거나 아직 알려지지 않은 변이가 있는 환자는 진단되지 않은 채 숨어 있을 수 있다”며 “유전자 검사가 모든 질환을 완벽하게 진단하는 만능 수단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특히 문제는 임상 진단과 제도상 인정 사이의 간극이다.
고 교수에 따르면 PFIC는 임상 양상과 검사 결과를 종합해 의료진이 진단할 수 있다. 그러나 국내 산정특례 등록을 위해서는 유전자 검사상 확진이 요구된다. 이에 따라 의료진이 PFIC라고 판단해도 알려진 유전자 변이가 확인되지 않으면 산정특례 등록이 어렵고, 고가 치료제 사용에도 제약이 발생한다.
그는 “임상적으로 PFIC가 맞지만 유전자 검사에서 확진되지 않아 희귀질환 등록이 안 되는 환자가 있다”며 “환자는 질환으로 계속 고통받고 있지만 국가 지원과 치료제 접근에서 공백이 생긴다”고 지적했다.
전문가 가이드라인에서는 첫 검사에서 원인 유전자가 확인되지 않더라도 새로운 변이가 계속 발견되는 점을 고려해 약 3년마다 유전자 재검사를 권고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관련 유전자 검사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이 평생 한 번으로 제한돼 재검사가 쉽지 않다는 설명이다.
고 교수는 “수백만원이 드는 유전자 검사를 환자가 반복해서 부담하기는 어렵다”며 “새로운 변이가 발견돼도 국내 보험 구조에서는 이를 확인하기 어려운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 현장에서는 치료제가 있음에도 절차적 요건 때문에 사용하지 못하는 사례도 확인됐다.
허문행 서울대학교병원 소화기내과 교수와 고 교수는 임상 양상이 PFIC와 사실상 동일한 형제 환자를 각각 진료하고 있다고 밝혔다. 두 환자는 반복적인 황달과 극심한 소양증을 겪고 있지만 유전자 검사에서 기존에 알려진 변이가 확인되지 않아 산정특례 등록과 치료제 접근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허 교수는 “두 환자 모두 임상적으로는 PFIC가 거의 확실하지만 유전자 검사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며 “온몸을 피가 날 정도로 긁을 만큼 심한 가려움이 있고 수개월마다 황달이 반복되지만, 절차적인 문제로 치료제를 쓰지 못하는 상황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성인 PFIC 환자가 진단되지 않은 채 다른 질환으로 분류돼 있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PFIC는 대부분 소아기에 발현하지만 일부 유전자 변이에서는 단백질 기능이 일부 남아 있어 성인기에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그러나 국내에서 성인 PFIC 진단 사례는 거의 증례보고 수준에 머물러 있다.
허 교수는 “일부 유전자 변이는 기능이 일부 남아 있어 성인기에 발병할 수 있다”며 “간헐적인 황달이나 가려움이 나타나는 비교적 양성 질환으로 분류된 환자 가운데 PFIC 환자가 숨어 있을 가능성이 있지만 성인 진료 현장에서 충분히 인지되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성인 희귀 간질환인 원발성 담즙성 담관염(PBC) 역시 진단 지연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
PBC는 면역세포가 간의 미세 담관을 공격해 담즙 정체와 간 손상을 유발하는 자가면역성 희귀 간질환이다. 피부 발진 없이 전신에 심한 가려움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아 피부과 치료를 반복하다 진단이 늦어지는 환자도 적지 않다.
허 교수는 “밤에 가려움이 심해 잠을 자지 못하고 두피와 전신이 가려운데도 항히스타민제에 반응하지 않는 환자들이 있다”며 “PBC에 대한 인지도가 낮아 피부과나 일차의료기관을 거치면서 진단이 지연되는 사례가 여전히 흔하다”고 말했다.
다만 PBC는 조기에 발견해 고용량 우르소데옥시콜산(UDCA) 치료를 시작하면 상당수 환자가 일반인과 비슷한 간 기능과 기대수명을 유지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허 교수는 “희귀질환이라고 해서 모두 난치병이나 불치병은 아니다”며 “PBC는 빨리 발견해 UDCA 치료를 시작하면 간이식까지 진행하는 환자가 많지 않다”고 강조했다.
UDCA에 반응하지 않는 환자를 위한 2차 치료제 도입 필요성도 언급됐다. 허 교수는 국내 도입 절차가 진행 중인 새로운 치료제가 사용 가능해질 경우 간경변과 간이식, 간암으로 진행하는 환자를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PFIC 치료 환경도 최근 크게 달라졌다.
