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글
주말에 시간적 여유가 있으면 가끔 서점에 들러 어떠한 도서들이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와 있는지 둘러보곤 한다. 독자들의 관심과 우리시대의 이슈들이 반영된 베스트셀러 목록들을 보고 있자면 어떠한 책들은 몇 주 동안 목록에 이름을 올리는 경우도 있지만 어떠한 책들은 몇 달간 또는 심지어 그 이상 독자들로부터 관심과 사랑을 받는 책들을 볼 수 있다. 그러면 나의 관점을 약국으로 돌려보면 어떨까? 박카스, 아스피린을 필두로 우리에게 낯 읽은 일반의약품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책으로 보자면 베스트셀러 중에서도 베스트셀러인 것이다. 1897년 바이엘의 화학자인 Felix Hoffmann이 최초 합성에 성공, 1899년부터 상품화되어 110년 이상 된 세기의 명약 아스피린은 지금도 전 세계에서 600억 정 이상 판매되고 있다.
이제는 해열, 진통제로서 뿐만 아니라 심혈관 질환 예방제로 의약품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열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조금만 더 주변을 둘러보면 세간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일반약들이 훨씬 많은 게 사실이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의약품에 국한되는 현상만은 아닐 것이다. 어느 분야에서나 그만큼 점점 더 치열한 경쟁 하에서 살아남아야하는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한 예의 일부일 것이다. 일반의약품도 분명히 그 존재의 가치가 뚜렷하며 국민건강 증진과 질병의 예방 및 치료에서 차지하는 역할은 그 누구도 부인하기 어려울 만큼 중대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면 일반약은 우리의 일상에서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지 생각해보자. 우리나라 국민들같이 건강에 대한 관심을 많이 지닌 민족이 얼마나 또 있을까하는 생각이들 정도로 우리 국민들은 대단히 건강 지향적이다. 최근 급격한 고령화로 인구의 연령분포에 커다란 변화가 오면서 건강에 대한 우리국민들의 관심은 가히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가 되었다. 늘 식사 때마다 마주 대하는 찬거리들에 대해서도 무슨 성인병을 예방하며 무슨 병에 좋으며 하는 이야기들을 하곤 한다. 식품 그 자체의 맛을 즐기기보다 마치 약품을 펼쳐놓고 약을 복용하듯 식사를 대하는 모습을 TV 프로그램에서 종종 보곤 한다.
물론 이러한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그만큼 우리 주위의 많은 것들로부터 건강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도움을 얻으려고 하는 모습을 이야기하려는 것일 뿐이다. 사실 많은 경우에 우리가 늘 섭취하는 식품은 우리의 건강을 지키는 훌륭한 수단이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건강식품이나 기능성식품이 예방 차원에서 건강 증진과 삶의 질 향상에 어느 정도 기여를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건강기능성 식품에의 접근성이나 고가격 구조 그리고 실질적인 우리건강에의 기여도를 본다면 아직도 개선이나 발전의 여지가 많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일반의약품은 이에 비해 보다 적극적으로 우리의 건강을 지키고, 유지하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국민들의 교육수준이 높아지고 사회생활이 치열해 지면서 경미한 질병에 대해서는 병의원을 가서 약을 처방받는 번거로움을 피해 스스로 주위의 약국을 통해 쉽게 구입할 수 있는 의약품으로 치료를 시도하는 자가약물요법에 대한 욕구와 수요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 현실에서 일반약이 차지하는 비중은 막중하다고볼 수 있다. 질병의 치료와 예방에 사용되는 일반약 뿐만 아니라 구강용품등과 같은 위생용품에까지도 국민들의 관심이 크게 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따라서 일반의약품이 전체 의약품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클 것으로 예측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일반의약품의 기능과 역할
주로 일반약이라 불리는 일반의약품은 전문의약품에 대비되는 개념으로서, 의사의 처방 없이 환자 자신의 판단만으로도 구매할 수 있는 의약품을 말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일반약은 약국에서만 구매가 가능하다. 현재 국내 일반의약품 시장은 전체 의약품 시장의 약 23%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일반의약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1990년에 약 60%로 평가되었으나 2000년에는 약 40%로 그 규모가 축소되었고 현재까지도 계속 하향추세가 이어져오고 있다. 일반의약품이 경기 변화에 민감하다는 것은 쉽게 예측해 볼 수 있으나 우리 사회가 겪은 IMF 사태나 여러 사회경제적 현실을 고려하더라도 일반약 규모의 축소에 큰 원인이 된 것은 2000년에 실시된 의약분업인 것으로 보여 진다. 의약분업 시행으로 인해 많은 국내 제약사들이 전문의약품의 개발에 연구개발력을 집중하였고 약국에서도 처방전 수용여부에 약국의 사활이 걸리는 현실 때문에 상대적으로 약국도 일반약 판매에는 많은 노력을 들이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더군다나 지금까지의 건강보험제도 하에서는 감기와 같은 경미한 질병에 약을 복용하고자할 때 경우에 따라서 불편하더라도 의원을 통해 약을 처방받아 복용하는 비용이 직접 일반의약품을 구매하여 복용하는 경우와 큰 차이가 없을 뿐만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처방약이 질병의 치료에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기대 등이 가세하여 일반약의 비중 하락에 원인을 제공하기도 하였다.
