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은의 뮤직 in CINEMA  
문학이 뮤지컬 애니메이션을 만났을 때, ‘무녀도’  
편집부 기자 news@yakup.co.kr 뉴스 뷰 페이지 검색 버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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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 뮤지컬 애니메이션을 만났을 때, ‘무녀도’
 

한국 애니메이션계의 보배같은 감독, 안재훈(연필로 명상하기)은 한국단편문학을 애니메이션화 하는 작업을 해왔다. ‘메밀꽃 필 무렵’(2012), ‘운수 좋은 날’(2014), ‘소나기’(2017) 등 한국인들이 사랑한 단편들은 안재훈 감독의 감수성과 재능에 힘입어 스크린에서 또 다른 예술로 재탄생했다. 그러나 극장에서 이런 작품들을 만나려는 관객들이 계속 감소하자 안재훈 감독은 결단을 내렸다. ‘무녀도’는 단편문학 시리즈의 마지막 프로젝트다.



김동리 원작의 ‘무녀도’는 1930년대, 신문물이 들어오면서 가치관의 혼란이 생기고 급격한 세대차가 갈등을 불러일으키던 시기를 배경으로 굿을 하는 ‘모화’가족의 비극을 그린 작품이다. 뮤지컬 애니메이션 형식을 택한 이 작품은 곳곳에 다양한 장르의 삽입곡을 배치했는데 디즈니에서 만드는 애니메이션들과 달리 팝적인 요소가 강하기보다 공연예술 넘버들의 느낌이 더 살아있다. 영상도 무대에서 배우들이 안무를 하듯 구성해 신선함을 넘어 낯설게까지 느껴진다. 이러한 실험성과 도전정신이야말로 안시 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여하게 만든 작가주의적 면모다.

모화와 그녀의 아들 욱이가 대사 대신 부르는 8곡의 넘버들은 무척 강렬해서 긴 여운을 남기는데 목소리 연기와 노래를 모두 담당한 이들은 현역 뮤지컬 배우들인 소냐와 김다현이다. 전통 무속인들의 노래와 양악을 모두 소화해야 하는 중책을 맡은 모화역의 소냐는 노래마다 완전히 다른 창법을 구사하면서 작품의 격을 높였다. 단편문학 프로젝트에 계속 참여해왔던 강상구 음악감독은 이번 작품에서 모든 것을 쏟아놓았다고 할 만큼 인상적인 음악을 들려준다. 이전에 안재훈 감독과 함께 작업하지 않았다고 해도 ‘무녀도’의 형식에 국악 크로스오버 예술인인 강상구만큼 적절한 음악감독도 없었을 것이다. 감독은 모화가 물로 들어가는 마지막 장면에서 내래이션을 빼고 처연한 음악으로 모든 감정을 끌어올린다. 구세대의 종언, 직업의 종말 등 여러 의미가 담긴 그 신에는 10년 동안 계속된 단편문학 프로젝트와 이별하는 연출가의 심경도 담겨 있었을까.

아쉽지만 그렇게 슬퍼할 것은 없다. MZ세대라면 시즌 2를 기다릴테니.
 
윤성은의 Pick 무비
송강호라는 선의의 브로커, ‘브로커’
 


3년 만에 정상개최된 칸영화제에서 낭보가 날아왔다. ‘기생충’(감독 봉준호, 2019)이 황금종려상을 수상할 때만 해도 이보다 더 큰 영광은 없을거라고 생각했지만, ‘헤어질 결심’(감독 박찬욱, 2022), ‘브로커’(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2022) 두 편의 영화가 동시에 경쟁부문에서 수상했다는 소식은 팬데믹 기간 동안 좋은 영화에 목말라 있던 관객들에게 기쁨의 포만감을 느끼게 해주었다는 점에서 특별했다. 한국영화인 최초 3대 국제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자의 주인공은 역시 송강호다.

‘초록물고기’, ‘쉬리’, ‘공동경비구역 JSA’, ‘살인의 추억’, ‘변호인’, ‘사도’, ‘기생충’에 이르기까지 송강호의 필모그래피는 한국영화사의 맥을 잡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그는 20세기말부터 굵직한 작품들에 출연해왔다. 완벽주의자적 기질로 세밀하게 표현해내는 그의 캐릭터들은 각 작품마다 미장센으로서 딱 맞는 색깔로 자리잡았고 이제 관객들은 그가 출연한 작품이라면 ‘믿고 본다’고 할 만큼 그의 작품 선택이나 연기력에 신뢰를 갖고 있다. 그리고 송강호와 국내에서 티켓파워를 갖고 있는 몇 안되는 외국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만남은 영화제작 소식부터 화제가 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들은 보란 듯이 칸영화제 남우주연상을 합작해냈다.

그러나 베일을 벗은 ‘브로커’에 대한 관객의 호불호는 갈린다. 빚에 시달리는 ‘상현’(송강호)은 베이비박스에 놓여진 아기를 정상적인 경로로 아이를 입양할 수 없는 부모들에게 넘기고 커미션을 챙기는 브로커다. 역시 돈이 궁한 베이비박스 직원 ‘동수’(강동원)가 그와 함께 하는데 ‘우성’이라는 아이를 빼돌려 작업을 하려는 과정에서 엄마 ‘소영’(이지은)이 찾아온다. 소영 또한 돈을 준다는 말에 그들과 동행하게 되고 형사들이 이들의 수상한 여행을 뒤쫓으면서 상황은 복잡해진다. 영화에 대한 실망은 우선, 시종일관 물건 취급당하는 아기의 존재에 대한 불편함에서 찾을 수 있다.

아기의 눈썹을 운운하며 가볍게 던져지는 대사에는 사실상 칸영화제에서 에큐메니컬상을 수상할 만큼의 철학적 고민이나 깊이가 느껴지지 않는다. 더 큰 문제는 인물들 사이의 관계 변화나 서사 전개에 개연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영화에서 상현보다 더 비중이 높은 소영만 봐도 그녀가 왜 아이를 낳았는지, 왜 범죄자가 되었는지, 왜 상현 일행을 따라다니는지 납득할 만한 필연적 이유를 찾을 수 없다. 그나마 인상적인 몇몇 대사가 서사와 상관없이 허공에 부유한다. 이런 무중력 상태에서도 그 대사들을 잡아낸다면 훌륭한 관객이다.

송강호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탄탄한 필모그래피에서 예외적인 작품으로 남게 될 이 영화에서 논리를 세우고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분투한다. 우유부단하고 서툴고 따뜻해서 브로커 노릇이 힘들지만 그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알고 무엇을 왜 해야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는 상현을 만들어냈다. 칸영화제 남우주연상은 비단 ‘브로커’에서의 연기뿐 아니라 배우 송강호에게 준 것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가 등장할 때마다 관객들이 흩어진 서사의 실타래를 다시 모으게 된다는 것은 ‘브로커’에 가장 필요했던 송강호의 성취라고 할 수 있다.
 
 
<필자소개>
윤성은씨는 영화평론가이자 방송인으로 현재 다양한 매체에 영화음악 칼럼과 짧은 영화소개 글을 기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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