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14일 오전, 삼성서울병원 암병원 1층 로비에 들어섰을때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건너편 창밖으로 보이는 푸른 숲이었다. 녹음이 우거진 숲이 바라다 보이는 창아래 놓여 있는 의자에는 환자와 보호자들이 앉아서 쉬고 있었다. 좁고 바글바글했던 서울대 암병원보다 널찍해서 사람이 많았어도 덜 붐벼 보였다.
암환자 초진은 특별한 과정을 거쳐야 했다. 먼저 초진안내 데스크에서 자원봉사자를 만나서 접수해야 했다. 자원봉사자는 명예교수 뱃지를 달고 있는 할아버지였는데 웃으면서 따뜻하게 맞아주셨다. 우리에게서 받은 서울대 병원의 영상기록을 병원 시스템에 등록한 다음, 자원봉사자 할아버지는 어머니의 몸무게, 키, 혈압을 기계로 재서 기록하고 췌담도암 센터로 친절하게 안내해 주셨다.
로비가 비교적 여유로왔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췌담도암 센터는 환자들로 매우 붐볐다. 대기실 의자가 충분치 않아서 많은 사람들이 서서 기다려야만 했을 정도였다. 어머니 담당의사의 진료실 앞에는 당일 진료받을 환자들 리스트가 고지되어 있어서 볼 수 있었는데 난 그 엄청난 숫자에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오전 8시 40분부터 11시 10분까지 2시간 30분 동안의 공식적인 진료 시간동안 무려 50명의 환자가 예약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12시까지 진료한다고 가정한다하더라고 환자 1인당 4분이 채 안되는 진료 시간이다. 서울대 병원에서도 이와 비슷한 평균 진료 시간이었던 것으로 보아 거의 모든 대형병원들이 중증 환자 한 명 보는데 3-4분 정도만 할당하나 보다.
1주일전 서울삼성병원에 예약전화를 걸었을 때 바로 다음 날 진료를 받을 수 있다고 해서 난 꽤 의아해 했었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미국에서는 진료를 그렇게 빨리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내 클리닉조차도 의사로부터 진료의뢰를 받은 다음, 환자를 보기까지 보통 2-4주는 걸리는데 이는 다른 클리닉보다 좀 빠른 편에 속할 정도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다음날 진료를 받을 수 있다니! 서울대 병원에서 받을 자료 준비로 인해 진료예약을 1주일 미루어야 했지만 난 이 빠른 속도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어서 오세요.”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담당의사는 우리를 따뜻하게 맞아 주었다. 의사와 간호사 둘이 진료실에 있었던 서울대 병원과는 달리 담당의사 옆에 여자 한 분이 더 앉아 있어 총 3명이 진료실에 있었다. 이 분은 담당의사가 진료하는 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우리가 말하는 것을 컴퓨터에 적으면서 약처방과 검사 오더 등을 도와주고 있었다. 미국에서는 수련의사가 지도교수와 함께 외래환자를 보기 때문에 난 처음에 이 분을 수련의사로 생각했다. 하지만, 나중에 들으니 진료를 도와주는 직원이라고 한다.
의무기록을 혼자 검토하고 작성하느라 바빠서 환자와 눈도 마주치지 못했던 서울대 병원의 의사와는 달리 도와주는 직원이 있어서 그런지 삼성서울병원의 담당의사는 진료시간 내내 우리와 눈을 마주치며 이야기했다. 뿐만 아니라, 억양과 전반적인 태도가 신경질적이었던 서울대 병원의 의사와는 달리 삼성서울병원의 담당의사는 친절했다. 하지만, 짧은 진료시간 때문인지, 아니면 전공이 내시경적 치료라 그런지 삼성서울병원 의사는 약물치료에서 많은 실수를 했다.
의사: “저희한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요?”
우리로부터 그동안의 췌장암의 진단과정과 어머니가 더 이상 항암제 치료를 원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서울대 병원의 영상기록을 검토한
후 담당의사가 질문했다.
필자: “어머니께서 항암치료를 받지 않기로 결정하셨지만 암의 진행에 따른 통증, 복수 등에 대해서는 치료를 받고 싶습니다.”
의사: “3주전에
찍은 서울대 병원에서 영상을 보니 복수가 차 있기는 하지만 그렇게 많지는 않군요.”
어머니: “그런데, 복수가 그동안 더 는 것 같아요. 숨이 차지는 않지만 누워 있을때 불편해요.”
의사: “복수의
양이 많지 않기 때문에 주사기로 뽑기는 그렇고 이뇨제를 한 번 써 봅시다. 그런데, 암에 의해 생긴 복수라서
이뇨제가 잘 듣지 않을 수 있습니다. 먼저
일주일 써 보면서 효과가 있나 살펴 보죠.
일단 하루에 반 알씩 드셔 보세요.”
필자: “퓨로세마이드
(furosemide) 말씀하시는 거죠?”
