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귀질환 극복의 날] 희귀질환 환자 10명 중 9명 치료제 있어도 사용 못 하고 있어
척수성 근위축증·시신경 척수염, 급여가 걸림돌…전신농포성건선은 5년 째 희귀질환 인정도 못 받아
최윤수 기자 jjysc0229@yakup.com 뉴스 뷰 페이지 검색 버튼
입력 2023-05-23 06:00   수정 2023.05.23 22:17
희귀질환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나 국가 지원 체계는 많이 개선됐지만, 여전히 사각지대에 놓인 환자들을 위한 과제는 산적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World Rare Disease Day 로고. © rarediseaseday.org

23일은 희귀질환의 날이다. 희귀질환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국가 지원 체계가 많이 개선됐다고는 하나, 여전히 사각지대에 놓인 희귀질환 환자들이 적지 않다.

희귀질환의 날은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청이 2017년  법정 기념일로 지정했다. 희귀질환에 대한 국민 이해를 높이고 희귀질환의 예방·치료 및 관리 의욕을 고취하겠다는 취지다.

윤석열 정부는 ‘희귀질환 치료제 접근성 향상’을 주요 국정과제 중 하나로 선정했다. 이에 최근 보건복지부는 5, 6월 중 암·희귀질환 신약 증재에 소요되는 시간을 60일가량 단축시키는 ‘허가신청-급여평가-약가협상 병행’ 제도를 시범사업 형태로 진행하고, 행정절차 개선의 핵심으로 신약등재 시 경제성평가 면제 대상 약제 확대 방안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여전히 희귀질환 환자들은 진단조차 힘들어 ‘진단 방랑’을 경험하기도 하며, 진단을 받더라도 적절한 치료제가 없어 치료를 못 받기도 한다. 다행히 치료제가 있는 경우에도 보험 급여가 적용되지 않거나 급여 기준에서 탈락해 고가의 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 치료를 포기하기도 한다. 더 나아가 아예 희귀질환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사례도 있다.

급여가 환자들의 발목을 잡는 대표적인 희귀질환으로는 ‘척수성 근위축증(Spinal Muscular Atrophy, SMA)’이 있다. 최근 스핀라자(뉴시너센)를 투여 중인 환자들이 급여 심사에서 줄줄이 탈락하면서 SMA 환자들로 이뤄진 ‘SMA 청년 스핀라자 공동대응 TF’가 꾸려지기도 했다.

이들은 투여 중단 기준에 해당하지 않음에도 탈락 사례가 늘고 있어 치료를 받지 못하는 상황을 지적하며, 지속적으로 급여 기준 완화와 치료 중단자에 대한 재심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실제로 스핀라자 급여 기준 개정은 2021년 말부터 논의되어 왔으나, 전문가 및 환자단체 등의 의견 차이가 좁혀지지 않아 급여 손질이 아직도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다.

SMA 청년 스핀라자 공동대응 TF팀 정혜인 팀장은 “SMA는 진행성 질환으로, 더 이상 병세가 악화하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환자에게는 유의미하다”며 “조건에 부합해 치료를 받던 환자들을 ‘효과가 현 상태 유지에 그친다’는 이유로 급여 심사에서 탈락시켜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스핀라자 급여 기준 손질이 장기화되면서, SMA 치료제 에브리스디(리스디플람)도 연계 검토에 발목이 잡혔다. 에브리스디는 이미 국내 허가를 받은 지 3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급여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로 인해 척추측만증의 악화나 척추의 노화 등으로 인해 척수강 주사 투여가 어려운 환자들에게 에브리스디는 아직도 실질적인 처방이 어려운 상태다.

에브리스디의 경우 약가참조국인 A8 국가(미국,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 스위스, 캐나다, 일본)에서 모두 허가 1년 이내 급여 등재가 완료된 상황이다. 국내에선 유례없는 검토 지연으로 환자들의 선택권이 제한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정 팀장은 “스핀라자에 대한 대상자 확대 및 투약 지속 평가 기준 현실화 등 급여 기준 개선과 주사 방식이 아닌 경구 투여 방식의 에브리스디의 급여 등재도 이뤄져야 한다”고 요구했다.

시신경 척수염(Neuromyelitis Optica Spectrum Disorder, NMOSD) 역시 급여에 발목이 잡힌 희귀질환 중 하나다. 시신경 척수염은 단 한 번의 재발로도 시력 상실이나 전신 마비와 같은 중대한 증상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초기부터 재발 예방과 치료에 최적화된 치료 옵션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솔리리스(에쿨리주맙), 엔스프링(사트랄리주맙), 업리즈나(이네빌리주맙) 등 재발 방지에 최적화된 약제가 국내에 3가지나 도입돼 있지만, 여전히 다른 ‘허가 초과 의약품(Off-Label)’이 주로 사용되고 있다.

솔리리스와 엔스프링은  2021년 도입돼 급여를 신청했지만, 급여 검토가 지연되면서 환자들은 약이 있어도 쓸 수 없는 상황에 놓였다. 이에 환자 단체들 조속한 급여 검토를 요구하고 있는 실정다.

이 외에도 희귀질환에 해당하지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질환도 있다. ‘전신농포성건선’이 그 중 하나다. 해당 질환은 국가관리대상 희귀질환으로 신청한 지 5년이 지났는데도 지정받지 못하고 있다. 환자들은 다른 피부질환과 비교해 중등도가 높은데도 불구하고 국가 지원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전신농포성건선에 대해 희귀질환 지정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3월에 열린 ‘삶을 위협하는 희귀질환의 국가 관리 강화방안 모색 토론회’에서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김진아 사무국장은 “희귀질환 환자 90%는 치료제가 없거나 있어도 엄두를 못 내고 있다”며 “희귀질환 환자와 가족들이 치료제가 없어 희망조차 없는 삶을 살도록 내버려둬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토론회를 주최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강선우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제2차 희귀질환종합관리계획’ 시행 등의 노력에도 아직 어려움을 겪고 있는 희귀질환 환자들이 많이 남아 있다”며 “약자복지, 필수의료 강화에 대한 현 정부의 비전이 실질적인 정책 지원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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