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행 영화가 무대를 통해 새 생명을 얻다_뮤지컬 시스터 액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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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을 통해 몇 차례 언급했듯이 영화가 원작인 뮤지컬을 부르는 용어가 있다. 바로 무비컬이다. 영화를 의미하는 무비와 뮤지컬의 합성어다. 최근 큰 인기를 모으고 있는 뮤지컬의 대표적인 장르중 하나다.
무비컬은 양수겸장의 매력이 있는 시도다. 이미 대중성이 검증된 콘텐츠이다보니 영상물의 판권을 갖고 있는 영화사 입장에서는 손해 볼 일이 거의 없는 안전한 실험이고, 관객 입장에서도 어떤 이야기와 볼거리가 등장하는지는 물론 본인의 취향도 적극 반영할 수 있는 장점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공연은 다른 문화 콘텐츠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티켓 가격이 비싸고, 누구나 자신의 소비가 효용성을 잃지 않기를 바라기에 빈익빈 부익부의 현상은 어렵지 않게 목격된다. 무비컬도 바를 바 없다. 이미 좋아했거나 알고 있는 영화속 이미지를 무대에서 다시 만날 수 있을 때, 대중은 쉽게 공연장으로 발걸음을 옮길 수 있다.
하지만, 함정도 있다. 원 소스의 유명세에만 기대 안일하게 무대를 꾸민다면 멀티 유즈의 매력을 찾기 힘들다는 원칙이다. 그러니까, 홍보는 쉬울지 모르지만 여간해선 관객을 만족시키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유수의 무비컬들이 갖가지 특수효과와 볼거리로 작품을 포장하며 대중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려 노력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무대만의 특별하고 신기한 경험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다면, 무비컬은 ‘원작만 못한’ 재미없는 콘텐츠로 추락하기 십상이다.
뮤지컬 ‘시스터 액트’는 그런 의미에서 흥행 공식에 충실한 대표적인 현대 무비컬이라 부를 만하다. 두말할 나위 없이 원작은 1992년 만들어진 동명 타이틀의 영화다. 범죄현장을 목격한 밤무대 여가수 들로리스가 증인보호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수녀원에 몰래 숨어 지내다 우연히 수녀들의 합창단을 지휘하게 된다. 조용히 신분을 감춰도 위험한 처지였지만, 타고난 끼와 순수한 수녀들의 모습이 그녀를 꿈틀거리게 만든 것이다. 잊혀져가던 성당에는 수녀 합창단을 보러 몰려든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마침내 TV 뉴스에까지 다뤄지며 유명세를 얻는다. 문제는 덕분에 범죄조직도 그녀의 은신처를 알게 됐다는 것. 우여곡절 끝에 사건은 잘 마무리되고, 엔딩 씬에서 교황까지 찾아온 미사에 ‘주님을 따르겠어(I will follow him)’를 멋지게 합창하며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우리나라에서도 명절 때면 단골로 안방극장에 등장했을 만큼 큰 인기를 누렸다.
메가폰을 잡았던 에밀 아돌리노 감독은 사실 영화팬들에게는 익숙한 이름이다. 1987년 영화 ‘더티 댄싱’을 만들었던 바로 그 연출자이기 때문이다. 패트릭 스웨이지를 일약 세계적인 스타로 발돋움시킨 이 영화 역시 음악과 춤이라는 요소를 잘 포장해 그만의 매력을 뽐낸 작품이었고, ‘시스터 액트’와 마찬가지로 무비컬로도 탈바꿈돼 글로벌 공연가에서 인기를 누렸다. 같은 감독의 영화 두 편이 모두 무대로 꾸며지며 대중적 지지와 환호를 이끌어 낸 셈이다. 그가 만든 영화들이 얼마나 음악적 감수성이 뛰어난지 미루어 짐작케 한다.
무대로 만들어진 ‘시스터 액트’의 제작자는 영화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했던 우피 골드버그다. 아마도 자신의 최고 히트작을 무대화하겠다는 개인적인 신념과 예술 정신이 빚어낸 성과가 아닐까 추측된다. 몇 주일 한정기간이었지만 우피 골드버그가 직접 무대에 등장해 관객들과 직접 만나 열정을 불사르기도 했다.