의사: “예.”
필자: “반 알이라
하면 10 mg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의사: “그렇습니다.”
하지만, 수납을 하고 나중에 원무과로부터 교부받은 처방전에는 반 알이 10 mg이 아닌 20 mg 였다 (즉, 한 알이 40 mg). 용량에만 실수가 있었던 것이 아니다. 퓨로세마이드는 혈중 칼륨 농도를 낮춘다. 그래서, 보통 약을 시작하기 전과, 약을 시작한 후 1-2 주 후에 혈중 칼륨 농도를 체크한다. 담당의사와의 진료가 끝나고 난 어머니의 혈중 칼륨 수치가 궁금해졌다. 진료일 전에 서울삼성병원으로부터 받은 문자 메세지에 따라, 혹시 받을 지 모를 검사를 위해 어머니는 진료일 전 날 저녁이후부터 아무 것도 드시지 않았다.
그런데, 진료당일에는 아무런 검사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난 당일 어머니의 혈중 칼륨 수치를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가지고 온 서울대 병원 의무기록이 생각이 나서 찾아 보니 약 20일 전 어머니의 혈중 칼륨 수치는 3.5 mmol/L였다. 이는 정상 범위 (3.5-5.0 mmol/L)의 가장 끝자락에 있기 때문에 만약 이 수치를 유지한 채로 퓨로세마이드를 시작하게 되면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는 저칼륨혈증이 발생할 위험이 높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담당의사는 칼륨 보충제를 처방하거나 혈중 칼륨 수치를 모니터하기 위해 혈액검사를 따로 오더하지 않았던 것이다.
필자: “어머니가 통증약으로 그동안 울트라셋 (Ultracet: 트라마돌 (tramadol)과 아세트아미노펜 (acetaminophen) 복합제) 한 알을 하루에 4번씩 드셨는데 이제는 잘 듣지 않는 것 같아요. 좀 더 센 통증약으로 바꾸어 주실 수 있을까요?”
의사: “그럼 세타마돌을
한 번 써 보죠.”
난 우리나라 의약품의 상품명에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에 물었다.
필자: “세타마돌의
성분이 뭐죠?”
의사: “코데인 (codeine)과 아세트아미노펜입니다. 한 알을 하루에 4번씩 드세요. ”
그런데, 진료가 끝난 다음에 인터넷을 통해 확인해 보니 세타마돌은 울트라셋과 똑같이 트라마돌과 아세트아미노펜의 복합제였다. 각 성분의 양도 37.5 mg과 325 mg으로 동일했다. 기억이 잘 안 나면 찾아봐야 하는데 그냥 대답했던 것이다 (그런데, 옆에 앉아서 컴퓨터에 처방 오더 넣는 일을 도와 주시던 분은 세타마돌에 코데인이 없다는 것을 알았을 것 같은데 아무 말이 없었다). 또, 코데인은 트라마돌과 같이 비교적 약한 진통제에 속하기 때문에 어머니처럼 췌장암이 상당히 진행된 경우에는 좀 더 강한 모르핀 (morphine)이나 옥시코돈 (oxycodone) 등을 쓰는 것이 좀 더 적절했을 것이다.
필자: “어머니가 변비가 있으세요. 그런데, 코데인은 변비를 일으키잖아요. 서울대 병원에서 락툴로스 (lactulose)를 처방받으셨지만 드시지 않고 그동안은 둘코락스 (Ducolax: bisacodyl)를 하루에 2알씩 드셨어요. 처음에는 한 알을 드셨는데 한 알은 별로 효과가 없고 두 알을 드셔야 변을 보십니다.”
의사: “둘코락스는
가장 센 변비약이예요. 그러니, 락툴로스를 먼저 써 봅시다.”
네? 가장 센 약을 한 알도 아닌 두 알을 먹어야 효과가 있는데 더 약한 약으로 바꾸자고요??
다행히 오후에 완화치료 진료를 받을 수 있어서 위의 문제점을 모두 해결할 수 있었다. 만약, 완화치료 진료를 당일에 받을 수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를 생각하면 지금도 손에 땀이 난다.
서울대 병원, 삼성서울병원 등 우리나라 대형병원들은, 미국처럼 몇 주 기다리지 않고, 아픈 환자가 예약전화한 다음 날에 바로 의사를 만나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이처럼 의료접근의 효율은 높지만 의료의 질은 이에 한참 미치지 못한 것 같다. 두 병원에서 만난 의사들은 모두 경험이 많은 의사들이다. 그런데, 이들을 만날 때마다 거의 매번 진단이나 처방에서 실수가 발생했고 어떤 실수는 너무 기본적인 것을 놓친 것이어서 대형병원의 경험많은 의사라고 믿기 힘들 정도다. 왜 이런 실수들이 가장 믿을 만하다는 대형병원 의사들에게서 발생하는 것일까? 대형병원들이 효율을 위해 기본을 너무 간과하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