정부는 일반약 확대 정책을 구체화하고
제약은 소비자 욕구·약국 환경 반영한 제품 개발하며
약사는 판매·상담기술 관련지식 습득에 노력해야 그렇다면 일반의약품의 역할은 점점 미미해질 것인가? 이러한 질문에 대다수의 독자들은 “그렇지 않다”라는 답을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앞에서도 이야기 하였지만 고령화 사회에 깊숙이 진입할수록 노령인구에서 만성질환의 유병률은 절대적으로 늘 수밖에 없으며 이를 치료하는 주요 수단인 전문치료약의 수요뿐만 아니라 만성질환의 예방이나 질병의 진행을 막는데 관여하는 일반약의 수요도 크게 늘 것으로 예측된다. 특히 국민연금의 확대와 같은 노령인구의 안정적인 수입구조는 실제 이러한 수요를 창출하는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항간에 유행하고있는 비타민 씨 메가요법이나 심혈관 질환을 예방하기 위한 저함량 아스피린의 유행은 언제든지 일반약의 수요가 다시 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실제 미국 등지의 약국들을 살펴보면 일반의약품의 종류에 있어 국내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다양한 일반의약품들이 존재하며 질병의 예방 및 치료에 있어 일반의약품이 차지하는 역할은 확고하다. 또한 환자들의 다양한 요구와 투여 편이성을 증대시키기 위한 새로운 제형들이 일반약에 다양하게 적용되어 환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국가로서도 국가가 부담하는 의료비가 치솟는 상황에서 병의원을 통해 전문의약품으로 질병을 치료하는 패러다임은 건강보험재정에 있어 큰 압박이 될 뿐만 아니라 결과적으로 국민들에게 큰 부담이 될 것이다. 이러한 고비용의 구조로 인한 국가부담의 증대와 환자들의 의료비 지출을 줄이기 위해서는 일반의약품의 사용을 확대하는 정책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정책의 일환으로 미국 정부는 오랜 기간 사용하여 안전성이 검증된 전문의약품을 일반의약품으로 다수 전환시켜 놓았다. 때문에 국내에서는 의사의 처방에 의해서만 복용하는 의약품들이 미국의 약국에서는 약사의 도움을 받아 환자들이 직접 구매하여 복용하는 형태로 쓰이고 있다. 혹자는 이러한 적극적인 일반약 확대 정책이 약물의 오남용을 유발할 수 있다는 지적할 수 있겠지만 일반약 사용으로 인한 유익이 오남용의 염려보다 더욱 클 것이라는게 필자의 생각이다. 물론 어떠한 제도나 완벽할 수 없기 때문에 예상되는 문제점들을 철저히 분석한고 대응책을 마련한다면 성공적인 정책 실현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
이러한 배경 하에서 일반약의 사용을 점차 확대하여 보편화시키기 위한 방안들을 생각해 볼 수 있는데 필자는 대학에서 의약품 제제에 관한 교육과 연구를 주업으로 하여왔기 때문에 일선 약국현장에서 느끼는 일반약 활성화에 관한 바램이나 일반약의 사용을 늘리는데 있어서의 고충을 느끼기 어려운게 사실이다. 따라서 본 원고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몇몇 친분이 있는 개국약사들과의 대화를 통해 본 주제와 관련한 보편적 의견들을 참고하였음을 밝혀둔다. 일반약 사용을 지금보다 확대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정책적 변화가 선행되어야한다. 일반약의 사용을 활성화하는데 있어 어느 한 가지 요인을 변화시키는 것만으로는 활성화라는 큰 목표를 달성할 수 없을 것이다. 즉, 정부, 제약회사 그리고 약사 등의 공동의 노력이 필요한 부분이다. 그러나 큰 틀에서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정책적 변화가 가장 파급효과도 크고 가장 효과적으로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경미한 질병에 대해서는 보험급여를 점차적으로 제외하여 환자들로 하여금 일반의약품의 사용을 유도하고 이를 통해 보험재정의 건전성도 확보여야 할 것이다.
