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소설을 무대로 옮기다 <뮤지컬 몬테 크리스토>
[클래시그널] 한때 ‘암굴왕’이란 이름으로 불렸던 작품이 있다. ‘몬테 크리스토 백작(Le Comte de Monte-Cristo)’이다. 살아생전 큰 인기를 모았던 프랑스의 19세기 인기작가 알렉상드르 듀마가 1844년 발표한 소설이다. 코로나 19로 인한 팬데믹이 살얼음판 같은 현실에서 뮤지컬 버전의 한국 초연 10주년 기념공연을 올리며 작은 위안이 되고 있다.
흥미롭게도 듀마의 작품들 중에는 뮤지컬로 만들어져 역시 우리나라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던 경우가 또 있다. 달타냥과 근위대 기사들의 이야기로 유명한 ‘삼총사(Les Trois Mousquetaires)’다. 마치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과 ‘노트르담 드 파리’가 뮤지컬 무대에서 각광을 받는 것처럼, 듀마의 이 작품들도 무대라는 판타지 공간에서 새롭게 해체되거나 재구성되며 청중들의 박수갈채를 한 몸에 받고 있다. 새삼 위대한 문학이 얼마나 오랜 세월 후대의 자손들에게 ‘먹거리’가 되어주는지 그 위대함에 감탄이 터져 나온다. 인문학을 배격하고 예술과 문화산업을 경시하는 작금의 우리와는 사뭇 다른 모습인 것 같아 신기하면서도 씁쓸하다.
‘몬테 크리스토 백작’은 소설로 발표됐을 당시에도 듀마의 작품 중에서 가장 큰 대중적 관심과 흥행을 불러왔던 서적으로 큰 명성을 누렸다. 이야기를 따라가는 재미는 다양한 원 소스 멀티 유즈의 재료로도 각광을 받게 했는데, 여러 차례 시도됐던 영화화 전력이 대표적이다. 여럿이 만들어졌지만 원작 소설에 충실했던 경우가 있던 반면, 아예 무협물이나 활극으로 그려졌던 경우도 적지 않다. 복수의 쾌감과 일확천금의 환상, 그 안에 꽃피는 사랑 이야기가 달고 짠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한 탓이다.
무대화가 이뤄진 것도 이 작품이 첫 시도가 아니다. 이미 2005년에 프랑스에서 프랑스어 뮤지컬로 선보인 적도 있고, 이듬해에는 영국에서, 2008년에는 러시아에서도 각기 다른 버전의 뮤지컬이 제작된 이색 경력이 있다. 사실 원작이었던 소설 자체가 예술성 보다 대중적인 인기가 한 발 앞설 정도로 많은 이목을 집중시키는 작품이었으니 무대화를 꿈꾸는 시도와 이에 대한 기대 그리고 대중적 관심도나 흥미가 남다를 수밖에 없었던 셈이다.
‘몬테 크리스토’는 장편소설치고도 상당히 분량이 두꺼운 작품이다. 원작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엄청난 두께를 자랑하던 우리말 번역본도 자그마치 다섯권이나 되는 엄청난 분량이다. 당연히 뮤지컬화를 고민하면서도 아마 그 방대한 이야기를 어떻게 무대에 구현할 것인가가 초미의 관심사였을 것이다. 또, 원작의 유명세는 자칫 파생상품의 예술적 완성도에 대한 기대를 너무 높여 오히려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잘해야 본전이요, 어설프면 쉽게 원작이 그리워질 수 있는 어려움 또한 도사리고 있다. 소설보다 재미가 없다면 굳이 책이 아닌 무대로 이 작품을 즐겨야 할 당위성을 설득하기 어렵다. 이런 부류의 작품이 지니고 있는 태생적인 한계이자 선결되어야 할 과제다.
그런 의미에서 뮤지컬 ‘몬테 크리스토’는 일단 영리한 작품이라 평가할 만하다. 방대한 원작속 이야기를 선택과 집중이라는 각색을 통해 흥미롭게 재구성했다. 특히 뮤지컬을 관극하기 전후로 원작 소설을 읽으면, 배우의 몸짓 손짓 움직임 하나하나에 얼마나 많은 소설속 사연들이 함축되어 있는지 여실히 실감할 만도 하다. 물론 그래서 더 재미있는 것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뮤지컬이라는 의미의 노블컬의 매력이기도 하다.
