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한 지 한달도 채 되지 않아 관객 수 500만을 돌파한 데 이어 영화에 나오는 풍물, OST까지 덩달아 주목을 받고 있으니 그 세를 ‘허리케인’에 비유해도 과하지 않다고 할 수 있겠다.
세대를 뛰어넘어 제각기 관점에 따라 감동을 달리하는 이 영화를 약사의 입장에서 보면 어떨까.
조선시대 연산조. 광대인 장생과 공길은 한양으로 올라와 연산과 애첩 녹수를 풍자하는 놀이판으로 의금부에 끌려오게 된다.
살기 위해 왕을 웃겨야하는 상황에서 장생과 공길은 특유의 기질을 발휘, 연산을 웃게 해 위기를 모면한다.
이를 계기로 궁에 기거 하며 여러 가지 공연으로 연회를 북돋는 이들은 한 연회에서 궁중 여인들의 암투로 인해 왕에게 사약을 받는 후궁에 관한 경극(폐비 윤씨 극)을 연기한다.
경극을 보던 연산은 같은 이유로 선왕에게 사약을 받았던 생모 폐비 윤씨를 상기하며 진노해 그 자리에서 선왕의 여자들을 칼로 죽여 버린다.
왕에게 하사 받은 死藥, 사약(賜藥) 여기, 영화 속 경극에서 비련의 후궁을 연기한 공길이 마시는 것은 사약(賜藥)이다.
한약재는 지금까지 병을 치료하는 약으로 쓰이지만, 옛날에는 독성(毒性)이 강한 약재에서 독성분을 줄이거나 제거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그대로 사용하여 사람을 죽이는 데 이용하기도 했다.
사약(賜藥)은 왕족이나 사대부가 죄를 지었을 때 임금이 내리는 극약을 마시게 하여 사망하게 하는 사형제도로 오랜 옛날부터 사용되어 왔으나 형전(刑典)에는 규정되어 있지 않은 법외 형이다.
조선시대 형전에는 교수(絞首)와 참수(斬首)만을 사형 종류로 인정하고 있었으나 왕족과 사대부에 대해서는 그들의 사회적 신분을 고려하여 교살(絞殺)이나 참살(斬殺)시키는 대신 하사(下賜) 받은 약(藥) 즉, 사약을 먹게 함으로써 신체를 보전케 한다는 배려의 의미가 담겨 있는 제도인 것이다.
사약의 재료 ①부자
부자는 미나리 아재비과에 속하는 다년생 식물의 뿌리로서 현재는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부자는 심장 수축력을 강화시켜 진통에 효과가 있고, 소염 작용과 뇌하수체 및 부신피질계의 호르몬을 흥분시키는 작용도 한다.
여기서 독작용을 일으키는 성분은 알칼로이드 성분인 ‘아코니틴’으로 몸속에서 신경전달 물질인 아세틸콜린의 저해제로 작용한다.
아세틸콜린은 신경과 근육을 이어주는 곳에서 분비되는 물질로, 아코니틴의 작용에 의해 이것의 분비가 부족해지면 근육마비가 일어난다.
부자는 독이 있고 열이 많아 많이 먹으면 눈이 멀기도 하므로 사용에 세심한 주의를 요한다.
②천남성
천남성은 비옥한 숲 지대나 깊은 산 속에서 볼 수 있는 풀로 극약재 중 하나다.
‘코니인’이라는 맹독성 알칼로이드 성분이 들어있는 천남성은 거담, 감기 치료에 천남성의 잎을 달여서 쓰기도 하지만 많이 쓰면 독이 되어서, 뿌리나 비늘, 줄기로 사약을 만들었다.
③비상
비상(砒霜)은 비소(As)와 황(S)의 화합물들인 웅황(As2S3), 계관석(AsS), 독사(FeAsS) 등을 총칭한다.
비상은 자연 상태의 비소를 원료로 제조했으며 한의학 서적에 따르면 비상은 수은과 섞어서 쓸 때 독성이 배가되어 수은을 함께 넣기도 했다.
비소는 무색무취의 백색 분말로 물에 잘 녹으며 몸속에 들어가면 효소단백질 분자와 결합, 세포의 호흡을 방해해 죽게 만든다.
비상을 치사량 이상 흡입하면 구토, 설사, 모세혈관 확장, 혈압감소 등이 일어나며, 중추신경이 마비돼 1~2시간 내에 사망하게 된다.
이밖에 짐독(새가 지닌 강한 독), 생금(生金: 정련하지 않고 캐낸 그대로의 황금)이나 생청(生淸: 불길을 쐬지 않고 떠 낸 꿀), 게의 알(蟹卵) 등을 합하여 조제하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실제로 사약을 받은 후 사망하게 되는 시간은 30분 이상이라고 한다.
한 예로 조선 숙종 대에 사사한 송시열의 경우 두 사발의 사약을 마셔도 죽지 않아 항문을 막고 사약을 먹여 죽고 난 뒤에도 부릅뜬 눈을 감기지 못했다는 기록이 있다.
특히 부자에 인삼도 함께 사용했다고도 전해지는데, ‘대열대독’한 부자에 인삼은 온기의 상승작용을 일으켜 부자의 열독이 더욱 성하여져 사람을 죽게 만들 수 있다는 원리로 해석된다.
또한 사약을 받은 죄인을 온돌방에 들어가게 한 다음 문을 걸어 잠그고 아궁이에 불을 지폈다고도 하니, 강렬한 열성 약과 뜨거운 외부 기운이 합하여 매우 고통스러운 죽음을 맞이했으리라 짐작되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