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100세 시대의 고찰: 소명의식과 은퇴의 재구성
편집부 기자 news@yakup.co.kr 뉴스 뷰 페이지 검색 버튼
입력    수정 최종수정 2021-07-01 12:03
소명(召命, calling)이라는 말은 초월적 끌림을 기반으로 하며, 자신이 맡은 역할에 대한 목적과 의미를 행동으로 실천하고 새롭게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타인을 돕고자 하는 가치와 목표를 중요한 동기로 삼는 것이다. 이는 원래 종교적 용어로 사용되어왔는데 신으로부터 도덕적,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일을 하라고 부름을 받았다(called)고 해석되는 특별한 용어였다. 

하지만 최근에는 종교인이 아니라도 깊은 성찰을 통해 내적 요구나 음성(inner voice)를 따르는 것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즉, 누구나 어떤 일을 하든 ‘평범한 일상과 일터에서 자신이 지속적으로 추구해나가는 것’으로 확대 해석되어 이제는 심리학과 경영학에서도 주목하는 연구주제이다. 

자신의 일에 소명의식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어떤 차이가 있으며, 소명의식을 가지게 됨으로써 누릴 수 있는 장점과 고령화 시대에 이것이 왜 중요한지 살펴보자

소명의식의 요인

전문가에 따르면, 소명의식을 이해하려면 다음과 같은 몇가지 질문에 진지하게 생각하여 답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먼저, (1)초월적 부름, 초월적 인도력이다. 이것은 무엇 혹은 어떤 일을 어떻게 해야할 지 알려주는 내적인 지식과 성찰이요 내면의 소리와 관련된 것이다. 다음은 (2)목적, 의미, 가치추구이다. 이것은 일을 통해 삶의 의미와 목적을 실현하는 것이다. 즉 자신의 일을 얼마나 중히 여기는가, 삶에서 얼마나 큰 부분을 차지하는가 이다. 

이어서 (3)일을 자신과 동일시 하는 것과 개인과 환경에 대한 적합도이다. 이것은 일과 자신을 얼마나 가깝게 여기며, 또 일을 통해 자신의 잠재력을 발휘하고 성장시킬 수 있는가 이다. 끝으로 (4)친사회적 지향성과 친사회적 인도인데, 이것은 자신의 일이 타인에게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인지하고 공공선에 기여하여는 의지를 갖는 것이다.

똑같은 일을 하더라도 각 사람의 자신의 일을 바라보는 시선이 다를 수 있다. 혹자는 돈을 버는것이 중요하고(Job), 어떤 이는 남들과의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중요하지만(Career), 어떤 이에게는 일의 의미를 추구하고 이타심을 발휘하는 것(Vocation)이 중요하다.

낯설지만 중요한 소명의식

약 6개월전에 ‘100세 시대의 고찰’이란 부제로 연재 글을 시작하면서 이상적인 노화의 조건을 언급하였다. 장수시대에는 개인에게 건강과 재정도 중요하고, 할 일과 대인관계와 사회참여도 중요하지만, 실은 이 모든 것은 개인의 생명이 존속할 때 의미가 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자신의 생명의 존속기한을 정확히 예측하지 못한다. 그러기에 하루하루의 일상이 모여서 곧 나의 삶이 완성되는 것인데 단지 통계학적으로 국가의 평균수명이 연장되었다고 그것이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진정 우리는 하루하루를 복되고 값지게 살기 위해 올바른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인가?

소명의식은 전문직, 사무직, 일용직을 포함한 직장인은 물론 가정주부, 학생에게도 존재한다. 아직 사회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지 않은 학생 신분일 지라도 장차 가지게 될 직업에 대해 일찌감치 소명의식을 가지고 준비하는 이들이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다는 뜻이다. 소명의식을 가진 학생이 학업에 대한 몰입도와 진로선택에 대한 효능감과 성숙도가 높게 나타났으며 직장인의 경우는 업무에 대한 몰입도가 높고 직무에서 받는 스트레스는 상대적으로 낮았다.