일반약 활성화를 위한 제언
환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예를 들어, 감기 환자의 경우 의원에서 처방을 받아 의약품을 구매하는 경우보다 일반의약품이 오히려 비용 면에서 더 부담이 될 수도 있다고 본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다양한 포장과 함량의 제품을 개발하여 환자들이 비슷한 정도의 부담으로 일반약을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제약회사로서는 이러한 요구가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의약분업 시행 이래 국내제약사들은 전문의약품 개발에 많은 노력을 들인 것이 사실이지만 전문의약품 시장도 치열한 경쟁의 장으로 바뀐지 오래고 그 가운데에서 국내 제약사들은 매우 힘든 경쟁을 하고 있다. 국내 제약사들의 제네릭 의약품과 개량신약의 개발 능력은 다국적 외자사의 그것과 비교할 때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본다. 일반의약품으로 경쟁의 범위를 좁혀본다면 필자가 볼 때 국내 일반의약품 시장의 절대 강자는 국내제약사들로 생각한다. 즉, 다국적 선진 제약사에 비해 국내 제약사들이 일반의약품 제품의 기획, 개발, 마켓팅 능력에 있어 매우 우월하다고 판단된다. 따라서, 국내의 일반의약품 시장을 집중 공략함으로써 독창성 있는 거대품목을 만들어내는 것도 안정적 수익 확보를 위한 효과적인 전략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서두에서 베스트셀러 이야기를 했지만 국내 일반의약품들 중에서 블록버스터로 평가받는 품목은 출시된 지 오래된 몇몇 장수 품목들을 제외하고는 찾아보기 힘든게 현실이고 이러한 부분 때문에 국내 제약사의 시장 확대 노력이 더욱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일반약 사용 확대에 큰 장애들 중의 하나는 조제 위주의 약국환경이다. 오래전부터 환자들이 꾸준히 사용하던 의약품이 아닌 이상 일반의약품의 수요 확대를 위해서는 약사의 지속적인 판매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현실은 약국 내 약사인력 부족으로 일반약 확대를 위한 시간과 노력을 확보하기가 매우 힘들다. 이와 더불어 낮은 수익구조와 재고 부담 등으로 인해 일반의약품 취급이 매우 위축되어 있다. 또한, 상업지역, 시장, 주거지역 등 다양한 약국의 위치나 환경 그리고 환자나 소비자의 소득 수준별로 구매를 유도할 제품의 개발 필요성은 이미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제품의 특성에 걸 맞는 제품소개 자료와 제품정보를 단시간 내에 효율적으로 전달하는 수단도 제품 판매 증대에 필수적이지만 이점도 매우 미흡하다고 생각한다. 소비자 자체도 일반약 활성화에 걸림돌이 된다. 필자도 집에서 종합비타민제를 자주 복용하고 있으나 제시된 용법을 지키면서 복용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필자와 같은 많은 소비자나 환자들이 일반의약품에 대한 복약순응도가 낮고 정해진 용법과 용량대로 복용을 하다라도 뚜렷한 효과를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일반의약품, 특히, 비타민 또는 영양제들의 경우 재구매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일반약 확대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가는게 필요하다. 정부는 일반약 확대 의지를 정책으로 구체화 시키고 각 제약사는 소비자의 다양한 요구와 현재의 약국 환경을 반영한 제품을 개발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본다. 특히, 일반의약품으로서 확실한 효능, 효과의 수반 없이는 제품의 수명이 길지 않을 것이 확실하다. 약사들도 각 제품의 성격을 반영하는 판매, 상담 기술이 필요하며 지속적으로 관련 지식을 습득하여 약국이 아니면 제공 받을 수 없는 전문적인 의약품의 정보를 효과적으로 제공하여야 한다. 우리나라의 환자들 다수는 처방전에 의해 약을 투여 받을 경우 처방을 하는 의사에게 처방된 의약품의 정보를 얻기보다 약사들로부터 그 정보를 얻는다. 따라서 전문치료약 정보 제공 시 약사는 환자들의 특성에 맞는 일반의약품에 대해 접근성을 높이는 기회로도 활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