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재훈 약사약 부작용 중에 잘 모르고 지나가는 것 중 하나가 구강 건조 증상이다. 약은 구강 건조증을 일으킬 수 있는 가장 흔한 원인 중 하나다. 구강 건조증은 65세 이상 인구의 30%에서 나타날 정도로 흔한데, 만성질환이나 약물이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다. 타액 분비를 감소시키거나 타액의 조성을 변화시키는 약의 가짓수는 500종이 넘는다.
우리가 음식을 먹을 때 맛을 감지하려면 먼저 음식 속 맛 성분이 입 안에서 침에 녹아야 한다. 그래야 혀의 미뢰에 있는 감각세포가 맛을 감지할 수 있다. 침이 말라버리면 음식 맛을 느끼기 어려운 이유다.
그밖에도 침이 하는 일은 많다. 구강조직의 기능을 정상적으로 유지하는데 반드시 필요하며, 입속에서 칸디다 감염과 같은 질병 발생을 억제하는 데도 중요하다. 침으로 인한 자정작용이 부족하면 충치가 발생하기도 쉽다.
구강 건조증을 그대로 방치하면 구강 건강에 문제가 생긴다. 입안이 말라 구강 점막이 쩍쩍 갈라지거나 내려앉고 입술이 입술 껍질이 벗겨지고 입꼬리가 갈라져 통증을 유발하기도 한다. 심지어 말하는 기능에도 영향을 주어 일상생활을 어렵게 만들 수 있다.
구강 점막 감염 및 치주염 발생도 증가할 뿐 아니라 입안에 곰팡이가 발생할 수 있다. 혀 밑에서 녹여야 하는 니트로글리세린 설하정과 같은 약의 효과를 떨어뜨릴 수도 있다.
일상에서 약 때문에 구강 건조증 부작용을 경험하는 가장 흔한 경우는 감기약을 먹고 난 뒤다. 감기약에는 대개 1세대 항히스타민제가 들어있는데, 이 약 성분에는 침의 분비를 줄이는 항콜린작용이라는 부작용이 있다. 마찬가지로, 우울증 치료제나 요실금 증상 완화를 위해 쓰이는 약들에도 항콜린부작용이 있어서 구강건조증이 나타난다.
그밖에도 상당히 많은 종류의 약이 구강 건조증을 일으킬 수 있다. 조현병치료약, 비충혈완화제, 요로 진경제, 벤조다이아제핀, 항구토제, 아편계 진통제, 교감신경 항진제 등이 구강 건조증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약으로 인한 구강 건조증은 다행히 영구적인 것이 아니며 약을 복용 중에만 나타나는 부작용이다. 약을 끊으면 사라진다. 하지만 원인이 약으로 짐작된다고 하여 복용 중인 약을 스스로 끊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 약물 치료의 중단으로 인한 위험이 더 크기 때문이다.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약을 계속 복용해야 한다면 침샘을 자극해주는 게 도움이 된다. 가벼운 경우는 입안을 소량의 물로 자주 적셔주거나, 무설탕 껌이나 캔디를 사용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침의 분비에 문제가 있어서 입안이 건조한 것이므로 한 번에 물을 많이 마시는 건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약으로 인한 구강 건조 증상이 있을 때, 껌이나 캔디를 써서 부작용을 줄이려면 무설탕 제품을 사용하는 게 좋다. 설탕은 입속의 세균들도 먹이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중에 판매되는 무설탕 캔디나 검에는 자일리톨이나 솔비톨같은 당알코올이라는 성분이 들어있는데, 이들 감미료는 단맛이 나면서도 입속의 미생물은 먹이로 쓸 수 없으므로 입안에 침이 돌도록 자극하면서도 충치를 일으키지 않는다.
자일리톨 같은 경우는 충치 예방 효과도 있다. 그러나 이들 당알코올 성분은 장내 미생물에 의해 발효되기 때문에 너무 많이 먹으면 설사나 복통의 원인이 될 수 있으니 주의가 필요하다.
구강 건조증이 심한 경우, 필로카핀 성분의 약을 복용하면 침의 분비를 자극해서 도움이 될 수 있고, 입안에 인공타액을 수시로 뿌려주는 것도 입안 점막에 수분을 유지시켜 주고 증상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런저런 방법을 다 써도 약으로 인한 구강 건조증의 괴로움을 참기 어려울 경우에는 원인이 되는 약을 다른 것으로 바꿔야 할 수도 있다. 이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으면 약사에게 물어보면 된다. (이런 질문에 친절하게 잘 대답해주는 약국이 좋은 약국이다.)
하지만 모든 구강 건조증이 약으로 인한 것은 아니며, 만성질환이나 다른 원인으로 입 마름이 계속되는 것일 수도 있으므로 우선 가까운 병의원에서 상담을 받아볼 필요가 있다. 피할 수 없는 약 부작용일지라도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삶의 질에 큰 차이가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