소명의식의 개인차이 

연구에 따르면, 국내 기업 직장인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서 같은 조직, 같은 업무 안에서도 구성원간 소명의식의 차이가 뚜렷했다. 소명의식이 높은 이는 어디서든지 업무를 대하는 태도가 달랐으며 이는 외국에서 진행된 연구결과와 비슷했다. 즉, 소명의식은 동서와 직업을 막론하고 대체로 공통적인 결과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일의 의미와 가치는 일을 맡은 사람이 스스로 부여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자신의 일을 자신의 삶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하는 것은 본인의 선택이기에 소명의식을 반드시 가져야 한다고 강요할 수는 없다. 하지만 소명의식을 보유했을 때 누릴 장점을 이해하고 자신을 위해 보다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으면 그것이 유익하지 않을까?

필자가 2019년에 이화여대 평생교육원에서 노인학 강좌를 진행했다. 몇주간의 강좌가 끝날 무렵, 75세가 넘은 수강생 한 분이 다가와 지갑 속에 늘 넣고 다니는 자신의 성취내역을 보여주었다(그림 1). 짧지만 인상적이었던 그분과의 대화 속에서 자기 인생에 대한 소명의식, 감사, 그리고 자신의 삶을 잘 마감하고자 애쓰는 의욕과 신중함을 자연스레 느낄 수 있었다.

               그림1. 나의 삶의 발자취 (출처: 2019년도 이화여대 평생교육원 70대 수강생) 

은퇴와 소명의식에 대한 역사적 문화적 영향

민수기 8장 23~25절을 제외하면 성경 속에도 인간의 은퇴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다고 한다. 그래서 유럽과 북미의 기독교 문화권에서는 나이가 들어도 계속 일하는 문화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가 은퇴라는 개념이 19C말~20C초에 등장했다고 한다. 이때는 연금도 없었기에 대략 사망하기 3년 전까지 일하는 것이 관례였다. 공식적으로 은퇴제도를 만든 최초의 국가는 1889년의 독일이었다. 그러나 이같은 사회적 변화도 잠시, 인류는 놀랍게 연장된 장수시대에 집입하면서 지난 100여년 간 지속된 ‘은퇴’에 대한 개념을 재정립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100년만의 새로운 혁신, 은퇴를 재구성하기

은퇴는 자발적이든 아니든 하나의 유익한 충격이며, 공식적 은퇴 이후는 노인이 성장하는 중요한 시간이 될 수 있다. 한 사람의 재능과 기질, 삶의 경험에 좀 더 적합한 일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줄 수 있으며, 한 사람의 소명을 재평가하는 데 중요한 시간이 될 수 있고, 우리가 변화를 꾀하는 시기가 될 수 있다. 은퇴 후에도 할 일(노동)이 있다. 그래서 ‘노동’이란, 분명한 목표의식을 가지고 에너지를 확장하는 일이라고 정의하기도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서구식 은퇴와 연금제도 모델을 막 도입한 우리나라는 제도를 시작한지 얼마 안되어 다시 서구의 재구성된 은퇴모델을 고려하게 된 것이다(그림2). 
        그림2. 인생 3막, 은퇴의 재구성 (출처: 나이듦의 신학, 폴 스티븐스 저, 2018년) 

우리가 죽기 전까지 일해야 하는 이유로 다음과 같은 다양한 면이 강조되기도 한다. (1)우리는 일을 하도록 만들어졌다. (2)노동은 세상에 유익하다. (3)노동은 자신에게 유익하다. (4)노동은 이웃을 사랑하는 실제적 방법이다. (5)노동은 영적성장의 중요한 바탕이 된다. (6)노동은 다가올 삶을 준비하게 한다. 즉, 일하는데 발휘되는 재능과, 실제로 일하는 방식, 누구를 위해 일하는가의 문제는 상상할 수 있는 최고의 노동조건을 갖춘 최상의 일터를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는 주장도 있다.
우리나라에는 아직까지 소명의식과 노동, 은퇴, 여가 등에 대한 노인학적 연구가 보편적이지 않은 상황인데 급격한 과학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고령화 시대가 밀려왔다. 이런 변화상을 차분히 준비했던 이에게는 대처할 여유와 적응력이 있겠지만, 시류에 맡기 듯 남이 하니 나도 한다는 식으로 노후를 준비하는 것은 아름답고 보람된 삶의 마감을 행하기에 너무 단순한 대응이 아닌가 싶다.

