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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 년간 국내 제약산업의 든든한 ‘캐시카우(Cash Cow)’ 역할을 해온 제네릭 중심의 수익 구조에 마침내 마침표가 찍힌다.
26일 보건복지부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이하 건정심)를 열고, 건강보험 재정 건전성 확보와 제약산업의 혁신 생태계 조성을 골자로 하는 ‘약가제도 전면적 개편안’을 최종 의결했다. 그동안 산업계의 거센 반발과 우려 속에서도 복지부가 강한 의지를 보였던 제네릭 약가 대폭 인하와 기 등재 의약품 소급 적용이 원안대로 통과됨에 따라, 국내 제약업계는 생존을 위한 뼈를 깎는 체질 개선을 강요받게 되었다.
이번 개편안을 관통하는 핵심 철학은 명확하다.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되어 온 ‘높은 제네릭 약가’의 거품을 과감히 걷어내 건보 재정 누수를 막고, 이를 통해 확보된 재원을 환자의 생명과 직결되는 ‘혁신 신약’과 안정적 공급이 시급한 ‘필수의약품’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겠다는 ‘선택과 집중’이다.
제네릭 약가 45%로 대폭 인하… 기 등재 약까지 덮친 ‘메가톤급 한파’
제약업계가 가장 큰 충격으로 받아들이는 대목은 단연 ‘약가 산정기준 개편’의 확정이다. 건정심을 통과한 최종안에 따르면, 제네릭 및 특허 만료 오리지널 의약품의 산정률은 기존 53.5% 수준에서 주요국(프랑스, 일본 등)의 약제비 지출구조를 참고해 45%로 대폭 인하된다.
가장 치명적인 부분은 이러한 인하 조치가 신규 등재 약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복지부는 당장 올해 하반기부터 ‘기존에 등재된 의약품(기 등재 약)’까지 최초 제네릭 진입 시점을 기준으로 그룹화하여 개정 산정률을 단계적으로 소급 적용하는 작업에 착수한다. 수년 전부터 시장에 안착해 안정적인 매출을 내던 기존 품목들마저 하루아침에 약가가 깎이게 되는 셈이다.
불필요한 과당 품목 난립을 막기 위한 ‘계단식 약가 인하’ 규제도 대폭 강화되었다. 동일 제제 등재 시 직전 최저가의 85%로 약가가 떨어지는 기준선이 현행 20번째 품목에서 13번째 품목으로 앞당겨졌다. 즉, 시장 진입 속도가 조금만 늦어도 수익성이 급감하게 된다.
이에 대해 제약업계는 즉각 강력한 우려와 반발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특히 기 등재 약에 대한 소급 적용은 헌법상 신뢰보호의 원칙을 훼손하고 기업의 경영 예측 가능성을 무너뜨리는 가혹한 처사라는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제네릭에서 창출된 이익이 곧 신약 개발을 위한 R&D 투자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인데, 당장 현금창출원(캐시카우)의 숨통을 조이면 오히려 산업 전체의 신약 개발 동력이 상실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사실상 위탁생산(CMO)과 영업대행(CSO)에 의존하던 중소형 제약사들은 대규모 구조조정이나 연쇄 도산 위기에 처했다는 불안감이 팽배하다.
혁신신약 패스트트랙 및 ‘준혁신형 제약기업’ 신설로 R&D 유인
혹독한 제네릭 규제 이면에는 혁신을 추구하는 기업과 환자를 위한 파격적인 보상책도 확정되었다. 희귀질환 환자의 적시 치료를 위해 기존 최대 240일이 소요되던 신속 등재 절차(급여적정성 평가 및 약가 협상)를 ‘100일 이내’로 대폭 단축하는 패스트트랙이 본격 가동된다.
신약 가치 평가의 핵심 지표이자 고가 약제의 발목을 잡았던 비용효과성(ICER) 임계값도 상향 조정된다. 생존을 위협하는 질병의 위중도나 치료적 이익에 따라 가중치를 도입해 ICER 값을 탄력적으로 적용함으로써, 다국적 제약사 및 국내 혁신 신약이 한국 시장을 외면하지 않고 조기 진입할 수 있는 문턱을 낮췄다. 환자들의 본인부담금 환급에 따른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가정약가 유연계약제'를 전격 도입하고, 그 대상을 위험분담 환급 종료 신약, 개량신약, 바이오시밀러 등으로 넓혀 글로벌 가격 협상력을 제고할 수 있는 숨통을 트여주었다.