‘시스터 액트’가 무대용 뮤지컬로 꾸며진다는 소식이 처음 전해졌을 때, 무대 관계자들의 반응은 대체로 긍정적이었다. 영화의 묘미는 사실 감동어린 반전의 합창을 근간으로 한 것이었고, 합창이나 노래를 감상하는데 무대 위에서 라이브로 펼쳐지는 것보다 더 나은 환경은 없기 때문이었다. 결국 수녀들이 한 가득 등장해 멋들어진 합창 장면을 연출해내는 무대가 시도되었고, 무비컬의 성공에 관한 대표적인 사례중 하나가 됐다.
자칫 단순해보일 수 있는 무대 비주얼을 극복하기 위해 재미난 시도들도 더해졌다. ‘시스터 액트’가 선택한 방법은 변복술이다. 객석의 관객들이 깜짝 놀랄 정도로 빠르게 수녀들의 검은 의상이 황금빛 합창복이나 혹은 반짝이 무대 의상으로 뒤바뀌는 재미를 목격하게 된다. 물론 영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무대만의 재치였고, 관객들의 반응도 기대이상이었다. 우리나라 공연계에서도 수녀들이 등장해 인기를 누렸던 소극장 뮤지컬이 있었다. 바로 ‘넌센스’다. 오랜 기간 다양한 제목과 내용으로 변화되면서 폭넓은 연령의 관객들로부터 사랑받았던 적이 있는데, ‘시스터 액트’는 바로 그런 순진하면서도 귀여운 수녀들의 이미지를 재연해냄으로써 인기를 누리게 된 최신작 대형 뮤지컬이 됐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영화의 유명 합창들이 무대에서는 재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이 윌 팔로우 힘’이나 ‘오! 해피 데이’는 그래서 무대에서는 만날 수 없다. 자세한 내막까진 알 수 없지만, 아마도 공연에서의 활용을 둘러싼 저작권 문제가 원활히 해결되지 못한 이유 탓이 아닐까 여겨진다. 사실 무비컬을 만들다보면 이런 일들은 비일비재하다. 디즈니의 ‘라이언 킹’에서는 그래서 ‘라이언 슬립스 투나잇’이 짧게 등장하고, 뮤지컬로 각색된 ‘더티 댄싱’에서도 ‘쉬스 라이크 더 윈드’를 만날 수 없다. ‘아기공룡 둘리’가 뮤지컬로 초연될 당시, ‘요리보고 조리보고’로 유명한 애니매이션의 주제가가 등장하지 못했던 것도 비슷한 배경 탓이다.
대신 뮤지컬 ‘시스터 액트’에서는 새로운 작곡이 더해졌다. 디즈니의 만화영화 ‘인어공주’, ‘알라딘’, ‘미녀와 야수’ 등을 작곡한 알란 멘켄이 참여해 뮤지컬다운 음악들로 다시 포장되는 변화를 더한 것이다. 수녀합창단이 한 옥타브씩 소리를 높여 노래를 배우는 ‘레이즈 유어 보이스’나 엔딩 뮤지컬 넘버인 ‘스프레드 더 러브 어라운드’는 이렇게 탄생된 이 뮤지컬의 히트 넘버들이다.
요즘 코로나 19로 연기됐던 두 번째 내한공연의 막을 올리며 인기몰이가 한창인 뮤지컬 ‘시스터 액트’에는 우리 배우 김소향도 참여해 특유의 가창력과 미소짓게하는 코믹 연기로 박수갈채를 이끌어내고 있다. 브로드웨이에서도 활동한 바 있는 그녀의 과거 도전이 영어권 배우들과의 멋들어진 조화로 잘 녹여져 반갑고 또 흥미롭다. 대중이 바라고 원하는 내용을 무대에 재연해냄으로써 흥행과 돈벌이를 모두 쫓는다는 무비컬의 제작 실험은 당분간 세계 공연가에서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한국형 무비컬을 꿈꾼다면 관심있게 지켜볼만한 일이다.
<필자소개>
원종원씨는 한국외대 재학 시절, 영국을 여행하다가 만난 뮤지컬의 매력에 빠져 활동을 시작했다. 뮤지컬 저변을 확대하고자 국내 최초로 PC통신을 통해 동호회를 결성, 관극운동을 펼쳤다. TV의 프로듀서와 일간지 기자,특파원을 거쳤으며, 현재 일간지와 경제지 등 여러 매체에 뮤지컬 관련 칼럼을 연재해오고 있다. 대학(순천향대 공연영상학과 ) 강단에 서고 있는 지금도 자타가 공인하는 뮤지컬 마니아이자 전문 평론가로 지면과 방송 등을 종횡무진 누비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