인생후반기의 용기와 지혜

어떤 은퇴자의 고백에 의하면, “이제 남아있는 단 하나의 계획은 ‘잘 죽는 법’을 배우고 싶다”라고한다. 노년기에 자신의 소명을 찾는 일은 쉬운 것은 아니다. 그래서 (1)매 순간 준비되어 있어야 하며, (2)소명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며, (3)소명을 지키기 위한 훈련도 필요하다. 또한, 우리 인생은 우상의 유혹을 받아 쉽게 어그러질 수 있다. 인생의 1~2삼분기에는 돈에 눈이 먼 이득, 사람의 인정을 받고자 하는 영광, 성공으로 쾌락을 얻는 즉각적 황홀감의 우상에 빠지기 쉽다. 그리고 은퇴한 3분기(노년기)에는 자기만족, 쾌락, 의미추구라는 우상에 쉽게 빠지기 쉽다.

서구문화권에서는 나이 듦의 악덕으로 다음과 같은 7가지 치명적 죄악을 꼽는다. (1)교만(Superbia)이란 자신을 최고로 여기는 것이다. (2)시기(Invidia)란 남이 잘되는 것을 바라보며 고통을 느끼는 것이다. (3)분노(Ira)란 통제하려는 불타는 욕망을 말한다. (4)태만(Acedia)이란 일 자체를 생각하기 싫은 것이다. (5)탐욕(Avaritia)이란 더 많은 것을 바라는 욕구이다. (6)탐식(Gula)이란 살기 위해 먹는 것이 아닌 먹기 위해 사는 것이다. (7)음욕(Luxuria)이란 타인을 소유하고자 하는 내적갈망이다. 그래서 미덕을 지키기 위해 오래 인내했다는 사실이 권위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때론 성공하지 못해도 미덕을 위해 고군분투한 사실이 권위의 진정한 근거가 되는 것이 아름답고 정당하다. 

위대한 인물의 공통점으로 다음과 같은 것이 꼽힌다. (1)노년에 자기의 소명을 버리지 않았다(소명으로부터 은퇴하지 않음), (2)노년에 개인적 결점이 해결되지 않고 오히려 부풀려 졌다(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치유가 일어났음), (3)노년에도 맡은 사역에 적극적이었다(다음세대를 위해 투자, 소망을 품은 채 죽음 이후 세계를 바라봄), (4)노년에도 빛이 청정한 상태였다(절대자와 관계에서 늘 열려있고 새로운 계시를 받음). 

나이듦의 미덕

나이 들며 갖추는 아름다운 특성으로는, 절제, 겸손, 인내, 단순함, 믿음(절대자를 향한 열렬한 반응), 소망(마지막 때를 향해 나아가는 사실을 믿음; 다음세대에 대한 투자; 평안히 죽음을 맞이함; 살면서 어려움을 겪더라도 더 큰 삶을 준비함), 그리고 사랑(사람, 장소, 공동체를 진심으로 돌봄) 등이 거론된다. 

인간의 미덕은 함양될 수 있다고 한다. 진정한 교육이란 무엇을 원하든지 배우는 것이다. 성품은 습관에 영향을 주고, 습관은 선택에 의해 형성된다. 그래서 도덕적 훈련이 미덕의 함양에 도움이 된다. 또한 미덕은 개인 스스로 쌓아 올리는 것만으로 불가능하며 절대자의 선물임을 인정한다. 도덕적 삶은 단순히 인간적 성취가 아닌 가장 중요한 것에 반응하며 늘 절대자 중심으로 사는 것이다.

소명의식은 (1)자신의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자심의 진실된 욕구와 끌림을 이해하며, (2) 일상의 일을 통해 자신에게 중요한 의미와 목적을 이해하며, (3) 자신의 주변에 선하고 긍정적인 영향력을 끼치는 태도를 견지하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소명의식을 품고 일할 때 가장 큰 혜택을 입는 사람은 그 당사자라고 한다. 100세 시대, 자기가 좋아하는 일, 잘할 수 있는 일, 의미 있는 일을 찾아서 정진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필자소개>
방준석 교수(숙대약대)는 우리나라와 미국의 약국, 병원, 제약회사, 연구소 등에서 활동한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약학대학의 임상약학 교수이자, 경영전문대학원의 헬스케어MBA 주임교수로서 활동하고 있다. 약사이자 약학자로서 약과 약사, 약국과 약업은 물론, 노인약료와 스마트헬스케어 분야의 혁신과 발전방안을 연구하여 사회의 각계 각층과 교류하며 실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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