산업 육성 측면에서는 중견 제약사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준혁신형 제약기업’ 제도가 신설된다. 까다로운 혁신형 제약기업(현재 약 48개) 인증을 받지 못했더라도, 매출 1,000억 원 이상/미만을 기준으로 의약품 R&D 투자 비율이 각각 5%, 7% 이상인 견실한 기업을 ‘준혁신형’으로 지정한다. 이들에게는 신규 제네릭 등재 시 1+3년간 50%의 약가 가산을 부여해, 연구개발 투자가 실제 기업의 이익으로 직결되는 징검다리를 제공할 방침이다.
필수의약품 보상 파격 강화 및 사후관리 ‘정례화’로 숨통
아세트아미노펜 등 필수의약품 공급망 불안정 사태를 원천 봉쇄하기 위한 강력한 수급 안정화 대책도 건정심 문턱을 넘었다. 채산성이 낮아 생산을 기피하는 ‘퇴장방지의약품’의 원가보전 상향 기준을 연 청구액 1억 원에서 5억 원으로 현실화하고, 정책가산(최대 10%)을 신설해 원가 상승분을 즉각 반영토록 했다.
특히, 필수의약품 공급 기여도가 높은 19개 내외의 기업을 ‘수급안정 선도기업’으로 별도 지정해, 이들이 신규 등재하는 제네릭에 대해 파격적인 약가 우대(50% 가산, 1+3년) 트랙을 마련했다. 해외 의존도가 높은 원료의약품(API)의 뼈대인 국내 제조 기반을 튼튼히 다지기 위해, 국산 원료를 사용한 국가필수의약품이나 항생제 등에 대해서는 10년 이상(5+5+α년)의 장기적인 약가 우대도 보장된다.
한편, 제약업계와 약국 현장의 고질적인 행정 피로도를 높였던 사후관리 제도도 대대적으로 정비되었다. 사용량-약가 연동제나 급여 범위 확대 등 수시로 발생해 반품 대란을 일으켰던 약가 인하 시기를 내년부터 연 2회(상·하반기)로 정례화한다. 또한, 약국 등 일선 현장이 대비할 수 있도록 약가 인하 시행 전 ‘1개월의 리드타임’을 법적으로 보장하기로 한 점은 업계의 오랜 건의가 반영된 합리적 성과로 평가된다.
행정소송 전운 속 '각자도생'… 포트폴리오 재편 사활
이번 건정심을 통과한 개편안은 단순한 약가 인하 정책을 넘어, 대한민국 제약산업의 패러다임을 제네릭 중심에서 R&D와 혁신 중심으로 완전히 뒤바꾸겠다는 정부의 ‘최후통첩’이다.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업계의 거센 반발과 집단행동도 예고되고 있다. 업계 일각에서는 이번 약가 개편안 통과에 대해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이나 행정소송 등 강경한 법적 대응에 나서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고 있다.
정부는 오는 2분기부터 산업계, 전문가, 환자단체가 참여하는 ‘민관협의체’를 구성해 기 등재 약제 조정 착수 일정 및 개편 산정기준 적용 등 세부 이행방안을 논의할 계획이다. 하지만 시장의 충격을 완화할 수 있는 단계적 연착륙 방안과 유예기간 확보를 두고 정부와 제약업계 간 치열한 샅바싸움이 2라운드로 접어들며 당분간 극심한 진통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온실 속 화초 같던 높은 제네릭 약가 시대는 공식적으로 막을 내렸다. 국내 제약업계는 과거의 성공 공식이었던 제네릭 영업에 더 이상 기대기 어렵게 됐다. 거센 반발 속에서도 결국 기업들은 살아남기 위해 R&D 투자 확대와 오픈 이노베이션을 통한 신약 개발 역량을 입증하거나, 필수의약품 특화 기업으로 확고히 자리매김하는 등 생존을 위한 포트폴리오 재편 속도전에 사활을 걸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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