과거에는 심한 가려움을 완화하거나 간이식을 시행하는 것이 치료의 중심이었다. 그러나 담즙산 재흡수를 억제하는 치료제 빌베이가 국내에서 허가·급여되면서 약물로 증상을 관리하고 환자의 성장과 삶의 질을 개선할 수 있는 치료 선택지가 마련됐다.
고 교수는 “이전에는 간이식이 사실상 유일한 근본 치료였지만 이제는 치료 약제를 통해 환자의 삶과 성장 과정을 바꿀 수 있게 됐다”며 “PFIC가 설명할 수 있고 치료를 계획할 수 있는 질환으로 바뀌었다”고 평가했다.
다만 PFIC는 현재 13개 유형까지 분류될 만큼 유전적 원인과 임상 양상이 다양해 치료 효과와 간이식 이후 경과도 유형별로 다르다는 점을 강조했다.
고 교수는 “간에만 유전자 이상이 나타나는 유형은 이식 후 호전될 수 있지만 장이나 귀 등 다른 장기에도 영향을 미치는 유형은 간이식 이후에도 추가 치료나 수술이 필요할 수 있다”며 “PFIC를 하나의 질환으로 일괄적으로 보지 말고 유형별 특성에 맞춰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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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단체는 희귀 간질환이 의료 영역을 넘어 환자와 가족의 삶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라고 호소했다.
방현진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사무국장은 “희귀질환 진단은 끝이 아니라 환자와 가족이 새로운 삶을 배워가는 출발점”이라며 “진단 이후에는 질환의 진행과 치료뿐 아니라 학업, 취업, 직장생활, 결혼과 출산, 돌봄과 생계 등 생애 전반에 걸친 질문이 시작된다”고 말했다.
연합회가 희귀 간질환 환자 가족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90.1%가 질환으로 인해 일상생활에 영향을 받고 있다고 답했으며, 54.1%는 경제생활에도 영향을 받는다고 응답했다.
방 국장은 “치료비와 생계를 위해 더 많은 일을 해야 하는 가족이 있는 반면 병원 진료와 돌봄을 위해 일을 줄이거나 포기하는 가족도 있다”며 “희귀 간질환은 의료적인 문제뿐 아니라 가족의 삶 전체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소아 환자가 성인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질환을 관리할 수 있도록 돕는 체계도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연합회는 담도폐쇄증 환아를 대상으로 질환 이해, 병원 이용, 약물 관리, 응급상황 대처, 심리·정서 관리, 복지제도 등을 점검하는 소아·성인기 전환 자기관리 도구를 개발해 활용하고 있다.
방 국장은 “질환 관리는 어느 날 갑자기 혼자 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니다”며 “궁극적인 목표는 병을 잘 관리하는 환자로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으로 성장하도록 돕는 것”이라고 말했다.
환자와 가족이 요구하는 정책 과제로는 조기 진단 강화, 치료 접근성 개선, 신약 신속 등재, 희귀 간질환 전문 진료체계 구축, 경제적 지원 확대, 환자와 가족에 대한 심리·돌봄 지원 등이 제시됐다.
김지수 PFIC 환우회 대표도 자신의 아이가 생후 3개월 무렵 입원한 뒤 PFIC 진단을 받고 간이식까지 받은 경험을 소개하며 희귀질환 환자 가족이 겪는 정보 부족과 불안을 전했다.
김 대표는 “진단명을 간절히 기다렸지만 막상 진단을 받고 나니 더 많은 불안과 두려움이 시작됐다”며 “인터넷을 찾아도 관련 정보가 거의 없어 매일 밤 아이가 치료를 받을 수 있을지, 간이식을 피할 수 있을지를 검색해야 했다”고 말했다.
그는 “환우회를 없애는 것이 목표이고, 이 책도 찾는 사람이 없어졌으면 좋겠다”며 “다만 처음 진단을 받고 눈물로 밤을 보내는 가족에게 꼭 필요한 순간 이 책이 닿기를 바란다”고 했다.
정진향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사무총장은 “이번 희망총서는 단순히 질환 정보를 설명하는 책이 아니라 환자와 가족의 경험을 함께 담은 책”이라며 “희귀 간질환 환자와 부모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방 국장은 “희귀질환이 한 사람의 미래를 결정해서는 안 된다”며 “질환의 무게를 온전히 환자와 가족에게 맡기지 말고 의료진과 사회, 정책이 함께 나눠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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