우선, 음악이 좋다. 이 작품의 작곡가는 바로 그 이름도 유명한 프랭크 와일드혼이다. 그가 만든 또 다른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는 한국 대중의 마음을 잘 읽어낸다는 와일드혼의 음악적 역량을 여실히 보여준 작품이다. 오죽하면 한때 맥주 광고에도 “지금 이 순간!”을 외치는 장면이 등장했을 정도다. 특히 몇 소절만 들어도 따라서 흥얼거리며 노래를 부를 만큼 대중적인 소구력이 강한 선율과 멜로디는 그가 만든 뮤지컬 음악들의 특징이자 장점이다. 뮤지컬 ‘몬테 크리스토’에도 그런 와일드혼의 역량은 큰 역할을 한다.
엇비슷한 선율의 반복이 귀에 거슬리지만 않는다면 뮤지컬 음악으로서의 매력은 가히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다. 특히, 감수성 풍부한 선율은 이 작품 최고의 매력을 경험하게 만든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힌 에드몬드가 연인인 메르세데스와 함께 서로를 그리워하며 부르는 ‘언제나 그대 곁에’나 절망의 노래인 ‘하루 하루 죽어가’ 그리고 마니아 관객들에게는 ‘지옥송’이라고도 불리는 ‘너희에게 선사하는 지옥’ 등은 꽤나 대중적 인기를 모으는 이 작품의 대표적 뮤지컬 넘버들이다. 간혹 분노어린 하이드의 모습이 투영돼 자기복제(?)가 너무 심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일기도 하지만, 극적인 대비를 세련되게 포장해내는 솜씨는 스타 작곡가로서의 명성을 확인하기에 아쉬움이 없다.
음악적 완성도가 이 작품이 지닌 매력의 한 축이라면, 시각적인 완성도는 국내 제작진이 덧붙여놓은 화려한 치장이다. 이리저리 공간 이동을 표현해내는 지도의 활용, 물속에서 유영하는 듯한 와이어 액션, 땅굴을 파면서 탈출을 시도하는 주인공이 그러나는 무대의 단면, 거대한 선박 모양의 세트, 화려한 몬테 크리스토 백작의 저택 등은 꽤나 만족스러운 볼거리를 구현해낸다. ‘마타하리’, ‘웃는 남자’를 만든 EMK 뮤지컬컴퍼니는 최근 외국 원작을 라이선스 무대로 꾸미면서 비주얼 효과에 적절한 한국화를 더하는데 꽤나 많은 노력을 경주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이 작품에서도 그런 매력이 십분 담겨있다. 볼거리라는 측면에서는 시쳇말로 입장권 가격이 아깝지 않은 체험을 주는 것은 이 작품의 큰 매력이다.
2020년 막을 올리는 10주년 기념 앙코르 무대에서도 실력파 뮤지컬 배우들이 대거 등장한다. 주인공인 몬테 크리스토 역으로는 엄기준과 신성록, 카이가, 그의 사랑하는 연인인 메르세데스 역으로는 옥주현, 린아, 이지혜가 나온다. 비열한 몬데고는 최민철과 김준현, 강태을이다. 코로나 19로 답답했던 일상을 벗어나고파 나선 기왕의 무대 나들이니 조금이라도 더 만끽하고 싶다면 좋아하는 조합을 꼼꼼히 따져보길 권한다. 약간의 노력과 정성이 작품 즐기는 재미를 극대화시켜 줄 것이다.
시간적 여유가 있거나 연인에게 다정한 이미지를 각인시키고 싶다면 역사적 배경에 대해 조금의 사전지식을 미리 갖추기도 추천한다. 이야기의 시공간적 배경이 나폴레옹 황제 말기의 유럽인 탓에 유럽 근대사나 지리, 문화적 배경을 사전에 점검해 둔다면 감상의 폭을 한층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다. 뮤지컬에서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즐긴다’는 표현이 등장한 것은 바로 이런 상황을 두고 하는 말이다. 뒷맛이 오래 남는 관극이 되길 기대된다.
원종원씨는 한국외대 재학 시절, 영국을 여행하다가 만난 뮤지컬의 매력에 빠져 활동을 시작했다. 뮤지컬 저변을 확대하고자 국내 최초로 PC통신을 통해 동호회를 결성, 관극운동을 펼쳤다. TV의 프로듀서와 일간지 기자,특파원을 거쳤으며, 현재 일간지와 경제지 등 여러 매체에 뮤지컬 관련 칼럼을 연재해오고 있다. 대학(순천향대 공연영상학과 ) 강단에 서고 있는 지금도 자타가 공인하는 뮤지컬 마니아이자 전문 평론가로 지면과 방송 등을 종횡무진 누비고 있다.